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아름답게 해준 내 고향"
"인생을 아름답게 해준 내 고향"
[내고향 옥천] 안남초 16회 동창회장 주춘종씨
  • 황민호 기자 minho@okinews.com
  • 승인 2003.03.28 00:00
  • 호수 66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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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남면 연주2리 출신인 주춘종씨.
반백의 머리에서 그의 세월의 무게를 느꼈고, 수척한 얼굴에서 그의 삶이 녹록치 않았음을 예감했다. 하지만, 형형한 눈빛은 삶에 대한 희망을 읽을 수 있게 했다. 안남면 연주2리가 고향인 주춘종(66)씨는 덤으로 사는 인생을 즐기고 있었다. 

다시 주어진 새 삶에 의욕적으로 아름다운 덧칠을 시작했다. 그가 위암선고를 받은 것은 20여 년 전, 한참 일할 40대에 위암을 선고받고 성실하게 다니던 일터를 그만두게 됐을 당시 그의 심정은 삶에 대한 애증이었다. 힘들지만 안정된 직장인 철도청에서 열심히 일했고, 느즈막히 30대에 한 결혼 생활에 한참 재미를 붙일 때였다.

두 차례 수술 끝에 다행히 위를 잘라내는 수술을 하며 위기를 넘겼고, 완쾌라는 욕심보다 단지 숨쉬며 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기로 했단다. 그 이후로 찾은 것이 고향 친구들이었다. 같이 그 푸른 금강 하이얀 백사장에서 뛰놀던 친구들이 머릿속에 아련하게 그려지고, 꼭 만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1989년에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옥천 가까운 대전에 자리를 잡은 것도 그 때문이다. 

안남초등학교 16회 동창들을 찾았다. 안남면 도농리 소야에 사는 천유헌씨를 만났고, 옥천에 있는 유상봉씨, 유동찬씨, 정홍우씨, 대전에 있는 유갑종씨, 서울의 이양수씨 등과 반갑게 만났단다. 그는 90년도 금강유원지에서 처음 만났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67명이 초등학교 졸업을 한 후 3∼40년만에 만났는데, 벌써 세상을 떠난 친구들이 절반을 넘었다고 했다.

조금 더 일찍 모일 걸 하는 아쉬움이 안타까움으로 변해있었지만, 남아있는 친구들을 다시 만난 것도 그에겐 행복이었다. 그리고 16회 동창회장을 맡았단다. 고향 친구에 대한 간절함이 거기까지 이끌었다고 말했다. 지금, 그는 더없이 행복하다.

농번기 들어가기 전 봄과 가을걷이가 끝나는 가을이면 매번 동창 친구들 30여 명과 유유자적 옛 추억을 더듬으며 여행을 떠난다. 이번에는 대둔산이다. 옛친구인 조종승씨의 결혼을 축하하고 1박2일로 대둔산에 올라 별장에서 하룻밤 묵고 그 동안의 회포를 풀 예정이다.

친구들이 손수 보내온 농산물도 먹고, 가끔 안남에 놀러가 친구들과 차 한 잔씩도 하고, 노년에 더듬으며 다시 찾은 유년의 기억은 그렇게 새롭고 반가울 수가 없나보다. 만면에 환한 웃음은 수척하게 들어간 볼 살도 풍성하게 보이게 한다. 

“초등학교만 다니고 대전으로 나왔지만, 선산이 그 곳에 있고 내 뿌리가 거기였다는 것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어요. 그리고 나중에는 나도 거기로 가서 남은 여생을 마감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요. 표현할 수 없는 끌림이 날 그 곳으로 이끕니다.”

늦게 결혼한 탓에 이제야 딸 시집을 보내게 됐다며 웃는 그는 아들이 곧 변리사 시험에 합격할 테니 그 때 다시 연락하겠노라고 말했다. 가족과 옛 친구들. 수많은 가슴앓이와 상처 속에서도 자신을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가족이라는 사랑스런 둥지와 고향이라는 따뜻한 집을 그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듯 했다.

"친구들. 그 동안 너무 잘 살아줬어요. 이렇게 몇 십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만나니 그 때의 기억들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져요. 모두들 참 순수하고 착했는데... 이제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살아야죠.”

동창회 중 가장 활성화되고, 정으로 똘똘 뭉친 동창회라며 주위의 부러움을 받는다는 안남초 16회 동창회에는 주춘종씨가 있었다. 

“3년 선배인 정덕기(전 충남대 총장)씨도, 1년 선배인 정창영(안남농협조합장)씨도 16회 동창들 모임이 부럽다고 그래요. 제가 노력한 것보다 주위 친구들이 정이 많아서 그래요. 오히려 제가 고마울 뿐이죠.”

그가 ‘덤으로 사는 인생’에서 다시 찾은 유년 시절의 기억들은 황혼녘에 접어든 그와 친구들에게 그 무엇보다 값진 보석상자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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