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토너 곽중단씨
마라토너 곽중단씨
함께사는 세상 [86]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2.09.13 00:00
  • 호수 6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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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라토너 곽중단씨가 달리기를 하기에 앞서 몸풀기 운동인 발목 돌리기를 하고 있다.

최근 마라톤의 열풍이 몰아치고 있다. 마라톤의 열기는 관련 동호회의 증가와 각종 대회의 증가를 보더라도 쉽게 느낄 수 있는 요즘 사회 분위기다.

우리 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마라톤동호회(회장 김종택)를 중심으로 동호인들의 활동이 꾸준히 이어지고, 내년에는 우리 지역에서 `하프 마라톤 대회'를 개최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지난 8일 금산군에서 인삼축제를 기념해 열린 제4회 전국 하프마라톤 대회에 출전한 우리의 이웃이 눈길을 끈다. 5km 부문에 출전해 여성부 6위를 차지한 곽중단(53·옥천읍 금구리)씨다.
 
공식적으로 순위를 정하는 부문은 아니었지만 50대 여성 중에는 1위라는 게 마라톤동호회 회원들의 설명이다. 그런 곽씨는 마라톤동호회 회원이 아니다. 아침에 공설운동장에 올라가면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아침 운동을 즐기는 주민 중 한 명이다. 당연히 도로를 달려본 적이 없고 마라톤 대회는 더더군다나 참가해 본적이 없다. 그렇기에 이번 곽씨의 마라톤 대회 출전과 그 결과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처음엔 겁도 많이 먹었는데요. 막상 달려보니까 할 만 하던데요. 다음에는 10km도 달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운동도 마음먹기에 달린 것 같아요. 대회 나가기 전에 공설운동장을 열 바퀴 뛰면 힘들었는데. 대회 참가를 결정하고 뛰니까 열 바퀴도 쉽게 뛸 수 있더라구요. 앞으로도 힘닿는데까지 계속 뛰어야죠."
 
곽씨가 마라톤대회에 출전하게 된 것은 딸과 사위의 제안에 이은 아들의 권유가 결정적이었다. 올해 6월에 결혼을 하고 금산에 살고 있는 큰 딸 정해영(28)씨한테 전화가 왔다. 금산에서 열리는 마라톤대회에 사위 최민근(32)씨와 함께 출전할 생각인데 같이 하지 않겠느냐고. 어머니의 나이를 걱정했는지 시집가기 전 3년동안 공설운동장에서 함께 운동을 한 딸조차도 적극적으로 권유를 하지 못했지만, 13년 동안의 운동을 통해 쌓은 어머니의 내공을 믿은 큰아들 정주영(31)씨의 적극 권유가 결국은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고 한다.
 
이번 대회를 마치고 곽씨는 어제(13일) 처음으로 도로를 달렸다. 10년 동안 공설운동장만을 뛰다가 처음 응천리 다리 앞까지 달려보니 그 기분이 새롭단다. 지루하지도 않고. 아무래도 금산마라톤대회의 출전이 곽중단씨에게 새로운 도전 의욕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 곽씨가 운동을 처음 시작한 것은 마흔 살 무렵이다. 어느 날 바지를 입으려는데 허리가 꽉 조이는 느낌이 들었고, 그 느낌은 위기감을 고조시키며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
 
마침 남편 정익현(53)씨도 운동을 해야겠다고 아침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런 남편을 챙겨 주다보니 잠이 달아나기 일수였다. 차라리 운동장에 나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아침 운동. "처음 운동을 하러 옥천읍내 집에서 공설운동장을 올라갔는데 달리기는 고사하고 걸어온 게 힘들어서 한참을 앉아 있었어요. 걷다 뛰다 하면서 운동장 세 바퀴씩 돌았죠."
 
그렇게 운동을 시작한지 한 달쯤 지나서 몸에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다. 체형의 변화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살이 쪄서 보이지 않던 쇄골이 나타나고 목도 한 결 길어진 것 같았다. 달리기를 통해 곽씨가 뺀 몸무게는 7kg. 당연히 잔병치레도 없어지고, 허리 아픈 것도 쉽게 잊을 수 있었다.
 
"살 빼는 데는 달리기가 최고예요. 뱃살은 물론이고 군살은 다 빠지니까요." 뱃살로 고민중인 기자의 심각한 질문에 답하는 곽씨의 `달리기' 예찬은 열정적이었다. 달리기의 중독성에 대해서도 얘기를 꺼냈다. 부정적인 의미의 중독성은 당연히 아니다.
 
친정을 찾아가 늦게 까지 놀다 잠이 들어도 아침에 일어나면 조카들의 운동화를 빌려 신고, 집 앞 학교 운동장을 돌고 들어와야 직성이 풀린단다. 하루라도 달리기를 하지 않으면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지 않은 것처럼 찜찜하고 찌뿌등 하다고. 그래서 곽씨의 달리기는 산행을 한 다음날도 계원들과 관광버스를 타고 신나게 놀다온 다음날도 계속 된다.
 
"몸에 배게 하는 것이 중요해요. 추운 겨울에 눈 쌓이면 나오기 싫을 때도 있는데 한 번 빠지면 버릇들 것 같아서 안 빠져요. 운동장에서 같이 운동하는 사람들 보면 하루 빠지고 이틀 나오고, 다시 하루 빠지는 사람들은 오래 못하더라구요. 조금 힘들어도 버릇들 때까지 꾸준히 하면 돼요."
 
13년 전 시작할 당시 공설운동장에 올라서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던 곽씨는 요즘 매일 운동장 10바퀴씩을 돈다. 물론 몸을 풀어주기 위해 서∼너바퀴씩 뛰거나 걷는 것을 빼고 말이다.

취재후기
'달리기'라는 주제로 만났지만 곽중단씨의 삶도 `달리기'만큼이나 경쾌해 보였다. 고향인 영동을 떠나 집안 식구들이 대전으로 이사를 갔고 그곳에서 남편 정익현씨를 만났다. 22살 동갑내기였던 곽씨는 당시 사회분위기에 역행(?)하며 남편과 `연애'를 했다고 한다.
 
'집안 망신'이라며 연애를 말리던 아버지는 결국 보따리를 싸 절로 들어가겠다는 엄포를 놓을 정도로 분위기가 심각했다고 한다. 그로 인해 겪은 고초는 친동생이 `책 한 권 써보라' 권할 정도로 파란만장했다고.
 
'우여곡절 끝에 연애결혼에 성공하면서 동생들의 연애 여건이 훨씬 자유로워졌다'고 말하는 곽씨에게 당시는 이제는 재미있었던 옛 기억으로 남아있다. 결혼을 하고 장남 주영씨를 낳은 지 14일 만에 군대에 간 남편은 2∼3장씩의 편지를 보내면서 아들의 얘기는 없고 맨 자신의 얘기였다는 말도 덧붙였다.
 
'너무 그러니까(아들 얘기가 없어서) 미웠다'고 말하지만 얼굴에 웃음이 한가득인 곽씨의 표정은 그저 행복해 보였다. 군대를 제대하고 사우디아라비아까지 갔다온 남편은 다니던 직장으로 복귀하는 대신 고향(남편의 고향은 군서면 월전리다)에서 정착을 하겠다는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농업기술센터에 취직해 지금도 근무하고 있다. '오십이 넘은 나이에 곽중단씨 같은 얼굴 표정만 가질 수 있어도 행복한 삶이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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