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역 버짐나무 유감
 섶다리 노래
 2024-03-05 08:31:30  |   조회: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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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공간에 산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 안에는 자연물과 인공물이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롭게 만들어지는 이미지와 풍습이 있다. 우리 어른들은 버짐나무라 했다. 플라터너스. 어릴 때 국민학교 운동장에 수없이 늘어서 있던 나무. 나무의 성장이 빠르고, 가을이면 노랗게 물든 나뭇잎이 아름답지만, 봄이면 수정을 위해 공중에 날리는 꽃가루가 알러지를 일으키기도 했던 나무. 그 나무는 어린 시절 학교 운동장을 뛰어 다녔던 숱한 사람들의 머리 속에 자신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나무였다.
기차를 타고 옥천을 처음으로 방문 하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내게 이야기 했다. 역광장 한 쪽에 우뚝 솟아서 자신을 반겨주는
버짐나무에 대하여, 자신의 어린 시절 학교 추억을 이야기 하고, 어떻게 그렇게 우람하고 둥치 큰 나무가 역 광장에 서 있느냐고, 나도 가끔 옥천역으로 열차를 타러 나가면 그 나무를 보며, 경외감과 더불어 어떤 긍지 같은 것을 느꼈다. 역사가 새롭게 만들어지고, 옛날 이야기를 들려 주는 물건들이 사라지는 세대 속에서 역 한 쪽에서 옥천의 살아온 내력을 바람에 들려주는 그 나무를 볼 때마다 어떤 안도감 같은 것이 있었다.
물론 불편한 것도 있었다. 그 나무의 웅장한 자태는 좁디 좁은 역광장 주차장을 조금 짜증내게 만들기도 했고, 가끔 무지막지 하게 가지를 잘라낸 가로수 관리는 마음 한편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옥천역 광장 한쪽에 텃주대감처럼 서 있는 나무를 볼 때마다 옛날 동네 어귀에 있는 장승 같은 위안감을 얻었다. 그 나무가 하루 아침에 잘려져 나갔다는 소식을 어제 저녁 페이스북을 통해 들었다.
설마했더니, 오늘 아침에 열차를 통해 출퇴근을 하는 지인이 그 현장 사진을 올려 주었다. 현장은 처참했다. 나무는 뿌리밑둥까지 처참하게 잘려 나갔고, 그 잘려나간 뿌리에는 톱질이 무슨 칼자욱처럼 새겨져 내 가슴에 커다란 상처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 버짐나무가 언제 심겨졌는지는 나는 모르지만 사람 두 세아름 되던 둥치를 생각하면, 일제 강점기 옥천역사를 세우면서 조경수로 심어져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케 했다.
그 아래 옥천 사람들은 무수히 지나가고, 냉난방 시절이 없던 시절 여름이면 이용객들에게 무수한 그늘을 내어 주었을 나무가 하루 아침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잘려진 나무 둥치를 보는 순간 그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숱한 이야기도 함께 잘려 나갔을 것이라는 생각에 닿자, 먼저 떠오르는 것은 테러라는 흉직한 말이였다.
역광장는 군청이 관리 하는 공간이라는 지인은 말한다. 그렇다면 최소한 그 나무를 베어내기 전에 옥천군은 옥천 사람들 마음 속에 우뚝 서 있던 이 나무의 제거에 대하여 한번 물어 봤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나무가 옥천역 앞에서 옥천 사람들 기억과 마음에 어떤 자리를 하고 있었는지 인식하면서 가로수 관리 방법을 결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수십년 자라고 사람들의 기억에 자신의 모습을 각인 시킨 나무는 그냥 단순한 가로수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에 대한 의식이 없다면, 문화에 대한 의식이 없는 존재기 때문이다.
군청이 베어 낸 것은 단순한 나무가 아니다. 그것은 옥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하나의 이야기를 베어낸 것이다. 이야기가 없는 고향이나 고장은 문화가 없는 고장이며, 편리성과 이해성만 남은 삭막한 정신의 사막이다.
2024-03-05 08: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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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2024-03-06 16:24:54 121.xxx.xxx.72
저도 그 잘려나간 자리를 보고 할말을 잃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무도한 짓을 했는지, 멀리 다녀오던 때에도 큰어른처럼 구부정히 서서 지켜보아줬던 나무였는데요. 기가 막혀요. 최소한 주민들에게 물어보기라도 하고 베었다면 이렇게 섭섭하진 않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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