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기사 이용풍씨
버스기사 이용풍씨
함께사는 세상 [87]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2.10.03 00:00
  • 호수 6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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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내버스를 타면 이용풍씨의 선행을 쉽게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청산 주민들과 이씨는 잘 통한다. 청산면 만월리에서

따뜻한 가을 햇살이 내리 쬐는 아침,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시골 버스정류장은 마냥 평화로웠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기 전에 몇 번이나 버스 시간을 확인했지만 주위가 적막하기만 하니 과연 버스가 올는지 슬슬 걱정까지 된다.
 
청산면 예곡리 버스정류장 안에 마련된 기다란 의자에 앉았다 일어나기를 몇 번인가 반복하다 보니 보청천 가를 따라 버스 한 대가 내려오는 것이 보인다. `반갑다' 길을 건너 삼방리로 들어가는 버스에 올라타니 운전기사도 두 명의 승객도 낯선 사람을 낯설게 쳐다본다. 그 낯선 눈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쉽게 알아 챌 수 있었다. 삼방리 마을 앞에서 한 바퀴를 돌아 다시 나가는 버스가 잠시 멈추는가 싶더니 마을 앞에 나와있는 할머니를 향해 버스 운전사가 외친다.
 
"추석에 서울에 있는 아들네 집엔 다녀왔어요?" 손짓으로 할머니를 부르며 음료수 하나를 들어 보인다. "됐어, 아 어여 강" 손사래를 치며 얼른 가라는 할머니의 모습이 버스 타는 손자를 지켜보는 외할머니의 표정과 꼭 닮아있다. 둘의 모습을 보면서 내 존재가 얼마나 이질적이었을지 쉽게 추정이 가능했다.
 
삼방리를 돌아 나가는 버스에 승객이라곤 기자 한 사람 뿐이었다. 의자에 앉아 소개를 하고 버스를 탄 이유를 설명하자 옥천버스 운전기사 이용풍(49)씨는 의아해 한다. "지난주에 `옥천신문사 기자'라고 전화 와서 얘기했는데…."  "그 때는 만월리에서 노인들로부터 감사패 받은 것 때문에 그랬구요. 이번에는 살아가는 얘기 좀 듣고 싶어서요."

▶어릴 적 꿈도 `운전'
이씨의 고향은 충남 부여다. 대전에서 택시 운전을 했던 이씨는 택시에 대한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생각에 서울 김포공항 활주로 공사 현장에서 15톤 트럭을 운전하기 시작했고, 그 인연으로 옥천의 공사현장까지 오게 되었다.
 
그게 1984년 얘기다. 한 번 맡은 일은 제대로 해 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인지 월급도 제대로 못 받으면서도 밥 거르기 일쑤면서도 남의 15톤 트럭을 운전하는 이씨의 모습이 아내 김숙자(45)씨는 영 못 마땅했나 보다. 어느 날인가 `다 말 해놓았으니까 출근만 하면 된다'며 등을 떠미는 아내의 청에 못 이겨 옥천 버스로 직장을 옮긴 것은 89년 3월. 이직율이 높은 편이라는 버스회사에서 이씨는 10년이 넘게 버스를 운전하고 있다. 지금 운전하는 청산지역 노선으로 옮긴 것은 지난해 5월이다.
 
"어려서 집안 형편이 그리 좋지는 않았어요. 그나마 내가 막내라고 공부하라고 형들은 그랬는데. 이상하게 남들 운전하는 거 보면 그렇게 부럽더라구요. 그래서 나도 크면 운전할 꺼라고 그랬는데 말대로 된 거죠. 뭐∼" 이씨의 꿈은 개인택시를 받는 것이다. 운전경력으로는 개인택시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되지만 요즘 개인택시 받는 것이 하늘에 별 따기니 그리 쉽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한다.

▶정을 가득 담고 타는 `버스'
"어머니가 저를 낳으신 게 마흔 여덟이었거든요. 장인·장모도 모두 50대에 돌아가셨구요. 그래서 그런지 이 곳에 사는 분들이 다 부모님들 같아요. 할머니, 할아버지도 저를 자식같이 생각해 주시구요. 간혹 버스를 타시며 검은 비닐 봉지에 담은 말린 고추며 마늘, 호박 같은 것을 주시는 할머니·할아버지들도 계셔요." 이씨가 그들을 부모처럼 여기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씨를 자식같이 여기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이고, 저런 양반 없어. 법 없이도 살 양반이라니까. 언젠가는 할머니 한 분이 기름 짤 걸 갖고 쩔쩔 매니까 내려서 어깨에 둘러메고 방앗간까지 가져다 주더라고. 저 양반이 그런 양반이여." 삼방리를 들어갔다가 나와서 청산 버스정류장에서 잠시 쉬는 동안 올라탄 이섭례(평상목·72)씨가 곁에서 한 마디 거든다.

버스에 타는 여러 승객들에게 버스 운전사 이씨의 선행을 확인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대성리를 지나 만월리에 들어서자 마을 앞 광장에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여럿 기다리다 반갑게 버스를 맞는다. 사진을 찍었으면 좋겠다는 부탁에 이씨는 잠시 망설이다 버스에서 내렸고, 기다리던 만월리 주민들을 모두 불러모았다.
 
"아이구, 다 늙은 얼굴 신문에 나오면 뭐한댜"
"이쁘게 찍어줘야 돼요!."
잠깐 시골 버스 정류장이 왁자지껄하더니 이씨를 가운데 놓고 빙 둘러선다. 사진 촬영이 끝나고 서둘러 버스에 올라타는 만월리 주민들.
"아이구, 일했더니 팔·다리·어깨 안 쑤시는 데가 없어"
 
이씨의 안부 인사에 오랜만에 집을 찾은 자식에게 말하듯 이런 저런 얘기들을 건넨다. 만월리 주민들의 이씨에 대한 고마움은 특히 애틋한 것 같았다. 이씨의 버스가 들어오지 않으면 꼼짝없이 발이 묶인다는 만월리. 작년 그렇게 눈이 많이 내렸지만 이씨의 버스는 만월리에 들어가는 길을 포기한 적이 없다. 자신을 기다리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쉽게 운행을 포기하기가 힘들다고.
 
"똥 싼 할아버지를 아무도 안 태우려고 하는데, 다 씻기고 옷 빌려서 입혀 태우고 오더라니까…. 상 줘야여, 상!"

운전사 이씨를 취재하는 줄 안 만월리 주민들의 입에서는 이씨의 칭찬이 끊이질 않는다. 만월리에서 병원에 간다며 버스를 탄 사람들로 버스 안이 시끌 시끌 활기를 찾고 있을 때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 "10원 들 넣었어. 이따 올 때 줄게…." 옥천버스 운전기사 이용풍씨와 청산주민들은 오늘도 버스에 `사랑'과 `정'을 가득 싣고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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