선무용학원 김명선 원장
선무용학원 김명선 원장
함께사는 세상 [105]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3.06.06 00:00
  • 호수 67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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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천에 무용의 옹달샘을 만든 김명선 원장

자연이 좋아 옥천에 살고 있다는 선무용학원 김명선(42) 원장의 고향은 강원도 홍천이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계속 피아노를 배웠다. 

초등학교 6학년 어느 날 무용 공연을 본 뒤 `저런 예쁜 옷을 입고 무대에서 아름다움을 표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용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인천체육대학에 진학해 한국무용을 전공했다.
 
"대학교 1년을 마치면서 휴학을 하고, 좋은 무용단에 입학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준비를 했는데 욕심을 너무 많이 부렸나봐요. 탈진해서 쓰러지고 회복하는 과정에서 몸이 많이 망가졌어요. 그 때 무용수로 무대위에 서는 것은 포기했어요."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아카데미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면서, 무용 기획팀에 합류하기도 하면서, 때로는 광고작업과 텔레비전 작업에 `무용'을 매개로 결합하면서 인생을 만들어갔다. '기획'을 하는 일과 `후배'들을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았지만 기본적으로 무용수는 무대에서 예술을 표현하는 것이 가장 어울리는 일임을 김 원장은 부인하지 않았다.
 
"지금 재능 있는 아이들을 발굴해 적성을 찾아 주는 것도, 아주 우수한 인재를 찾아내 무대 위에 서게 만들고 싶은 것도 무대에 서지 못한 나의 안타까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인지도 모르죠."

◆김명선, 옥천에 둥지틀다
무용, 그리 익숙한 장르의 예술은 분명 아니었다. 그렇기에 4년 전 옥천읍 양수리에 `선무용학원'이 생겼다고 했을 때 원장이 누구일까 호기심이 강하게 일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학원생들이 이런 저런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렸다.

또 몇 해 전부터 지용제 본행사에 천사 같은 아이들이 나와 낯선 장르의 무용을 선보이고, 많은 박수갈채를 받는 것도 보았다. 그렇지만 양수리에서 그렇게 오래 학원을 운영할지는 솔직히 몰랐다. 2000년 5월, 처음 선무용학원을 찾았을 때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꼭 3년이 지난 5월30일 오후, 다시 선무용학원을 찾았다. 학원 주변에 도로가 포장된 것을 제외하고는 3년 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 곳에 선무용학원이 있었다. 원장실에서 김명선씨를 마주하고 앉아 제일먼저 꺼낸 얘기도 "생각보다 오래 계시네요?"였다.
 
"그렇죠? 요즘에 아이들 손을 붙잡고 오시는 어머니들 중에도 `3년만 있으면 아이들 보내겠다'는 생각으로 지켜봤다는 분들이 있으시더라구요."-웃음
 
막상 질문을 던져놓고는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친김에 한 가지 더 물었다.
 
"대전에 가면 학원에 다닐 학생도 훨씬 많을 텐데, 왜 옥천에 계속 있는 거예요?"
 
"앞으로도 계속 있을 생각이에요. 여기에 있으면서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요. 또 여기 있는 아이들이 좋은 게 깨끗한 풀, 공기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라 정서가 참 좋아요. 저도 자연 속에서 살고 싶고요."
 
3년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김명선 원장이 2년 전부터 `엔젤무용단'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매년 한 차례씩 오디션을 통해 단원을 모집하고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고 한다. 엔젤무용단의 해외공연을 통해 한국의 문화를 외국에 알리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좀더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제공해 주고 싶다는 계획을 얘기하는 김 원장의 모습에는 3년 전 그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감이 가득하다.


◆열매를 맺기 시작한 아이들
'무용단' 운영을 하면서 운영비용에 대한 얘기가 나왔고, 후원회까지 대화가 이어졌다. 김 원장은 `순수함'을 강조하긴 했지만 이제는 `후원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숨기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서 아직까지 민간인이 만간무용단을 운영하면서 빚을 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일 정도로, 처해 있는 상황이 안정적이진 않다고 마음을 털어놓았다. 오래 기다린 `허점'을 찾았다는 듯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갔다.
 
"후원회를 운영하더라도 작은 시골보다는 도시가 더 편할 텐데…. 후회되지요?"
 
"사실, 서울에서 같이 일하자는 재단도 있어요.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옥천을 떠나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제가 심어놓은 씨앗들이 이제 열매를 맺으려 하거든요. 전 그것에 대해 대단히 큰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방황을 하다가 무용을 만나면서 제 자리를 찾은 아이들도 있구요. 본인은 물론, 부모도 모르던 재능을 발굴하고 아이의 적성에 정확히 맞았음을 확인할 때 느끼는 기쁨은 또 얼마나 큰데요."
 
김명선 원장은 자신이 선택한 일에 재미와 자부심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그것이 40대 초반인 김 원장의 입에서 `하루가 30시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나올 수 있도록 만드는 원동력인 것 같다.
 
"살아보니까 옥천 참 좋아요. 멀지 않은 곳에서 호수도 볼 수 있고, 나무도 볼 수 있구요. 다양한 음식도 맛볼 수 있더라구요. 개인적으로 서울을 자주 다니는데 교통편도 훌륭하구요. 그래서 외부에서 손님들도 많이 초대해요."
 
옥천에 `무용'이라는 씨앗을 뿌린 김명선 원장의 밭에 튼실한 곡식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이제 거들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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