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8년 동안의 취재, 그 후기
<편집국에서>8년 동안의 취재, 그 후기
  • 백정현 기자 jh100@okinews.com
  • 승인 2012.02.03 10:35
  • 호수 1118
  • 댓글 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백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2004년 봄, 신입기자로 취재현장에 투입된 이후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주민들이 기자를 통해 신문에 하시는 이야기들은 그것이 달든 쓰든 모두 삼켜야 하며 그 가치를 반추해 옥천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기자의 사명이라 생각하고 일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신념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삼킬 수 없고, 삼켰다 한 들 되새김은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무슨 놈의 지방자치냐. 차라리 관선이 낫다"거나 점잖게는 "한국에서 지방자치는 시기상조다" 등등. 불법과 부패로 찌든 지방공무원들을 혀를 끌끌 차며 조사하던 수사관들이 이런 말을 던질 때 마다, 군수나 군의원의 비리를 질타하며 평소엔 지역에 관심도 없던 수도권 언론들이 걱정한답시고 이런 말을 뱉을 때마다 지역신문 기자의 신분으로 이런 소리를 듣는 심정은 모멸감과 좌절, 분노가 뒤섞인 참담함 그 자체입니다. 지금도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머릿속에선 일제강점기 침략자들이 우리 선조들을 손가락질 하면서 했다는 말이 함께 떠오릅니다. "조선은 아직 미개하여 자신을 스스로 다스릴 능력이 없다".  아무튼 그런 이유 때문인지 평기자로 일했을 때도, 편집국을 대표하는 기자가 되고 나서도 자치의 위상에 불명예가 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다른 일보다 예민하게 취재에 임했던 듯합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칼럼을 썼지만 언젠가 마지막 칼럼을 쓸 날이 오면 반드시 이 문제를 다룬 글을 쓰겠다고요. '적어도 옥천을 대표하는 사람들에게 옥천주민들의 행복과 이익은 대한민국의 행복이나 이익에 우선하는 것이며 바로 대한민국 헌법이 이를 보장하기 위해 전국 230여개 풀뿌리 지방자치단체들의 자치권을 보장하고 있다. 국민 모두가 자기 동네의 자치를 최상의 가치로 누릴 때 비로소 전국방방곡곡이 소외됨 없이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이 우리 헌법과 민주주의의 정신이다'라는 글을 말이죠.

그런데 뜻하지 않게 당분간은 마지막이 될 기사를 쓰기 위해 만난 오규석 기장군수를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이 이야기가 오 군수의 입을 통해 터져 나왔으니 기자로서는 더 이상 후련할 수가 없습니다.

최근 지역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골프장 이야기를 간단히 드리겠습니다. 개인으로 저 자신은 골프장에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 주민 모두에게는 우리가 물려받았고 결국 후대에 건네 줄 광활한 숲을 골프장 개발이라는 방식으로 사용함이 옳은지 여부를 냉철하게 따져야 할 역사적 책임이 지워졌다는 사실만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동안 이 책임을 소홀히 했던 사람들을 비판하는 기사를 썼습니다. 그러나 찬반을 떠나 정말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런 문제를 통해 주민 스스로가 역사적 책임을 공유하고 이를 위해 성실한 관심과 자발적 참여에 나서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모습이 바로 지방자치가 '시기상조'라는 오명을 벗고 그 찬란한 자태를 드러내는 순간이니까요. 지난 8년 동안 부족한 저에게 기자의 자격으로 우리고장 주민자치의 가슴 벅찬 순간들을 기록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독자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3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캐나다 2012-02-08 02:04:49
옥천신문을 수년 동안 관심을 갖고 읽고 있습니다.백정현기자님을 포함하여 모든 분들의 글이 너무 좋다고 항상 느껴 왔습니다. 저도 캐나다 서부지역에서 (한글) 신문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일단 활자화되어 신문에 실린 글은 그 누군가가 틀림없이 읽는다는 엄연한 사실에 항상 옷깃을 여기며 기사를 작성하고 있답니다. 계속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금강 2012-02-09 17:36:04
백정현 기자의 글에서 진정성이 느껴집니다.
글은 삶의 고민과 성찰에서 나올 때 감동으로 옵니다.
백정현 기자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덕불고 필유린(덕성을 가진 사람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
힘내시길...

souljung 2012-02-11 15:07:02
동이면 골프장문제는 이제 지방자치의 성패를 가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었다.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는 그냥 이루어지지 않는다.그 첫째가 정보제공.이슈발굴인데, 그 역할을 옥천신문이 용기있게 훌륭히 수행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