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농업가 이채준씨
자연농업가 이채준씨
함께사는 세상 [99]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3.02.28 00:00
  • 호수 66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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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자연에 가까운 방식으로 '안전한 먹거리'를 하겠다는 이채준씨.

그를 만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 99년 `귀농인'을 취재하면서 그를 만났다. 당시에는 귀농한 지 1년도 안 된 나이 서른의 젊은 귀농인이었다. 많은 귀농인이 그렇듯 당시 그는 배추를 심었고, 값이 폭락하면서 판로를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희망을 얘기했었다.

"유기농을 해보려고 해요. 공부하고 연구하지 않으면 뒤떨어질 수밖에 없잖아요. 당장의 이익보다 길게 보면 뭔가 보이겠죠. 앞으로 국민의 먹거리는 중요한 부분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생각해요. 유기농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든 시대가 곧 올겁니다. 미리 준비해야죠."-본보 99년 7월24일치-

그리고 2003년 2월 안내면 월외리에 살고 있는 그를 다시 찾아갔다. 99년 도로 경사면 밑으로 숨어 들어간 그의 집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던 기억이 났지만 이번에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도로 옆에 세워진 `흥부농장'이라는 입 간판에 그의 이름이 떡 하니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귀농인이라 부르지 않아도 될 이채준(34)씨는 99년 `유기농'을 얘기했던 자신의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었다.

그가 닭 모이를 주는 시간 동안 잠깐 농장을 둘러보며 양계장 특유의 고약한 냄새가 나지 않는 것에 놀랐다. 토종닭이라는 사전 정보에 일반 양계장 같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 이상이었다. 닭들이 잠을 자는 곳은 시원하게 날개짓 한 번 제대로 하기 힘든 좁고 규격화된 케이지가 아닌 높고 낮음이 다양한 횃대였다.

산란장에는 포근한 지푸라기가 깔려 있고, 어미 닭 몇 마리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유정란'이 놓여있다. 먹이를 보채며 울어대는 울음소리와 낯선 이의 등장에 퍼득거리는 날개짓에 정신이 팔려 있는 기자에게 그가 이것저것 설명을 시작한다.

"할 수 없이 배합사료를 주긴 하는데 그것만 줘서는 안 돼요. 이건 토착미생물이고 이건 녹즙, 이건 늙은 호박으로 즙을 내린 거예요. 일단 밥부터 주고 들어가서 얘기하자구요."

뭔가 할 얘기들을 가득 담아 놓고 있는 그를 쫓아 수탉들이 모여 있는 곳을 가보니 산비탈을 실컷 돌아다니다 밥 때가 되어 얼기설기 엮어 놓은 집으로 돌아온 녀석들의 모습 역시 `알'만큼이나 윤기가 번지르르 하고 활기가 넘쳤다.

대충 먹이 주는 일을 끝내고 방안으로 따라 들어가자 이채준씨는 직접 만든 사과차를 끓여 내놓고 자신의 자연양계에 대한 얘기를 시작했다.


닭의 복지는 곧 인간의 복지

"자연농업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미생물이에요. 자연농법으로 닭을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죠. 오염되지 않은 산 속 깊은 곳에 올라가 두껍게 쌓인 낙엽을 조심스럽게 긁어내면 그 곳에 하얗게 번진 토착미생물을 볼 수 있어요. 오래 전부터 내려온 우리 땅 고유의 미생물이죠. 그 곳에 밥을 놔두고 며칠 있다가 올라가면 그 미생물이 밥에 옮겨 붙어 있어요. 그걸 가져다가 배양을 시켜서 땅에도 깔고 사료에 섞여 먹이는 거죠. 아까 보셨겠지만 바닥에 똥이 하나도 없잖아요. 일부러 치우지 않거든요. 아침에 나가보면 횃대 밑으로 밤새 싸놓은 똥이 가득해요. 하지만 몇 시간 지나면 다 없어지죠. 똥 자체도 부들부들 한 것이 별 냄새가 안 나고 닭들도 똥을 헤쳐놓고 쪼아먹기도 하죠. 여기에 땅에 두껍게 깔린 미생물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자연적 순환이죠. 또 항생제나 성장호르몬을 절대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봄에는 쑥녹즙, 여름에는 아카시아녹즙, 자연칼슘 등을 부지런히 만들어 먹여야죠. 이 모든 것들을 아내하고 저하고 직접해요."

끼어 들 틈도 없이 열심히 설명하는 그의 모습은 분명 99년과 달라 보였다. 확신과 자부심이 있었다. 이채준씨가 얘기하는 자연 양계의 가장 핵심은 미생물과 함께 `닭의 복지'다. 인간에 대한 복지도 만족스럽지 않은 마당에 닭의 복지라니. 하지만 이채준씨의 설명을 들으며 닭의 복지는 곧 인간의 복지와 직결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종 항생제는 물론 성장촉진호르몬 주사제도 절대로 안 돼요. 밤에 잠을 재우지 않고 전깃불을 켜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일이죠. 30도 가까이 온도를 올리는 난방도 안 되구요. 자연 그대로가 제일 중요해요. 녀석들의 복지를 생각해야죠. 닭을 돈으로 보면서 키우면 이렇게 못 키우죠. 내 새끼 키우듯이 키우는 거에요. 하루에 몇 번씩 들락거리면서."

5개월은 키워야 육계로서 적정하게 크는 것을 한 달 안팎이 걸려 뽑아내고, 집단사육에 따른 질병 예방을 위해 엄청난 종류의 항생제를 주사하는 그 것이 제대로 된 육계일 수 없다는 게 이채준씨의 설명이다. 항생제 덩어리인 그 것, 비정상적으로 성장한 그 것을 어떻게 아이의 입에 넣어 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최대한 닭의 복지를 보장해 주는 것이 먹거리에 있어 인간의 복지를 생각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이 대목은 이채준씨를 고향에 돌아오게 만든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안전한 먹거리의 생산, 이것은 이채준씨에게 의무를 넘어 자부심이었다. 이 시점에서 이채준씨는 축산에 있어서의 친환경 인증을 꿈꾸고 있다.

아직도 배합사료를 완전히 끊지 못하고 있지만 봄이 되면 배추를 심었던 그 밭에 옥수수를 심어보려고 한다. 물론 유기농이다. 최대한 사료 자급율을 끌어올리면서 유기축산인증을 받기 위해 노력해 볼 참이다. 이미 홈페이지 구축작업도 되어가고, 고유 상표출원도 준비중이다.

"유기 축산은 여건상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이에요. 가장 중요한 것이 사료 문제고요, 첫 시도했을 때부터 3대가 지나야 제대로 인증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도 해보려구요. 최소한 전환기유기축산까지는 근접할 수 있지 않을까요?."
 
농업 희망 보여주는 그의 미소

이채준씨가 닭을 키운 것은 99년부터였다. 처음에 몇 마리 키우던 것이 2001년부터 숫자를 늘리기 시작해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자연양계를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 입식을 했을 때는 실패도 많이 했지만 각종 책과 다른 지역의 선배들에게 조언을 들으며 시행착오단계를 거친 지금은 이제 자신도 붙었다.

"이제 손익분기점에 다다른 것 같아요. 아직 투자된 비용을 모두 회수하진 못했지만요. 산란장을 들추고 알을 꺼낼 때 느끼는 그 행복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죠. 뽀얀 달걀을 보면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하지만 역시 남는 문제는 `판로'다. 유정란인 닭 알은 친환경농업단체인 `대전 한살림'을 통해 전량 소비자들에게 넘어가고, 그 양이 부족해 난리지만 문제는 `육계'다. 자연양계에 있어 인위적인 도태는 절대로 용인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태어나는 수탉은 어찌할 수 없어 자연스럽게 육계로 판로를 개척해야 한다.

지금이야 그 양이 얼마 되지 않아 알고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한 마리씩 판매를 하고 있지만 앞으로 양이 늘면 문제는 달라진다. 안정적인 판로가 확보되지 않으면 끌어안고 있는 자체가 생산비 증가의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우선 올 1월1일부터 의무도축제가 실시돼 허가받은 도축장에서 도축을 해야 하고, 성장속도에 따른 사료 소비량과 사양관리비 등을 고려해 한 마리에 1만원을 받아야 하지만 이를 쉽게 납품받으려 하는 곳이 아직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채준씨는 절망적이지 않다. 품질인증을 받고 상표등록을 해 매장에 넣어주면 제대로 된 닭고기를 먹으려는 소비자의 손길이 닿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판로부분 말고 이채준씨가 갖고 있는 아쉬운 부분이 행정적 지원이다. 일찌감치 괴산 흙살림(지금은 옥천흙살림에 가입했다) 회원으로 가입해 많은 정보와 도움을 얻고 있지만 좀더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은 다양한 교육이 군 차원에서 이루어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자신 뿐만 아니라 친환경농업에 관심을 갖고 있는 농민들을 위해서 말이다.

"계속 반복되는 영농교육보다 시대에 걸맞는 그리고 농민들 수준과 작목에 걸맞는 수준별 교육이 자주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중국의 유기농산물이 위협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땅에서 우리 것을 먹고 자란, 우리 몸에 가장 잘 맞는 먹거리만이 앞으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잖아요."

아내 구숙자(36)씨와 1남2녀의 자녀를 두고 안내면 월외리 산골짜기에서 자신의 꿈을 향해 한 발자국씩 내딛고 있는 이채준씨의 얼굴에 환한 미소는, 모두가 절망을 얘기할 때 아직도 남아있는 우리 농업의 희망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채준씨 같은 농업인들이 비, 바람을 막으며 애써 지키고 있는 우리 농업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다양한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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