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 있어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고향이 있어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내고향 옥천] 대전시 교육청 총무과장 천영만씨
  • 황민호 기자 minho@okinews.com
  • 승인 2003.01.17 00:00
  • 호수 6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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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남면 지수2리 출신인 천영만씨.
금의환향. 출세하여 고향에 돌아간다는 뜻의 고사성어이다. ‘출세’라는 일반적인 의미가 영 탐탁치는 않지만, ‘꿈의 성취’라는 말로 바꾼다면 그것은 정말 자신과 자신을 만들어준 고향에 큰 기쁨을 안겨주는 것이다.
 
얼마 전 가본 안남면에서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지수2리 출신 천영만(57)씨의 큰아들 천대웅(30)씨가 사법고시에 합격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아직까지 세인의 주목을 끄는 시험인지라 그 반가움은 더할 것이었다. 천영만씨는 물론 지수2리, 안남 면민들까지 말이다. 지난 11일 대전시 교육청에서 천영만씨를 만났다. 아들 소식으로부터 이어진 천영만씨의 고향 얘기를 끄집어내기 위해서였다.
 
“참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난해 11월까지만 하더라도 저는 부러울 것 하나 없는 사람이었어요. 어릴 때 뛰놀던 고향에 막내 동생(천영성씨)이 부모님을 모시고 있었으니 참 든든했습니다. 객지에 나와 생활을 해도 고향만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푸근했습니다.”
 
대전시 교육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천영만씨는 아들의 사법고시 합격소식도 자신이 나름대로 자리를 잡은 것도 고향이 있기에 더욱 빛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안남초등학교 23회 졸업생으로 지수리 수동에서 4km가량 학교를 걸어다녔던 천씨는 겨울이나 비가 올 때 여기저기 도랑 건너서 학교 가느라 힘들었다고 추억들을 하나 둘씩 기억해냈다.
 
“배바우에서 미산 가는 길에 산딸기가 정말로 수북했어요. 도시락 밥그릇에 한아름 담아서 집에 가는 길에 먹곤 했어요. 그때 수동에서는 5명 정도 같이 학교를 다녔는데, 친구 이충조랑, 최종희는 아직 고향을 지키고 있어요.”
 
그가 고향을 생각하면서 행복을 느낀 것은 실체가 없는 빛 바랜 추억이 아니라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마을 어른들 등 고향을 지키며 듬직하게 살고 있는 분들이 많아서였을 것이다. 그는 특히 고향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는 막내 동생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안남면은 저 다닐 때도 학부모들의 교육열이 대단했어요. 당시 저도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대전으로 갔고, 서울로 학교를 간 친구들도 꽤 있었으니까요. 당시 하춘호 교장선생님이나 지금도 연주리에 사시는 주희종 담임 선생님도 대단히 열성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쳤어요. 그래서 그렇게 인물들이 많은가 봐요.”
 
아들의 사법고시 합격도 그런 안남 주민의 교육열에서 비롯된 것 같다고 넌지시 말한다. 자신은 한양대 기계공학과를 다니다가 공무원 시험을 봐서 71년도부터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단다. 30여 년 가까운 공직생활에서 성실하게 지내온 날들이 바로 재산이라고 했다.
 
“대전에서 안남초등학교 23회 졸업생 모임이 있어요. 매달 한 번씩 모이는 데 15명 정도 나와요. 같이 추억도 나누고, 어려운 일 있으면 같이 돕고 살면서 큰 힘이 돼요. 지금 군에 있는 윤영규나, 도의원하는 강구성이도 친구에요. 옥천읍에서 동아서적 하는 천세헌이는 조카뻘 되고요.”
 
그에게 고향은 그리움으로서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 아직까지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살아 있는 곳이었다. 금의환향은 꼭 과거급제나 사법고시에 합격했을 때 쓰는 말은 아니라고 했다. 고향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객지에 나와서 고생을 하더라도 행복을 느끼고, 다시 그런 모습으로 고향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금의환향이라고 말했다. 

앞으로를 물었다. 
“공무원이 공직생활 끝날 때까지 하는 게 최선이지 뭐 있나요?”  그의 추억의 발원지에서 샘솟는 따뜻한 마음은 넓게 동심원을 그리며 오늘도 그의 하루를 채워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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