沃川郡守님 참으로 고맙습니다, 새뜰마을 사업으로 살기좋아진 살고싶은 돌아오는 신바람나는 아름다운 꽃피는이상향의 우리마을
 고향사람
 2021-04-01 09:16:23  |   조회: 4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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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불철주야 옥천발전에 노심초사 하시는 군수님
감사합니다.

그동안 벽지로 발전에서 소외되었던 안내면 방하목리,
지금은 방하목리에서~질신리~장선리~월외리 순환 버스노선을 군에서
만들어 주셨기에 주민들의 발인 버스로 보은과 옥천을 왕래하는 생활이 빨라지고
편리해졌습니다.

전국에서 서로 새마을운동이 먼저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방하목리가 최초로 새마을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새마을운동이 비롯되기전에 동대휴게소가 있는 사부랑재에서 방하목리로 들어오는 구불
구불 없던길을 마을에서 서로가 팔을 걷어부치고 나서서 자율적으로 만들면서 새마을운동의
바람이 불기시작 했습니다,

이것이 방하목의 정신입니다.

새뜰마을로 선정하여 주시어 영원한 아름다운 한송이 꽃이 피어나고
하루가 다르게 도로노폭 확장및 농수로공사는 물론, 마을 새 개선등 살기좋은 지역으로
만들어주시는 노고에 주민모두 마음속으로 깊은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군수님
모두가 코로나19로 어렵고 힘든 시기 입니다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금상첨화)고 하듯이
조금만 더 지대하신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건의 드리오면
개밥골에 버려진 농지 조그마한 저수지(방하목리2구 월경땅 논가에서 사시사철 흘러넘치는 샘)
만들면 월외리 서답벌 같이 안내면 관내 마을마다 다 있는 저수지가 됩니다.
물이 풍부한 옥천의 상류수가 될것입니다,

보은속리산 말티재!
옥천방하목 말목재!

아울러 수한면에서 우당골(축사)및 말목재 고개(말의 목같이 생겼다고 붙여진 고개이름)까지 보은지역은
이미 몇년전에 도로포장이 다 되어있습니다,

말목재는 질신리에서 또는 방하목에서 농사지으러 넘나들고 질신,장선리에서 옥천을 오가던
대로였습니다,
지금도 추석이 가까워지면 많은 사람들이 말목재로 넘나들며 영면하신 선조 산소를 찾아가 서로가
(옥천에서 보은땅으로,보은땅에서 옥천땅으로)
벌초를 하는 결코 버려진 폐도가 아닙니다,

다시한번 어렵고 힘드시겠습니다만 말목재고개길 확장포장을 재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옥천 화이팅! 군수님, 군의장님,안내면장님 화이팅!
2021-04-01 09: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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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사랑 2021-04-21 15:59:58 115.xxx.xxx.8
저수지 가 커야만 저수지가 아닙니다,
연못도 엄밀히 말하면 저수지로써 도이리저수지가 작은 규모지만
저수지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방하목에 도이리 저수지 보다 더 작으면 어떻습니까
담수로 농사를 지을수 있고 늘 마르지 않는 흐르는 물줄기가
될것입니다,

참옥천사랑 2021-04-01 17:48:03 115.xxx.xxx.8
지난날 방하목리 웃갱변 농로가 너무 좁아서 자동차가 논으로 구르는등 사고가 빈번했는데 이제 앞으로는 노선확장으로 안전확보가 되었습니다.
충북 옥천군이 올해 중앙부처와 도 단위 공모사업 등에 다수가 선정되며 알찬 결실을 맺고 있다.
이 사업에 선정된 안내면 방하목리는 올해부터 2019년까지 3년에 걸쳐 빈집철거, 지붕개량, 집수리, 마을안길 정비 사업 등을 실시하며 주거 환경이 대폭 개선될 예정이다.
이 외에도 농촌중심지활성화와 창조적마을만들기의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에 73억56백만원, 생활체육시설 설치 지원사업에 4억8천만원, 도시계획도로 개설을 위한 도 지역균형발전사업(16억원)에도 선정돼 군민의 삶의 질 개선과 지역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을 확보했다.

방하목 2021-04-05 11:51:56 115.xxx.xxx.8
영원한 방하목
충북 음성의 꽃동네 이름이 생각나서 방하목이 살기좋은 마을로 바뀌듯이
꽃동네 꽃동산 만들어주세요
마을옆산 앞산에 봄여름가을에 피는 여러가지 꽃나무(서울의 개나리동산 처럼)를 심으면 꽃동산 꽃밭골이
분명히 될것입니다.

고향의 봄 2021-04-09 12:03:35 115.xxx.xxx.8
(1절)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2절)
꽃동네 새동네 나의 옛고향
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무릉도원 2021-04-11 20:10:10 115.xxx.xxx.8
방하목리는 옛부터 선조들께서 피난한 무릉도원 그러나 방하목리에는 마을상징 역사가 없다
사당도 없고 석기시대 유물도 없다 때문에 느티나무 아래 자그마한 돌탑을 높이 쌓아 상징물을 만들어야 한다
지리산 노고단 그 높은곳에도 돌탑이 있다(마이산 돌탑등).
방하목리 마을도로가 많이 넓어져 다시는 아픈역사( 방하목리에서도 경운기 전복사고로 마을분이 돌아가신 사고가 마음의 상처로 남아있다,
경운기 전복돼 운전자 사망 옥천신문 2014.10.14 10:40:47 안내면에서 경운기가 전복돼 운전자가 사망. 10일 오후 5시50분 경 안 내면 한 마을에서
농로를 내려오던 경운기가 길 옆 밭으로 떨어지면서 전복 되는 사고 발생 이 사고로 운전자 A(73)씨가 사망) 없길 기원.

이정표 2021-04-11 21:01:45 115.xxx.xxx.8
영원한 염원의 돌탑
사람들은 하나 하나 소원을 빌며
돌탑을 쌓았으리
풍우에 용케도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구나
돌하나 하나에 마음을 담아 쌓으니
한 개 한 개 쌓아올린 소원탑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염원의 돌탑은
늘 그 자리 지키며 솟아 있으리라.

꿈은 이루어진다 2021-04-14 13:44:31 115.xxx.xxx.8
진인사대천명
고향땅 발전은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다 보면
반드시 가장 살맛나는 최고가 되리라
진인사대천명으로 전진만 있을뿐이다.

희망 2021-04-15 11:58:48 115.xxx.xxx.8
조금만 더 한발자욱만 앞으로 나아가면 희망봉이다.
“병원 갈 일도 막막한 방하목의 어려움. 버스를 타려면 육각정까지 걸어가야 하는 오지 마을의
시내버스 한 번 타기 위해서는 3km에서 5km까지의 거리를 걸어나와야 가능.
누가 첩첩산중 벽지마을 방하목리에 도로가 나고 버스가 오갈것을 상상이나 하였던가
그러나 지금은 현실로 그옛날 사부랑재(한때는 육각정옆에 까지 옥천시내버스 운행시기도 있었다)로
걸어다니며 무한정 버스를 기다렸던 전설을 가지고 있지않은가

애향민 2021-04-15 17:26:20 115.xxx.xxx.8
방하목-방아목(방아래목:방아랫목)의 어원 및 깊은 뜻
시골에 보면 장작불을 지펴 방을 따뜻하게 해서 편안할수 있는곳 부엌에서 불이 활활 피어오르고
방이 뜨거울 정도로 후끈후끈. 한반도에서 가장 오랜 세월 사랑받은 난방 방식에서 유래된 마을이름,
웃갱변 아래갱변은 윗냇가 아래 냇가로 물이 흐르면 강변이라고 불렀던것 아닐까
<강변살자>강변이 있으면 반드시 강이든 연못이든 있어야 마땅하다.

두손모아 2021-04-17 11:43:39 115.xxx.xxx.8
방하목 동구밖 느티나무아래 돌탑을 둥글게 높이 쌓아 길이 보전을
강화마니산 천제단. 태백산 천제단, 장산천제단, 무등산 천제단,팔공산 제천단, 설악산 제천단,
우리민족은 옛부터 천제단(제천)을 쌓고 하늘에 빌어온 겨레였다.

고향사람 2021-04-18 09:13:19 115.xxx.xxx.8
산신제 돌탑이 너무 쬐그만하다.
오지 산골 마을 `방하목' 다섯개 자연마을
2년에 한번 산신제 지내
마을유래비 뒤로는 마을주민들이 매년 정월대보름 전 날, 마을의
안녕과 평원을 기원하는 `동제사'를 모시는 탑신
장수하며 사는 마을 앞에 둥근 보름달 같은 가장높은 두루봉(시루봉)
공기 좋고, 물 좋고, 인심 또한 좋아 아무런 걱정 없이 사는 마을

한마음 2021-04-19 12:15:55 115.xxx.xxx.8
방하목에 웃갱변 아래갱변은 곧 강변으로 살기좋은 고장이기에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
절골이 있으면 절이 있었을 것이다
언젠가는 다시 절이 들어오겠지
높지않은 말목고개는 아리랑 고개
기존의 길이 넓혀지면 옥천보은이 하나가 된다.

산따라 물따라 2021-04-20 11:40:13 115.xxx.xxx.8
돌탑(탑신) 높이 쌓아 마을신앙. 방하목의 상징으로 삼자,
산신당은 산중턱 너무 먼 나무가 우거져 험한산길, 지금의 탑은 산신+탑신으로 높이쌓으면 된다.
"3·1절이던 지난 1일 태백산 천제단 일부가 무너졌다.
강원 태백시는 지난 1일 오후께 천왕단의 뒤쪽 돌벽 일부가 무너졌다고 3일 밝혔다.
태백시는 원인을 강풍으로 추정했다.
천제단이 무너진 것은 2008년, 2012년, 2019년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이다
국가 민속문화재 228호인 태백산 천제단은 주봉인 해발 1천567m 장군봉의 장군단과 한배검 비석이 있는 천왕단
그리고 천왕단 남쪽 아래의 하단 등 3개 제단으로 구성돼 있다. "

무릉도원 2021-04-20 16:36:15 115.xxx.xxx.8
사람들은 탑을 바라보며 소망을 기원한다.
탑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마을 입구에 세우기도 하고 산에 돌을 쌓아 탑을 만든다.
지금 남아있는 탑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인도 산치에 있는 것으로 기원전 1세기에 축조됐다고 한다.
불자들은 사월 초파일에 밤새도록 탑을 돌며 부처의 공덕을 찬미하고 각자의 소원을 빈다.
충북 괴산군 청천면 도원리 피거산 중턱에는 장엄한 300여기의 돌탑 무리가 있다.
전북 마이산에도 돌탑이 유명하다.

고향생각 2021-04-20 20:37:03 115.xxx.xxx.8
어린시절 들었던 이야기- 방하목 서낭재와 무드리(물돌이) 사이 도랑인 냇가에 옛날 옛적에 비가
많이 내려서 큰 바위가 홍수에 굴러 물길을 막았는데 꽃밭골에 사는 오씨집안에 아기장수가 태어났는데
얼마나 힘이 세었던지 이 바위돌을 번쩍 들어서 돌위에 올려 놓았다고 한다 지금도 그 바위는 한자리에서
떨어지지 않고 서있는 유일한 입석인데 대부분 알지 못한다.
삼송정 앞산 중턱으로 산림도로를 만들어서 사극에 나오는 말을 달리는 광경을 촬영하는 영화세트장으로
여기 보다 더 좋은곳은 없는데 아쉽다는 생각을 지울수 없다.

고향사람 2021-04-21 08:44:38 115.xxx.xxx.8
방하목 무드리의 선돌 바위<자연적인 입석>는 마을입구 수문장으로 본존할 문화유산이다.
선사 시대에, 자연석이나 약간 다듬은 돌기둥을 땅 위에 하나 또는 여러 개를 세운 거석(巨石) 기념물.
2~3미터에서 10미터에 달하는 높이로 족장의 위력을 나타내거나 돌에 대한 원시적 신앙의 대상물
또는 묘비나 지역 경계의 표지로서 세워진 것이다.
방하목 선돌은 사람이 세운것이 아닌 자연입석으로 석기시대 유물일것이다.

방하목 2021-04-21 13:35:12 115.xxx.xxx.8
선돌을 모르면 방하목리를 모르는것이다.
아무도 관심없는 냇가 바위위에 오려놓은것 같은 서있는 입석인 선돌은 분명히 석기시대 유물이다,
너무 커서 방하목 동네로 옮길수도 없으니 주변환경 정비로 길이 보전해야 할 역사이다.

청산유수 2021-04-21 14:11:06 115.xxx.xxx.8
방하목 저수지는 언제쯤 만드나?
해마다 극심한 가뭄을 겪을때마다 느끼는건
방하목리 끝자락인 개밥골은 오래전에 논밭이 산으로 변한지 오래됐다,
어차피 그곳은 지도상으론 길이 있겠지만 사람이 다닐수없는 곳으로 변했다,
이런곳에 자그마한 저수지(교동저수지 크기)를 만든다면 농사짓는데 가뭄해소가 된다
안내면내에서 저수지 없는곳은 유독 방하목리뿐이다,

고향산천 2021-04-22 11:04:59 115.xxx.xxx.8
방하목 앞산은 보은쪽에서는 검어산 이라고 부르고
옥천쪽에서는 두루봉.시루봉이라고 부른다,
옥천 보은에서 분명 명산이지만 볼거리가 지금까지 없었다
때문에 개나리 진달래를 심으면 다른고장의 철쭉축제때
진달래 축제를 열수가 있는 그리고 삐끔터 뒷산 꼭대기에는
옛날에 연못을 팠다가 메웠지만 물이 풍부하게 넘치는
산산호수터가 기다리고 있다.

생각을 바꾸자 2021-04-22 19:44:11 115.xxx.xxx.8
방하목리에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기시작 했을까
아무도 모른다고 할것이다 하지만 분명한것은 임진난 전에 조중봉선생이 안내면에 들어왔으며
이름도 없던 방하목리에 삼성(배씨 황씨 최씨:초계최씨시조는 보은현감 역임)이 피난을 하기위해
들어왔다고 알고있다,
그럼 그전에는 사람들이 살지않았는가?
신라시대에 옥천육씨시조가 안내인포리에 터잡으면서 후손들이 번성하였으니 역사는 이렇게
거슬러 올라간다.
뿐만 아니라 서대리와 방하목리 경계에 정씨문중산과 육씨종산, 김씨종산등 신라 고려 조선시대
모두 방하목리에 사람이 살았다
쟁기로 밭을 갈다보면 옛날 질그릇 조각들이 나왔었다,_
삼송정 너머에 빈대골에도 여러가구 50~60년대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