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을탐방 [178] 군서면 금천리 음지말
신마을탐방 [178] 군서면 금천리 음지말
새로운 금천리 시대를 준비한다
  • 백정현 기자 jh100@okinews.com
  • 승인 2005.09.23 00:00
  • 호수 79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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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령산 아래 자리한 금천리의 편안한 모습이 보인다. 정상에서 보이는 곳은 금천리 양짓말이다.

금천리 음지말은 양지말과 함께 자연마을로 금천리를 이루고 있다. 양지말과 비슷한 규모인 24가구 40여명이 주민이 사는 음지말은 금천계곡 금천1교를 경계로 증산리 쪽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음지말 탐방에 들어가기 전부터 내심 기대를 품게 만들었던 곳이 있었다. 지난주 양지말을 탐방하며 익히 들었던 음지말 ‘작은 사목재’가 바로 그곳.

금산 추부면 성당리와 금천리의 경계를 만드는 고개인 그곳에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와 지금은 없어진 마을, ‘잿마’의 흔적을 볼 수 있다는 기대는 금천리 음지말에 도착한 발길을 바로 작은 사목재로 향하게 만들었다.

잿마로 가는 길은 옛 금천교를 지나면 쉽게 만날 수 있다. 장령산 휴양림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포장되기 전부터 금천리와 증산리로 이어지는 길을 연결하던 금천교는 도로의 개통으로 지금은 통행이 뜸하지만 마을 수호신인 서낭당이 다리의 한쪽 끝을 지키고 있고 양지말 집하장과 바로 연결되는 마을의 관문이다.

◆길 끝으로 펼쳐지는 장관
잠깐 차를 멈추고 작은 사목재까지 걸어서 오를지를 고민한다. 하얗게 시멘트로 포장이 된 길은 자동차로도 별 무리가 없을 것처럼 보인다. 급한 경사를 따라 차를 모는 동안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속살을 감추기라도 하는 듯 길 가장자리에 무성하게 핀 풀들이다.

제 멋대로 자란 이름 모를 풀들을 헤치고 오르는 동안 길 가장자리로 예전에 마을이 있었음직한 터가 보인다. 마을은 없어졌지만 층층이 자리하고 있는 다랑논은 이 길이 아직은 사람들과의 인연을 끊지 않고 있다는 목소리를 들려주는 듯 반갑기만 하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서대산 작은 사목재 정상이다. 기다렸다는 듯 거대한 느티나무가 고요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길의 포장도 여기서 끝이 났다. 3미터 폭 정도 될까?

이 길을 지나는 길손들이라면 예외 없이 고단함을 잠시 내려놓았을 고갯마루 나무그늘아래서 사진기를 꺼내든다. 건너편으로 금산군 추부면이 가깝게 보이고 옥천 쪽으로는 장령산 아래 자리 잡은 금천리 양지말이다. 산업사회에서 살기시작하면서 길은 그 의미가 변했다.

길의 주인은 자동차로 바뀌었고 자동차들은 길과 사람이 공존하는 것을 거부했다. 이리 굽고 저리 휜, 오르막 마다 그늘과 샘물로 사람들을 위로하던 이 황톳길은 이제 무심한 풀 더미에 묻혀 우리들 기억 저편으로 숨고 있었다.

◆주부들의 ‘수다’ 속으로...
“양파즙 먹으면 살이 많이 빠진다던데?” 
“칡하고 뽕나무 뿌리를 보리차 대용으로 끓여먹고 있는데 참 좋아. 아이들도 처음엔 비릿해서 싫다더니 습관 되니까 잘 먹어.”

금천리 마을회관 앞 금천포도원(대표 채상임). 지난 97년 농촌여성 일감 갖기 사업장으로 문을 연 뒤 8년이란 오랜 기간동안 포도즙과 칡즙 등을 생산하고 있는 이곳에 때마침 주부들이 모여 ‘싱싱한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가족들을 위한 건강한 먹거리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한 주부의 대전 살이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 주부는 지난 93년 가족과 함께 시댁이 있던 금천리를 떠나 현재까지 대전에서 살고 있다.

“도시서 살면 여자들은 편해. 시골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남자일 여자일이 없잖아. 공기도 나쁘고 복잡하지만 그래도 여자들 몸은 편하지.”

문득 주부들의 대화에 끼어들고 싶어졌다.

“그럼 몸만 편하면 시골서 살만 한가요?”
“아이구∼ 시골에 없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죠. 주부들이 느끼는 가장 큰 갈등은 사실 힘든 농사일이 아니에요. 가장 갑갑한 것이 교육이에요. 대전이나 서울에서 학교 다니는 아이들하고 옥천서 중·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다르잖아요. 부모 된 입장에서 요즘같이 살벌한 세상에 아이들보고 열심히 하라고 만 할 수 없는 거 아니에요?”

“꼭 좋은 대학을 보내기 위해 옥천에 사는 것이 아쉬운 것은 아니에요. 저도 아이만 대전으로 학교를 보내고 있는데 옥천에 공고가 없어서 그렇거든요. 인문고를 안가면 상고 아니고는 옥천서 고등학교를 못 보내잖아요. 힘들지만 어쩔 수 없죠.”

40대 후반의 주부, 그들의 대화를 통해 옥천의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이름이라도 알려달라고 하자 하나 같이 갈 시간이라며 환한 웃음만 남기고 자릴 뜬다.

◆“30만원짜리 봉급쟁이가 낫다!”
주부들이 자리를 뜨자 금천포도원이 다시 일과를 시작한다. 깨끗하게 씻은 장령산골 포도가 채상임(49)씨와 이복임(63)씨의 부지런한 손을 거쳐 탈봉, 착즙, 살균, 포장의 과정을 밟는다.

금천포도원은 이미 그 청결함과 깔끔한 맛으로 상당한 단골을 확보하고 있는 ‘노른자’ 일감 갖기 사업장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시원한 장령산골 포도즙 한 잔에 기분까지 상쾌해진 뒤 마을로 발길을 옮긴다.

“어떻게 사냐고? 농촌이 얼마나 힘든지 몰러? 내가알기론 말여 30만 원 짜리 봉급 주는 회사만 있어도 농사 때려 칠 사람들이 반천은 될껴. 그렇게 살어.”

김운형(67)씨다. 금천리가 고향인 김씨는 평생 농사만 짓고 살아온 진짜 농사꾼, 그가 평생을 바친 농촌은 오늘 더 떨어질 곳도 없는 최악의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등짐지고 꼬불꼬불한 산길 넘어 다니면서 포도하던 시절이 지금 생각하면 정말 꿈만 같아. 마을 길 넓어지고 세상이 다 바뀌었다고 하지만 시골사람 사는 것은 그 시절에 전혀 비교가 안돼. 그 시절 포도 한 상자 몇 만원씩 받았어. 지금은 6천원도 받기 힘들고 그나마 반천은 상자 값, 농약 값, 운송비로 다 떼잖아. 최소한 우리 마을에서 돈 보고 농사짓는 사람 얼마 안돼.”

우리는 지금 국민소득이 2만 달러라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이곳, 이 사람은 어느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쉴 사이 없이 반복되는 2만 달러의 구호는 사실인가 아니면 기만을 위한 구호인가?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취재수첩에 김씨의 말을 기록하는데 음지말 반장 이재환(46)씨가 불쑥 김씨 마당으로 들어왔다.

“주민들이 잘 안보이네요.”
“예. 일손이 귀한 시기라 다들 품이라도 팔러 나가셨죠. 마을에서 크게 농사짓는 분들이 없다보니 낮엔 마을이 이렇게 텅 비어요.”

그랬다. 텅 비어 있었다. 그러나 금천리는 텅 빌 수 없는 곳이다. 서화의 제1경 금천계곡을 자산으로 품고 있는 마을이 바로 금천리기 때문이다. 금천리는 비어있는 듯 보였으나 한편으로는 기다리고 있었다. 천혜의 자원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금천리의 시대를….

“금천리의 변화를 준비 할 때입니다”
김종정 금천리 이장, 군서면 주민자치 위원장

   
▲ 금천리 김종정 이장
김종정(50)이장은 바쁘다. 이장으로, 주민자치위원장으로 그의 몸은 여러 사람의 몫을 해 내고 있다. 그의 아내 채상임씨가 운영하는 금천포도원에 몇 번이나 기별을 하고서야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우선 올해 초부터 그가 이끌고 있는 군서 주민자치위원회의 근황을 들었다.

“풍물교실이 높은 주민참여 속에 끝나고 지난여름 3개월 동안 건강댄스교실이 역시 좋은 호응을 얻으면서 운영돼 왔습니다. 남성의 참여가 없어 댄스스포츠로 교육내용이 실시되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군서주민자치센터의 주민교양 프로그램은 성공적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오는 10월까지 계속되는 건강댄스 교실에 남성 참가자는 김 이장을 포함해 두 사람 뿐이란다. 주부중심의 참여를 부부중심의 참여로 확대할 수 있는 묘안을 고민 중이다. 그가 생각하는 군서의, 금천리의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군서는, 특히 그중 금천리는 옥천에서도 대전의 중심권과 가장 가까운 곳입니다. 농업이든, 관광자원이든 대전을 염두에 둔 장기계획이 그래서 필요한 것은 당연합니다.”

그는 금천리의 근본적인 변화를 생각하고 있었다. 금천계곡과 주민들이 하나의 모습으로 사는 일, 그것이 자산이 돼 군서 전체의 활력으로 자리 잡는 일을 꿈꾸고 있었다.

“대전에서 보면 금천계곡처럼 가깝고도 아름다운 관광지는 없습니다. 엄청난 자산이죠. 자치단체와 주민이 가꾸기에 따라서는 지금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막대한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어요. 금천계곡을 찾아 온 사람들이 장령산의 포도 등 농산물을 구입하고...잘 조직된 시스템만 있으면 일년 내내 군서의 활력소가 될 수 있죠. 그렇지만 현재 주민들도, 자치단체도 아직 준비가 돼 있지 않습니다. 더 고민해야죠. 더 연구하고 고민해서 모든 금천리 주민들과 군서면민 전체가 우리의 자산을 통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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