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정말 아이들을 버린 것일까요...?
 박종원
 2000-11-14 12:34:50  |   조회: 4175
첨부파일 : -
전 지난 24일(화요일)에 서울역에서 열린 전교조 조합원 결의대회에 참가한 충북의 초등교사입니다. 제가 집에 돌아와 뉴스를 보니 어느 학부모님이 "교사가 아이들을 버려 두고 그렇게 해도 되느냐!"고 꾸짖으시더군요. 또 KBS 뉴스로 보니 정말 집회에 참가한 교사들은 아이들을 버린 나쁜 사람들이더군요. 그리고 교육부에서는 이번 집회에 참가한 교사들을 전원 징계하겠다고 합니다. 공무원인 교사가 집단행동을 하는 것이 위법이고 교원노조법에도 단체행동권이 없으므로 명백한 위법이라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분명히 위법인가 봅니다. 좋습니다. 저는 징계를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왜 징계를 각오하면서까지 그 자리에 갔을까 말하지 않을 수 없군요. 저는 교사는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당연한 본연의 임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제가 발을 내디딘 학교현장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바로 군대였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항상 질서가 강조되고 무슨 활동을 해도 실적을 남겨야 하며, 비록 하지 않았더라도 기록상으로는 근거를 남겨야 합니다. 쏟아지는 공문들은 상당수가 아이들 교육과 별로 관련이 없는 무슨무슨 계획서, 실적보고, 현황보고, 사례보고가 수두룩하며 거기다가 학교는 모든 행정기관이 자기들의 실적을 생산하는 실적생산공장의 역할까지 해 주어야 합니다. 이름도 처음듣는 기관들이 학교마다 글짓기니 미술대회니 참가를 요청하고 학교는 또 같은 공기관이 요청하기 때문에 되도록 들어줘야 한답니다.
저는 출근해서 퇴근 때까지 아이들과 함께 있고 싶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일에 시간을 쓰고 싶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시간과 여건을 만들어 주고 나서 제가 무능력하고 게으르다고 질책하면 기꺼이 책임을 지겠습니다.
교사들이 단체행동으로 아이들을 버려 두었다고 욕하십니다. 하지만 버렸다는 표현은 너무하십니다. 저는 연가를 냈습니다. 공무원은 누구나 연가를 낼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교사이기 때문에 연가를 내고 학교를 하루 안 나가면 아이들을 버리는 것이 됩니까? 같은 공무원이면서 교사는 방학이 있기 때문에 연가보상비라는 것도 없답니다.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30만명이 넘는 전국의 교원 중에서 집회에 참가한 7000명이 연가를 냈기 때문에 학교가 마비되고 학습권이 그렇게 심하게 침해받습니까? 집회에 참가한 중등교사들은 담임보다 교과담당 교사가 훨씬 더 많습니다. 학교에 남은 선생님들이 얼마든지 수업시간을 바꿔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초등교사인 저의 경우에는 전담선생님과 시간을 임시로 바꾸기로 했고 그래도 남는 시간은 제가 아침 일찍 학교에 나가 아이들과 미리 수업을 당겨 마치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KBS뉴스에서는 조합원이 많이 참가한 서울지역 몇몇 학교의 이야기를 마치 전체학교가 그런 것처럼 전하고 있더군요. 그리고 어느 교감선생님께서는 그래서 교사라 할 수 있느냐고 개탄하시더군요.
그 교감선생님, 아니 교육부에게 묻고 싶습니다.
이전에 전교조가 아닌 다른 교원단체(명칭은 밝히지 않겠습니다)가 교육자대회니 서명운동이니 하면서 집단행동을 할 때는 일언반구도 없더니 언제부터 그렇게 학생의 학습권을 챙겨주시게 되었는지요? 더구나 그런 집단행동에 참가하시던 선생님들은 버젓이 출장처리하고 가시더군요. 전교조가 하면 다 위법이고 다른 교원단체가 주관하면 위법이 아닌가요? 그래서 출장처리까지 눈감아 주었는가요?
그렇게 법집행에 엄정한 교육부라면 28일(토요일) 오후 2시로 예정된 다른 교원단체의 서울역 집회에 참가하는 모든 교사들도 당연히 징계해야할 겁니다. 그것도 공무원 집단행동이고 집회에 참가하려면 조퇴나 연가를 내지 않고는 힘든 것도 당연할 테니까 또 교육부에서 그렇게 소중하게 챙겨주고 싶어하는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되지 않겠습니까? 학급당 학생수가 넘쳐나서 개개인에 대한 세심한 인성지도는 엄두도 못내는 현실은 나 몰라라 하면서.....
관심 갖고 지켜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더 드리겠습니다.
전교조가 단지 몇 푼의 월급을 더 받기 위해 징계위협과 비난의 위험성을 감수하면서까지 집회를 했을까요? 전교조는 노동조합입니다. 하지만 전교조는 IMF 상황 속에서 대다수 일반 노동자들에게 정리해고제 수용이라는 엄청난 빚을 지면서 합법화되었습니다. 즉 전교조 합법화에는 다른 대다수 노동자들이 피와 눈물이 스며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전교조는 교사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단체행동권이 없이 단체교섭권과 단결권만을 가진, 무기없는 노동조합이 되어야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정부는 단체협약을 체결해 놓고도 지킬 의무가 없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습니다. 노사가 체결한 단체협약을 사측이 지키지 않으면 처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단체교섭권을 휴지로 만들려하고 있습니다. 단체교섭권마저 유명무실화되면 전교조의 존재의의는 무엇입니까? 저희는 절박합니다. 쥐도 막다른 골목에선 달려드는 법입니다.
더 이상 교사들을 가지고 놀지 말았으면 합니다. 정말 화가 납니다.
저도 징계라는 말을 들으니 두려움이 생깁니다. 하지만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하고 뒤틀리고 엉망이 된 지금의 학교에 순응하느니 차라리 밟히면서 소리지르겠습니다.
두 번 살지 못하는 삶!
떳떳하게 보람있게 살고 싶습니다.
2000-11-14 12:34:50
211.xxx.xxx.80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론광장
제목 닉네임 첨부 날짜 조회
옥천신문 게시판 운영원칙 (9)HOT옥천신문 - 2006-11-18 759218
행정기관 약속이 이래서야건망증 - 2004-02-08 561
RE 행정기관 약속이 이래서야안내주민 - 2004-02-11 474
김중권 "실미도부대에 범죄자 없었다"연합 - 2004-02-08 516
오입 보다 더러운 정치.보통사람 - 2004-02-08 439
청주에서 흘러나온 공천내정 연합뉴스 기사,,이게 몬지.. (2)공천내정? - 2004-02-07 529
이용희 김서용 갈등 고조? (3)이카루스 - 2004-02-07 660
정말입니까?나팔수 - 2004-02-07 472
오 대표님 ^^* (2)초록별 - 2004-02-06 502
어떤 '젊은 개혁후보' (19)이카루스 - 2004-02-06 618
총선여성연대 공천부적격자에 심규철 (3)연합 - 2004-02-04 611
[오/뉴] <친일특별법 반대한 김용균 부친은 친일파>라고,그게 사실이여? (2)선지자 - 2004-02-04 578
신도 살해.암매장 교주 등 2명 사형선고불쌍 - 2004-02-03 363
옥천 실종자 '실미도행' 일부 확인(속보)옥천전투 - 2004-02-03 646
농촌지역 노인들의 생활실태와 욕구에 관한 연구(옥천군을 중심으로)논문 (1)조원걸 - 2004-02-03 666
기존 국회의원 다시는 안뽑아줄래요. (1)로보컵 - 2004-02-03 440
RE 옳으신 말씀입니다. 바꿉시다!!!!무소속 - 2004-02-03 502
[시민의신문 펀글]친일파는 살아 있다 (7)HOT동닙군 - 2004-01-29 1870
선관위의 요청에 따라 삭제합니다관리자 - 2004-02-03 619
[전여옥] "한나라당, 첩처럼 살기로 작심했나" (3)조선 찌라시 - 2004-01-28 545
옥천 경찰서 전홍찬 경장님 경사로 승진 축하잔다리에서 - 2004-01-27 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