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에도 미술관이..."
"우리동네에도 미술관이..."
「찾아가는 미술관 이야기」 순회전시 시작
  • 황민호 minho@okinews.com
  • 승인 2002.08.29 00:00
  • 호수 6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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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8일, 안남면사무소 앞 잔디밭 광장에서 펼쳐진 `찾아가는 미술관 이야기'에 동네 아이들이 그림을 둘러보며 환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날이 어둑어둑 해질 무렵, 수진(김수진·안남초3)이는 사촌동생 예은(이예은·2살)이를 데리고 친구 성실(전성실·안남초3)이와 그림나들이를 나왔다. 잔디밭에 일렬로 늘어선 그림 가까이에 서서 눈망울을 굴리며 나름대로 그림을 음미하는 듯 하다.
 
저쪽 한편에서는 정자그늘에 낮부터 앉아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멀리서 전시회를 지켜보고 있고, 더 가까운 둥구나무 옆 쉼터에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물끄러미 그림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 28일 민예총(충북남부지부)에서 주관하는 `찾아가는 미술관 이야기'가 안남면사무소 잔디밭광장에서 20여 일간 옥천, 영동, 보은을 순회하는 전시회 일정을 시작했다. 
 
이번 전시회에는 권영숙, 김 윤, 조한인, 정천영, 이상용, 김성장 등 여섯 작가의 작품 80여 점이 전시됐다. 이 날 이른 아침 7시부터 전시 준비를 시작해서 아침 10시에는 청산원 장애우 20여명이 방문했고, 밭일을 하러 나가는 마을 주민들도 간간이 그림을 보는 등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행사의 진행을 도운 옥천 민예총 김 윤 간사는 말했다.
 
신동인 옥천 민예총 지부장은 "일단 전시된 그림이 색깔언어로서 일반인들도 쉽게 다가 설 수 있도록 친근해서 좋았고, 다양한 문화를 접할 길이 없는 지역 농민들에게 문화적인 통로를 만들어 놓았다는 것에서 `찾아가는 미술관 이야기'가 큰 의미를 갖는다"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농번기이고 아직까지 먹고 살기에도 바쁜 농민들이 대부분이라 가까운 면사무소에서 열리는 전시인데도 발길 열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라고 마을 주민들의 저조한 참가에 대해 아쉬워했다.
 
김태순 안남주민자치센터 위원장은 "마을에도 이런 행사가 종종 열렸으면 좋겠다"라며 "일 때문에 그림 보러 갈 엄두가 안 났었는데 마을 주민들에게 참 고마운 행사이다"라고 말했다. 행사를 보러 온 안남면 도덕2리 송윤섭 이장은 "평소 TV나 대도시에나 가야 볼 수 있는 전시회를 이런 소규모 지역에서 실시하는 것이 처음 있는 일이라 낮설지만 반갑다"라고 환영의 뜻을 표시했지만 "나도 이틀 전 모임에서 듣고 알았다"라며 전시회의 홍보 부족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날 행사는 저녁 7시에 순회 전시회의 성공과 주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냈고, 고사가 끝난 후 `한마당 한소리' 풍물패와 안남면 풍물패 `둥실'이가 잔치의 흥을 돋구면서 그림을 준비한 작가와 주민들이 한데 어우러져 천에다 글씨와 그림을 그리는 퍼포먼스를 가졌다.
 
한편, 이날 행사에 참여한 우리쌀 지키기 보은취회 황선진 위원장과 보은 민예총 박달한 간사는 "우리쌀 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에 대해 옥천 농민회와 협의하러 넘어왔는데, 이런 행사에 같이 참가하게 되어 영광이다. 보은에도 온다니 기대가 된다"라고 말했다.

행사의 전체적인 진행을 맡은 정천영 화백은 "안남농민회에서 많은 도움을 줬고, 안남면사무소에서도 미리 잔디를 깎는 등 협조를 해주어 참 고맙다"면서도 "순회전시회 장소를 섭외하는데 그림도난 문제나 뭘 바라지 않나 하는 의심으로 꺼려하는 학교 등이 있어 애를 먹었다"라며 안타까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찾아가는 미술관 이야기'는 △이원초등학교(8월31일∼9월2일) ▶영동 △학산초등학교(9월4일∼9월6일) △황간초등학교(9월7일∼10일) ▶보은 △원남중학교(9월13일) △보덕중학교(9월14일∼17일) 등을 순회하게 된다.

[줌 인] 개막연 풍경속으로
벌써 가을 냄새를 실어 나르는 저녁 바람이 솔솔 분다. 전시회의 그림들이 거뭇거뭇한 밤  그림자에 동요되어 오묘한 정취를 자아낸다. 마을을 지키는 두 장승 사이에 고사떡이 올려지고 촛불이 켜진다.
 
"쌀개방 막아내고 농민세상 이루소서." "통일세상, 밝은 미래 우리 손으로 만들 수 있게 부디 기원합니다." 주교종 안남 농민회장이 화선지에 적힌 격문을 굵직한 목소리로 읊는다. 촛불에 불을 당긴 후 훨훨 타오르는 화선지가 그들의 바람을 담아낸다.
 
이윽고 울려지는 풍물! 고요한 풍경 속을 기분 좋게 헤집는 꽹가리, 징, 장구, 북 소리가 사람과 사람사이를 이어준다. 덩실덩실 두둥실, 음악의 장단에 맞춰 절로 움직여지는 팔, 다리는 보기만 해도 흥이 나고, 빙그르르 원을 그리는 행렬은 그야말로 작품이다.
 
뒤이어 바로 시작되는 퍼포먼스,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그림을 그린 작가들과 마을 주민들, 동네 아이들이 커다란 붓을 들고 쭉 펼쳐진 천 위를 한껏 수놓는다. 
   
약 2시간에 걸쳐 열린 개막 축하연은 쌀 개방을 막아내 농민들도 살수 있게 해달라는 농민들의 간절한 염원과 그 안에서 문화를 누릴 수 있는 여유와 멋을 갖게 해달라는 바람이 스며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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