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내 방이 생긴데요. 너무 좋아요!" - 승원·재훈 형제
"이제 내 방이 생긴데요. 너무 좋아요!" - 승원·재훈 형제
함께사는 세상 [88]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2.10.10 00:00
  • 호수 6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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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이 승원이, 우측은 재훈이

성큼 성큼 다가서는 겨울에 조금씩 가을이 밀리는 탓인지, 아니면 여름에 익숙해 있던 게으른 몸이 아직도 가을을 준비하지 못한 탓인지 저녁이면 몸이 움츠려 듭니다. 제법 써늘한 날씨도 동이면 석화리 경로당 마당에서 뛰어 놀고 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꺾지 못했나 봅니다.
 
동네 아이들은 저물어 가는 해를 붙들고 마당이 좁다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그 속에 있을 줄 알았는데, 승원이(임승원·군남초5)와 재훈(군남초3)이는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가리키는 손끝을 따라 골목길을 따라 올라갔더니 포크레인 소리와 집터 주변에 늘어선 마을 주민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리고 동네 아이들 틈에서 보지 못한 승원이와 재훈이가 그 곳에 있었습니다. 이미 무너져 내린 집터 한 가운데 떡 하니 버티고 서서 오수처리시설을 묻고 있는 어른들의 손놀림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지난 8일은 승원이와 재훈이에게 기분 좋은 날이었습니다. 헌집을 부수고 새집을 짓기 위한 공사가 시작된 날이기 때문입니다. 승원이 형제가 살았던 오래된 집은 아침부터 있었던 철거 작업으로 이미 그 모습을 감춘 상태였습니다.
 
승원이 형제는 서울에서 돌아 온 할머니(김재옥·73)와 함께 석화리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민등록상 세대주도 이제 12살이 된 승원이고, `호주 및 관계'에도 승원이의 이름과 `본인'이라는 글씨가 선명합니다. 그렇게 세대가 구성된 것이 작년 2월12일. 벌써 2년이 다 되어 갑니다.

연세 탓인지 무릎이 편하질 못해 일하는 사람들 밥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 이웃에 사는 조카며느리가 고생했다고 안타까워하는 할머니가 승원이 형제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입니다. 할머니는 "음력 정월이며 쟤들 아빠 두 번째 기일이 돌아온다"라며 한숨이 깊어집니다.

"화장실이 제일 불편했어요. 지저분하고 거미도 살구요. 그게 제일 좋아요. 내방이 생기는 것도 좋구요." 새집에 대한 기대를 얘기하는 승원이의 꿈은 언제 바뀔지 모르지만  `축구선수'입니다. 축구가 재미있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어서랍니다. 제일 재미있는 것도 친구들하고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것이라고 승원이는 말했습니다.
 
형의 곁에 꼭 붙어서 있는 재훈이는 "형이 축구 때문에 상도 탔다"며 자랑입니다. 승원이보다 키가 한 뼘도 넘게 작은 재훈이는 아직도 한참 어리광을 부릴 때라 그런지 형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이것저것 말참견입니다. 학교 공부가 끝나고 컴퓨터를 배우다가 5시가 다 되어서야 끝나는 형을 기다렸다 꼭 같이 집에 온다는 재훈이. 그런 재훈이는 자신의 방이 생겨 좋다는 형 승원이와 달리 `자신의 방이 생겨 좋다'고 말하면서도 그 말에 영 기운이 없습니다.
 
늘 함께 자고 놀던 형과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 맘에 걸리는가 봅니다. 곁에서 할머니가 `이제 형하고 떨어져서 자면 어떡하느냐?'고 물으니 잠깐 시무룩하다가 금새 `형방에 놀러 가면 된다'고 해결책을 내놓습니다. 형에 대한 믿음이 뚝뚝 떨어지는 재훈이의 꿈은 경찰입니다. 왜 경찰이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더 걸작입니다.
 
"학교에서 꿈을 적으라고 그래서 그냥 적었어요." 말을 해 놓고 저도 쑥스러운지 씩∼ 웃어 보입니다. 승원이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할 수 있는 것도 많고 일하는 것이 좋기 때문입니다. 근데 재훈이는 빨리 어른이 되기 싫답니다.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중학교를 빨리 가야하고 중학교에서 공부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얘기를 하는 내내 재훈이는 틈만 나면 `형이 컴퓨터를 잘한다'는 둥 제 형 자랑에 정신 없습니다. 물음 하나 하나에 제 형과 소곤댑니다. 형 승원이는 그런 재훈이의 입을 막느라 정신 없고 `동생이 까분다'며 걱정이 한가득 입니다.
 
"텔레비전 보는 것도 좋아하는데요. 요즘에는 안테나가 잘못되었는지 잘 안나와요."
"귀가 맑아야 돼요. 잘 들어야 되거든요."
 
낯선 이에 대한 승원이의 경계가 하나 둘 무너질 때쯤 한창 공사현장이 정리됐고, 주위가 어둑해지며 날이 한결 더 추워집니다. 또래 아이들보다 한참은 커 보이는 승원이와 포도가 너무 맛있어서 석화리가 좋다는 재훈이는 집이 다 지어질 동안 헐지 않고 남겨 둔 아래채의 손바닥만한 방에서 살아야 합니다.
 
전기장판을 깔고 하루 하루를 보내야 하지만 20여일 만 참으면 새집에 들어갈 수 있어 마냥 좋기만 합니다. 새집이 다 지어지면 승원이와 재훈이가 하얀 희망을 한 가득 가지고 그 곳에 들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따뜻한 사랑의 건축자재로 '집짓기'

승원이와 재훈이 그리고 그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는 할머니가 들어가 살집은 흔히 볼 수 있는 건축자재들로 짓습니다. 그러나 승원이 형제의 집에는 `따뜻한 사랑'이 중요한 건축자재로 추가되었습니다. 승원이와 재훈이의 집을 짓게 된 것은 우리 지역의 한 건설업체 대표의 따뜻한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지역에서 많은 일을 했다는 이 건설업체 대표는 여건이 된다면 매년 한 채씩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무상으로 집을 지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이번 승원이 형제의 집이 그 첫 번째 집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건설업체 대표는 "아직 집도 다 짓지 않았고, 이제 시작인데 벌써 알려지면 괜히 생색내는 것으로 오해를 받을 수 도 있다"며 밝히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또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건설업을 하면서 인연을 쌓은 하청업체 등 주변의 많은 분들이 도와주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결국 승원이 형제의 집을 모두 짓고 난 다음에 다시 한번 연락을 하는 것으로 이 건설업체 대표와는 대화를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이 건설업체가 동이지역에서 일을 많이 한 인연으로 동이면체육회(회장 황규상)와 연결이 되었고, 동이면 체육회에서도 이번 승원이 형제의 사라의 집짓기에 동참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황규상 회장은 "주택을 짓는 것은 건설업체에서 맡겠다고 하니 승원이 형제가 수월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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