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옥 안내면 동대보건진료소장
유미옥 안내면 동대보건진료소장
함께사는 세상 [96]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3.01.30 00:00
  • 호수 6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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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지 마을 사람들과 함께하는 유미옥 소장

1월17일 오후 3시30분, 비가 오락가락하던 그 날 안내면 동대리를 찾았다. 유미옥 동대보건진료소장을 만나기 위해서다. 미리 전화를 통해 `지역 주민들이 댄스스포츠 교육을 받는 곳에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던 터라 바로 안내면 동대리 마을회관 2층으로 올라갔다.
 
생활체육협의회 유지연 지도자의 구령과 설명에 맞춰 동작을 따라하고 있는 동네 아주머니들 틈으로 키가 훌쩍 큰 유미옥 소장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이구 어지러워 못하겄어∼"
"바닥 쳐다보지 마세요! 더 어지러워요."
"아 이눔에 발이 말을 들어먹어야지..."
 
몇 바퀴 돈 후 어지럽다고 손을 내저으면서도 `까르르'거리는 웃음소리가 가득한 그 곳에서 유 소장은 주민들의 짝이 되어 손을 잡고 함께 동작을 따라하고 있었다. 그 때 풍경 한 쪽에 앉아 수강생들의 엄살(?)을 들으며 웃음을 짓고 있는 두 아주머니가 보였다.
 
"왜 그냥 보고만 계세요? 같이 하시지."
"오늘 처음 나와서 못해요."
 
몇 번의 질문을 통해 알아본 바로는 서석순(61)씨와 이옥순(65)씨는 현리에 볼 일이 있어 나왔다가 잠깐 들른 참이었다. 얼마 전인가 동대리에서 댄스스포츠교실을 한다는 얘길 듣고 한 번 나왔었는데 얼마 있다가 내린 눈으로 발이 묶여 참가하지 못했다는 얘기였다. 곧바로 아주머니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근디 어서 왔어요?"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금새 반가운 표정으로 유미옥 소장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는다. 유 소장에 대한 칭찬은 특히 방하목리에서 들려오던 터라 그 곳 주민을 만난 것이 기자도 반가울 뿐이었는데.
 
"진짜로 친절하고 좋은 분이에요. 동네 주민들이 모두 칭찬을 한다니까요.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동네에 와요."

"방하목리는 교통이 나빠서 한 번 나오려면 힘든데, 직접 찾아와서 약주고 혈압 재주고, 이제는 방하목리 어른들이 일부러 안 나와도 돼요. 혹시 못 오더라도 들르는 사람 편에 꼭 약을 챙겨 보내니까요."

방하목리 아주머니들의 얘기를 듣고 나니 마침 댄스스포츠 강습이 끝났다. '버스를 놓치면 안 된다'며 유 지도자를 허둥지둥 떠나보내고 난 뒤 유미옥 소장은 아주머니들과 함께 정리체조를 하고 청소당번을 확인한 후 기자에게 시간을 내 주었다.
 
주민들로부터 자유로워진 유 소장과 함께 마을회관 바로 앞에 있는 동대보건진료소로 들어갔다. 가정집처럼 아늑하게 꾸며진 거실과 진료실, 따뜻하고 훈훈한 진료소 분위기가 소독냄새 가득한 일반 병원의 이미지와는 전혀 달라 보였다. 하긴 진료소장이 24시간 거주하는 곳이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진료소는 따뜻한 '이웃'
동대보건진료소에서 유미옥 소장과 살아온, 그리고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며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보았던 `섬마을 선생님'이 떠올랐다. 이제는 골목길에서 어린 꼬마들의 웃음소리조차 쉽게 들을 수 없는, 그렇게 세상에서 점점 멀어져가며 육지 속의 섬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위기를 느끼게 하는 오지 시골마을.
 
그 곳을 지키고 있는 진료소장과 섬마을 선생님의 연결은 그럭저럭 어울렸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없지만 50∼60대의 아주머니들에게 아이같이 맑은 웃음을 찾아주고 있는 모습을 댄스스포츠 교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고 모든 기관이 떠나버린 그 곳에 남아있는 `진료소'는 그 자체로 `든든함'일 것이다.
 
"지금은 119 구급대의 활용도 높아지고 예전보다는 교통편이 좋아져 진료 측면에서는 많이 비중이 줄어들고 있지만 그래도 진료소가 있다는 것 자체를 든든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초창기처럼 왕진을 부탁하는 전화는 많이 줄었지만 그 속에서 진료소가 담당해야 할 몫은 여전하다고 유 소장은 설명한다. 그 중심 축이 `방문보건'에서 주민들의 `건강증진'으로 이동하고 있을 뿐.
 
"보건소에서도 금연이나 운동 등을 통해 주민들의 건강증진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잖아요. 각 지역에 있는 보건진료소도 마찬가지예요. 아까 댄스스포츠도 그 중 하나였구요."
 
여기에 더해 유 소장은 진료소의 특성상 스스로 계획하고 그 일을 추진해 나갈 수 있다는 매력을 덧붙였다. 시간을 정해 오지마을을 방문하는 일도 그렇고, 전 진료소장이 해왔던 이·미용봉사활동이나 목욕사업에 대한 예산을 세워 추진할 수 있는 것도 모두 가능하다는 얘기다. 주민들과 밀착해 활동하는 만큼 `사명감이 필요하다'라고 유 소장은 강조했다.
 
"진료소가 상급기관의 지도는 받지만 스스로의 수익을 올려 운영하는 독립기관이거든요. 제 인건비말고 나머지는 진료 등의 활동을 통해 얻은 수익금을 갖고 운영을 해요. 그러니까 각 진료소별로 예산 규모의 차이가 있죠. 그만큼 자기 통제가 중요해요. 내 시간을 내가 관리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더 일을 찾아서 하려고 하죠."
 
혼자 근무하기 때문에 회계정리부터 진료, 건물관리, 물품구입 등 모든 것을 신경 써야한다는 점이 힘들긴 하지만 그 `자유'가 책임을 묻는 한도 내에서의 자유라 할지라도 역시 매력적이라는 게 유 소장의 설명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진료소 근무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주민들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주민들과 함께 한다는 점이다. 사람과 사람으로서 느낄 수 있는 따뜻한 감정이상의 보상은 없기 때문이다.
 
"업무 특성상 출장을 많이 다니잖아요. 주민들이 얼마나 따뜻하게 맞아주는지 몰라요. 집에서 거둔 감자나 마늘 같은 곡식도 챙겨주시구요. 그런 모습이 좋죠. 내가 일 한만큼 보람이 돌아오는 것 같아요.  동대보건진료소에 온지 아직 1년이 안 되었는데도 동네 분들이 너무 친절하셔서 한참을 근무한 것 같이 익숙해요."
 
간혹 오후에 다른 마을로 출장을 가거나 보건소 회의 때문에 자리를 비운 틈에 진료소를 방문해 헛걸음을 한 주민들의 민원 때문에 속상하기도 하지만 유 소장은 가족같은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는 `진료소 근무'를 계속하고 싶다는 바람을 얘기했다.

유미옥 소장
유미옥(36)소장의 고향은 군북면 추소리입니다.  지금은 없어진 추소초등학교와 옥천여중, 옥천여고를 졸업했습니다.
 
"그리 넉넉하지 못한 집안 형편에 대학에 갈 꿈을 접고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었던 박대순 선생님이 대신 원서를 내 주셨어요. 저는 원서를 보지도 못했는데 집안 어른들하고 상의해서, 지금 생각하면 너무 감사하죠. 그 때 옥천여고에 처음 이과반이 생겨서 그런지 선생님이 저희들에게 신경을 많이 써주셨어요."
 
어릴 적 꿈도 간호사였다는 유 소장은 그렇게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났습니다. 당시만 해도 정부에서 처음으로 진료소 개설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어서 3년 의무근무를 조건으로 학비는 물론 얼마의 생활비까지 지급했던 때라 부담없이 공부할 수 있었다고 유 소장은 말합니다.
 
그렇게 공부를 마치고 6개월 연수 후 처음 근무한 곳이 고향 근처인 군북면 `대정보건진료소'였습니다. 그 곳에서 교회를 다니다가 지금의 남편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민 의미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인사이동이 있을 때까지 유 소장은 13년동안 그 곳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지금은 새로운 지역에 적응을 하며 동대리, 북대리, 서대리, 방하목리, 도이리 등 다섯 개 마을을 담당하는 동대보건진료소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유미옥 소장과의 인터뷰는 "우리 마음씨 착한 진료소장님이 꼭 신문에 나와서 상을 받아야 한다"는 방하목리 주민들의 성화에 못 이겨 이루어진 것임을 밝혀둡니다. 신문에 나오는 것은 이렇게 해결이 되었는데 상을 받는 것까지는 옥천신문의 몫이 아니라는 것도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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