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천 의사 독립유공 밝혀져
이수천 의사 독립유공 밝혀져
  • 옥천신문 webmaster@okinews.com
  • 승인 1994.08.13 00:00
  • 호수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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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운동 당시 청주농업학교(현 청주농업고등학교) 학생으로 학교 내에서 독립시위운동을 꾀하다 사전에 누설되어 징역형을 받은 우리 고장 출신 독립유공자가 뒤늦게 밝혀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청주농업고등학교에서 모교 출신 3·1운동 관련 숨은 독립유공자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밝혀진 것으로 당시 청주농업학교에 재학하고 있던 이수천(1899년 옥천읍 상계리 출생, 3·1운동 당시 21세) 의사의 행적이 알려지면서 밝혀지게 되었다.

이수천 의사의 3·1 독립만세시위도모 사실은 당시 3·1운동 관련 청주농업학교 학생의 재판기록을 토대로 독립운동사 자료집(제5집), 3·1운동 재판기록, 독립운동사 편찬위원회편(1984) 등에 기술되고 있는데 재판기록에 따르면 이 의사는 5개월의 징역형을 받고 복역한 것을 나타났다.

이 재판기록에 따르면 1919년 거족적인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청주 농업학교 학생들도 전교생 70여명을 총 망라해서 항일 독립운동에 가담하기로 하고 시위준비를 했다는 것.

이수천 의사는 동료학생인 오석영, 이요습 의사 등 10명과 함께 청주농업학교 독립시위운동을 준비하기로 하고 3월9일 동료학생들과 함께 격문을 인쇄하고 태극기를 대량으로 마련하는 등 주도적으로 시위계획을 준비하다 기밀이 사전누설, 체포되는 바람에 거사가 무산되고 퇴학처분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의상의 이러한 독립유공사실은 1927년 이 의사가 '병석(丙奭)으로 개명하는 바람에 근거를 찾을 수 없어 기록에 묻혀 있었으나 최근 청주농고에서 본교 출신 독립유공자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지난 7월께 역시 청주농고 출신 육동천씨에게 연락되어 수소문 끝에 장남인 이대기(61·옥천읍 삼양리·학생사 운영)씨에게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서 빛을 보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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