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역 플라타너스가 없어졌어요
챠오, 옥천
2024-03-06 16:55:06 | 조회: 1155
첨부파일 : -
기차를 타려고 역에 나갔는데 꼭 무언가를 빠뜨리고 온 거 같이 찜찜했다. 편의점 앞의 횡단보도에서 주머니를 뒤적여보다가 보니 옥천역사 왼편에 늘 서있던 나무가 안 보인다. 봄이면 연둣빛 이파리를 내고 여름이면 커다란 이파리로 그늘을 만들어주고 가을이면 툭툭 손바닥만한 이파리를 떨구며 가을이라고 알려주었던 그 나무는 겨울이면 앙상한 몸으로 가지마다 별과 달을 매달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나무를 보면 옥천에 왔구나 싶었고 반가웠고 긴세월동안 그곳을 지키고 있어서 고마웠다. 도시 생활에 지쳐서 고향에 돌아오거나 대처로 나가게 된 아이들이 기차를 타고 옥천을 떠날 때도 지켜보았을 그 나무가 없어진 것이다. 설마 그럴 리가 있을까 싶어 가까이 가보니 뭉턱 잘린 그루터기에 톱자국이 선명하다. 잘려나간 것이다. 이럴 수가 있을까 싶어 옥천역에 물어보니 며칠 전에 잘랐다고 한다. 군에 의뢰해서 담당자도 다녀가고 했으나 보호수가 아니라 보호대상도 안되니 군에선 소관이 아니라 알아서 처리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나무 밑둥이 많이 썩어서 태풍이나 큰바람이 불 경우 쓰러질 위험이 있어서 잘랐다고 한다. 이 나무는 우리가 흔히 아는 느티나무나 회화나무도 아니고 팽나무도 아니지만 이 자리서 백 여년이 넘게 서있으면서 옥천의 관문 역할을 해왔다. 이 나무에 관한 글도 인터넷이나 블로그, SNS등에 검색해보면 적지 않게 나온다. 나무가 썩어서 쓰러질 위험이 있으면 마땅히 썩은 자리를 도려내고 지지대를 세우고 보강조치를 했어야지 이렇게 잘라버리다니, 이건 아니라고 본다. 비록 이 나무가 흔한 플라타너스지만 이렇게 둥치가 굵어지고 가지를 늘이는 동안 만고풍상을 다 겪으며 옥천의 변화를 보았을 것이고 떠나는 사람들과 돌아오는 사람을 지켜보았을 것인데 이렇게 하루 아침에 잘라버리다니, 참 너무하지 않은가? 베려면 최소한 공청회라도 열든가 아니면 설명회라도 있었어야 했다. 지켜주지 못해서 나무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멀쩡한 논밭을 메워 한옥을 짓고 산을 깎아 길을 만드는 것보다 이런 나무 하나 지킬 정책조차도 없는 옥천에 환멸을 느낀다.
2024-03-06 16:5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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