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이해하기 힘든 1박2일의 일정
[기자의 눈] 이해하기 힘든 1박2일의 일정
어디까지가 공적인 업무였는가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3.05.30 00:00
  • 호수 67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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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들이 갖고 있는 고향에 대한 `근원적 애정'은 누구도 쉽게 부정할 수 없다. 도시의 삶 속에 `출향인 모임'이라는 작은 고향을 만들어 놓고 위안을 삼는 것 역시 그 근원적인 애정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그 출향인 행사에 고향에서 군수를 비롯한 주민들이 찾아와 손을 건넨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측면으로 볼 때 지난 일요일 포항에서 열린 재포항충북향우회체육대회에 유 군수를 비롯한 30여명의 주민들이 참석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그 참석 일정이 1박2일로 잡혀 있었다는 대목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가정이 있는 여자들을 데리고 1박2일 일정으로 다녀올 것이 무엇이냐?"라는 심각한 우려를 전달한 주민의 입장을 이 글에서 대변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걸핏하면 `공적인 영역에 자연스럽게 녹아버리는 사적인 영역'의 문제를 얘기하고 싶다.

우선 이 얘길 풀려면 이번 유봉열 군수 일행의 `포항 방문'이 공적인 행위인지 여부부터 살펴봐야 한다.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당연히 공적인 행위다. 군 버스를 이용했으며 참석한 일부 군 의원과 일부 농협 조합장, 농가주부모임 회원, 사회단체장, 비서실 직원들을 포함한 공무원 등 30여명의 숙박비와 아침식사비가 군수의 업무추진비에서 지출됐다.

관계자는 포항 향우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산 막걸리 등 선물과 숙박비, 아침식사비 등 모두 100여 만원이 지출되었다고 설명했다. 분명 산악회의 주말 산행 나들이와는 차별성을 갖는다. 그러나 24일부터 25일까지 포항방문단(?)의 일정을 보면 과연 나들이와 차별성이 있는 건지 의심스럽다.

참석자들로부터 확인한 이번 방문단의 일정은, 토요일 오후 군을 출발해 구미에 들려 사업을 하고 있는 한 출향인이 대접하는 저녁을 먹고 포항에 도착해 괜찮은 여관에 짐을 푼 후 일부는 여관에 있는 노래방에서 간단히 술을 마시며 유흥을 즐겼다.

다음 날 포항에서 열린 체육대회에 참석한 후 점심식사를 하고 포항을 출발, 문경에 들려 박인원(옥천에 기업체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문경시장의 저녁대접을 받고 밤 8시가 넘어 옥천에 도착했다. 일정만 보았을 때 `포항 방문'은 다른 전체 일정의 한 부분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딱 `떡 본 김에 제사 지낸' 꼴이다. `포항 향우회 방문의 건'을 빌미로 공공차량 사용허가를 내서 유 군수가 기분 좋게 지역의 단체장들을 불러 1박2일의 일정으로 봄나들이를 떠난 것으로 밖에는 인정할 수가 없다. 구미를 방문하고, 포항을 거쳐, 문경을 들러 옥천에 도착한 이번 포항 방문단의 1박2일 일정을 어디까지 공적인 업무로 봐 주어야 하는 것인지, 정말 포항이 하루에 다녀오기에는 부담이 큰 곳인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냥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넘길 수도 있는 부분이 아니다. 유봉열 군수의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에 대한 명확한 선긋기의 한계와 이를 제지할 수 있는 공직사회의 시스템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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