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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신문 게시판 운영원칙 (9)HOT | 옥천신문 | - | 2006-11-18 | 759570 |
행정기관 약속이 이래서야 | 건망증 | - | 2004-02-08 | 561 |
RE 행정기관 약속이 이래서야 | 안내주민 | - | 2004-02-11 | 474 |
김중권 "실미도부대에 범죄자 없었다" | 연합 | - | 2004-02-08 | 516 |
오입 보다 더러운 정치. | 보통사람 | - | 2004-02-08 | 439 |
청주에서 흘러나온 공천내정 연합뉴스 기사,,이게 몬지.. (2) | 공천내정? | - | 2004-02-07 | 529 |
이용희 김서용 갈등 고조? (3) | 이카루스 | - | 2004-02-07 | 660 |
정말입니까? | 나팔수 | - | 2004-02-07 | 472 |
오 대표님 ^^* (2) | 초록별 | - | 2004-02-06 | 502 |
어떤 '젊은 개혁후보' (19) | 이카루스 | - | 2004-02-06 | 618 |
총선여성연대 공천부적격자에 심규철 (3) | 연합 | - | 2004-02-04 | 611 |
[오/뉴] <친일특별법 반대한 김용균 부친은 친일파>라고,그게 사실이여? (2) | 선지자 | - | 2004-02-04 | 578 |
신도 살해.암매장 교주 등 2명 사형선고 | 불쌍 | - | 2004-02-03 | 363 |
옥천 실종자 '실미도행' 일부 확인(속보) | 옥천전투 | - | 2004-02-03 | 646 |
농촌지역 노인들의 생활실태와 욕구에 관한 연구(옥천군을 중심으로)논문 (1) | 조원걸 | - | 2004-02-03 | 666 |
기존 국회의원 다시는 안뽑아줄래요. (1) | 로보컵 | - | 2004-02-03 | 440 |
RE 옳으신 말씀입니다. 바꿉시다!!!! | 무소속 | - | 2004-02-03 | 502 |
[시민의신문 펀글]친일파는 살아 있다 (7)HOT | 동닙군 | - | 2004-01-29 | 1878 |
선관위의 요청에 따라 삭제합니다 | 관리자 | - | 2004-02-03 | 620 |
[전여옥] "한나라당, 첩처럼 살기로 작심했나" (3) | 조선 찌라시 | - | 2004-01-28 | 545 |
옥천 경찰서 전홍찬 경장님 경사로 승진 축하 | 잔다리에서 | - | 2004-01-27 | 819 |
“부.명예보장 말만 믿고 특수부대 입대뒤 실종”
옥천 가족, 국방부 확인 요청
1971년 8월23일 서울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서 자폭한 ‘실미도 684부대’의 한 대원이 버스 안에서 숨지기 전 남긴 메모를 토대로, 684부대원 가운데 버스에서 숨진 이 대원을 비롯한 7명이 모두 충북 옥천의 한 마을 청년들이라는 가족들의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언론에 보도된 메모 내용이 가족들의 주장과 일치해 사실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정기복(58·옥천군 옥천읍 금구리)씨 등 6명은 당시의 언론 보도 등을 토대로 68년 3월께 동네에서 사라진 정기성·박기수·이광용·장명기·김봉용·김기정·김병염씨 등 7명이 실미도 부대에 들어갔다가 희생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2일 국방부에 확인을 요청하는 진정서를 냈다.
실제 사건 발생 이틀 뒤 <한국일보> 71년 8월25일치 6면에는 당시 684부대원들이 탈취한 버스에 탔다가 경상을 입고 살아난 김 아무개씨(당시 25살·인천시 용현2동)가 “옆자리의 젊은이가 ‘나는 박기수다. 집은 충북 옥천인데, 19살 때 집에서 나왔다.…나는 관통상을 입어 30분 뒤면 죽을 것이다. 우리 집주소가 있으니 편지를 보내달라’며 쪽지를 줬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실종 당시 20~22살로, 200여가구가 모여살던 옥천읍의 한 마을 초등학교 선·후배인 박기수씨 등은 농사일을 하거나 직업 없이 가난하게 지내다 숙식은 물론 부와 명예까지 보장한다는 말을 듣고 누군가를 따라 나섰다는 게 가족들의 주장이다.
실종된 기성씨의 형 정기복씨는 “동생 등 마을에 있던 청년들이 68년 봄 군에 입대한다며 집을 떠난 뒤 36년 동안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며 “동생들이 없어진 뒤 정보기관원을 자처하는 사람이 신원조회까지 해 특수부대에 입대한 것으로 알았다”고 밝혔다. 또 “신문에 보도된 ‘옥천에서 온 박기수’는 함께 행방불명된 동생의 친구”라며 “동생들이 실미도 부대에 입대했다가 희생된 것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김병염씨의 형 병익(65)씨는 “월남전에서 돌아와 동생에게 양복점을 내준다고 했으나 동생은 ‘때는 늦었다. 안 가면 죽는다’는 말을 남기고 입대했다”고 밝혔다.
실종자들의 친구인 현아무개(56)씨는 “친구들이 갑자기 특수부대에 입대한다고 해 대전에서 배웅을 하며 치약·칫솔 등을 사준 기억이 난다”며 “다시 못 돌아올 수도 있다는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고 말했다.
정씨 등 가족들은 실미도 부대원들의 자폭 사건 뒤 국방부 등에 찾아가 “‘동생이 죽었다는데 유골이라도 달라’고 했으나 모른다고 해 발길을 돌렸다”며 “당시 육인수(당시 옥천 지역구 국회의원, 육영수씨 오빠)씨에게 이들의 생사를 알아봐 줄 것을 부탁한 적도 있으나 끝내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정씨는 “유족들은 자폭한 부대원들이 가족이라고 확신하고, 사망·실종 신고를 했으나, 최근 영화 <실미도>로 684부대가 알려지면서 ‘어떻게 입대해 숨졌는지, 684부대원이 맞는지’등을 알기 위해 다시 나섰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당시 684부대 소대장으로 근무했던 실미도전우회장 김방일(58)씨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부대원 가운데 충청지역 출신이 꽤 있었고, 옥천에서 행방불명됐다는 사람 가운데 3~4명 정도는 이름이 귀에 익다”며 “이들의 신분은 상부에서 관리한데다 훈련을 하면서도 훈련병과 기간병을 철저하게 격리시켰기 때문에 이들을 개인적으로 접촉하지는 못해 옥천에서 왔는지, 누구인지 확신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당시 훈련병 31명의 이름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당시의 중앙정보부 등 군 문서에는 이들의 모병 당시 이름이나 직업, 출신 등 인적 사항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옥천/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