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의 대물림'은 이제 끝내야 합니다
 전 변
 2000-11-14 12:40:38  |   조회: 4008
첨부파일 : -
K형께.
완연한 가을입니다. K형이나 나나 이젠 가을이 오면 낭만이니 하는 '멋진' 낱말들보다도 우선 겨우살이같은 '현실적'인 걱정부터 할 나이가 되었군요. 지난 번 만났을때 본 귀밑의 흰머리 몇가닥이 영 잊혀지지 않네요. 참 야속한 세월이 아닐수 없습니다.

이렇게 글을 드리게 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이번 이원중학교에서 있었던 학생 두발자유화 관련 토론회에서 학생들의 머리를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하는데 K형의 막후(?) 영향력이 결정적인 위력을 발휘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한번도 해 보지 않은 '실험'을 내 아이에게 해 볼 수는 없다"는 K형의 마음을 십분 이해합니다. 또 '냇물을 건널 때 80노인이 60먹은 자식에게 등을 내밀며 업히라고 하더라'는 고사에서 보듯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부모에게 있어서 자식은 영원한 '아이'일 수 밖에 없다는 점에도 동의합니다. 원래 부모는 자식이 아무리 자라더라도 항상 마음이 안놓이는 법이지요.

그러나 아이를 '아끼는 것'과 '통제하는 것'은 엄연히 틀린게 아니겠습니까. 진정으로 아이들을 아낀다면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을 통제하도록 해야하지 않을까요? 나는 K형이 왜 그렇게 아이들을 믿지 못하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군요. 강아지도 몇 달만 교육시키면 할 일과 해서는 안될 일을 구분하지 않습니까. 하물며 인간인 우리 아이들이, 십 몇년 동안이나 교육을 받은 우리 아이들이 그깟 머리 좀 기른다고 자신의 행동조차도 통제하지 못할거라는 K형의 얘기는 도무지 이해할수가 없습니다.

설사 아이들이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했다고 합시다. 그걸 꼭 머리길이나 복장 탓이라고만 생각하는것도 이해하기가 참 어렵군요. 머리 아니라 그보다 더 한 걸 허락하더라도 강아지만큼의 교육만 받았다면 자신의 행동은 자신이 통제할 수 있을게 아니겠습니까. 십년씩이나 교육을 시켰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행동조차 통제하지 못한다면 절대로 머리나 복장, 포괄적으로 아이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되는거지요. 무언가 교육자체에 문제가 있던가 그렇지 않으면 선생님들과 학부모, 그리고 우리 어른들 모두가 교육을 잘못시킨 탓이라고 생각해야 맞을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뭐 나는 교육전문가가 아니기때문에 창의력 다양성같은 전문적인 용어는 잘 모릅니다. 그런데 머리길이와 공부와의 함수관계는 더더욱 모르겠더군요. 단지 선생님들을 포함해서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을 믿지 못하는건 결국 지금까지의 교육이 잘못되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결과라는것 정도는 알겠더군요. 그걸 왜 우리 어른들이 책임 질 생각은 하지않고 아이들을 속박하는 빌미로 사용해야 하는지 참 답답합니다.

K형. 그동안은 앞만보고 달려오느라 바빠서 한가하게 뒤를 돌아 볼 시간도 없었지요. 이제, 우리 잠깐 서서 뒤를 한번 돌아다 봅시다. K형과 내가 어두컴컴한 호떡집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한가운데로 고속도로가 난 서로의 머리를 가리키며 낄낄거리던 그 시절을 한번 떠올려 봅시다......결국 우리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지요. "머리마저도 자신들의 취향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어른들을 저주한다"며 말입니다. "이 더러운 세상....."어쩌구 했던 것도 기억이 납니다. 벌써 삼십년이 다 된 얘기지만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군요.

K형. 그때 우리는 무엇에 그렇게 절망하고 분노했던 걸까요. 그때 우리가 원했던게 무엇이었을까요. 머리 기르는 것? 옷 마음대로 입는 것? 마음대로 노는 것? 공부하지 않는 것? 아니지요. K형도 뚜렷이 기억하실겝니다. 우리가 원했던 것은 "우리의 문제만큼은 우리가 책임지게 해 달라"는 소박한 요구였음을......우리의 문제를 우리의 관점에서 보지 않고 자신들의 잣대로 판단해 버리던 어른들의 무자비한 횡포에 대한 반항이었음을......

이제 세월이 흘러 당시의 피해자(?)였던 K형과 내가 이번에는 가해자(?)인 어른이 되어 다시 아이들의 저주를 받고 있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윤회입니다. 참으로 소름끼치는 '저주의 대물림'이 아닐수 없습니다.

K형. 우리 이제, 아이들을 한번 믿어 봅시다. 아이들의 눈높이로 아이들을 보도록 노력해 봅시다. 그것이 어렵다면, 오래 전 우리들의 그 시절로 되돌아가서 그때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동료로서 보도록 노력해 봅시다. 아이들이 무엇때문에 고민하고 무엇이 아이들을 괴롭히는지 도대체 어떤 것들이 아이들을 절망하게 하는지 아이들의 시각으로 한번 생각해 봅시다.

그래서 K형. 아이들의 문제는 아이들이 결정할수 있게 해 줍시다. 아이들이 제 몸의, 제 인생의 주인은 자신임을 깨닫게 해 줍시다. 아이들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라는 것을 인정합시다. '아이들은 성숙이 덜 되었기 때문에 어른들의 통제가 불가피하다'는 말 따위는 일본인들이 퍼쳐놓은 한갓 '우화'일 뿐 임을 이해합시다. 그래서.....우리가 그토록 원했으면서도 할수 없었던 것들을 우리 아이들이라도 하게 해줍시다.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모처럼 글을 쓰면서 아이들 얘기만 해서 미안하군요.
다음에 만나면 삼겹살에 소주라도 한잔 하면서 더 자세한 얘기를 나눠보지요.
그럼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2000-11-14 12:40:38
211.xxx.xxx.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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