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리라고 표시된 버스 정류장에서 구부정한 채로 하염없이 손을 흔드는 할머니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몇 시간째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터라 했다. 오른쪽 팔이 끊어질 듯 아프다는 할머니는 옥천 병원으로 데려달라고 했다.
올해 여든 일곱의 유봉식 할머니, 청성 어딘가에 살다가 5년 전에 동이면 남곡리로 혼자 이사를 왔단다. 딸 셋 먼저 세상을 떠나 보내고 아들 넷은 모두 객지에 나가 혼자 산다고 했다.
“늙은이가 자식들 먼저 떠나보내는 것은 보지 말았어야 하는데, 너무 못 볼 걸 많이 봤어.”
몸 좀 성했으면 여한이 없다는 할머니는 근근이 동네 마실 다니면서 노년을 살아간단다.
“이제 세상 살 만큼 다 살았는데, 그냥 편안히 갔으면 좋겠어.”
“그래도 오래 건강하게 사셔야죠?”
“오래는 못 살아도 몸 불편한데 없이 살 때까지 살면 좋지”
이마에 잘게 이는 주름살을 실룩이며 앞니가 툭 빠진 채 앙 다문 입술로 말을 한다. 할머니는 아들과 손주가 해줬다는 누런 털목도리와 연 분홍빛 스웨터를 꼭 껴입은 채로 다소곳이 차 안 의자에 앉았다.
“기억도 이제는 가물가물하고, 몸도 성치 않고.....물어봐도 잘 몰라요”
할머니는 손을 꼭 잡으며 연신 고맙다는 말만 한다. 할머니는 옥천으로 가지 않고 동이면 예비 한의사들의 무료봉사 현장으로 가서 침을 맞았다. 하나 둘 떠나버린 농촌에서 쓸쓸하게 머물러 있는 할머니가 이 시대 농촌 노인의 초상 같아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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