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국민의 힘 비대위원장이 다시 “전쟁 한번 못하고, 힘도 못 써보고 나라를 빼앗겼다는 얘기”라고 해명했다네요.
그런데 이 해명 역시 전형적인 가해자 논리이자 식민사관인 것은 물론, 사실과도 거리가 있는 말입니다.
구한말 당시 고종은 일본의 사주를 받은 매국노들에 손발이 묶여 실권이 없었음에도
끝까지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전국 각지에 밀지를 보내 의병을 조직해서 일본에 저항하도록 명령했고,
명을 받은 의병들은 일본과의 합병을 막기 위해 변변한 무기도 없이 일본군과 싸우다 장렬히 스러져 갑니다.
당시의 의병들에 대한 얘기를 다룬 문헌이 많습니다만
몇 년 전 우리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던 '미스터션샤인'이라는 드라마만 봐도
당시의 시대상황이나 의병들의 심정, 활동들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전면전은 아니었지만
왕의 명령에 따라,
전국 수십 곳에서,
수만명의 병사가,
나라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외국 군대와 전투를 벌인 건데,
이게 전쟁이 아니면 뭐란 말일까요?
무려 집권 여당 대표라는 분의 역사 인식이 이 정도라니, 앞으로의 5년이 참 암담합니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
이번 논란 당사자인 정진석의원 지역구가 공주·부여·청양인데요,
당시 고종의 밀지를 받고 떨쳐 일어나 훗날 3대 의병장으로 불리게 된 민종석이라는 분,
처음 의병 600명으로 시작해서 1천800명까지 늘어날 만큼 대단한 활동을 벌였는데,
이분이 의병을 일으키고 활동했던 근거지가 충청도 정산 즉 지금의 청양군입니다.
같은 시기 고종의 밀지를 받고 74세 나이로 전라도 태인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킨 면암 최익현 선생도
거병 직전 몇년 간 청양에서 기거한 인연이 있구요.
결국 자기 지역구의 자랑스러운 역사까지도 폄하한 셈인데, 이런 경우를 뭐라고 표현해야 할 지 제 머리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네요.
구한말 1907년~1910년 사이 일본군에 대항했던 조선 의병 수가 15만명이고
그 4년 동안 2851회 전투를 벌여 1만6700명의 의병이 사망했다고 나오는데요,
1910년 조선 인구가 (남북한 통틀어) 1천5백만명이었으니
국민 100명 당 1명이 의병이었고, 국민 1000명 중 1명이 일본군과 싸우다사망했다는 얘기네요.
물론 1907년 이전에 활동했던 의병도 그 못지 않았을 걸로 봅니다만...
이런 가슴 아픈 통계가 있는데도
"제대로 된 전쟁도 없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나라를 뺐겼다"는 집권 여당 대표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