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서면 상중리] 식장산 정기받아 장수하는 마을
[군서면 상중리] 식장산 정기받아 장수하는 마을
<상중리...1995년 3월 18일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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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5.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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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서면 상중리

식장산의 정기가 마을에까지 미치니 마을 주민들은 병이 없고 오래사는 이가 많다. 그래서 장수하는 주민이 많다고 말하는 군서면 상중리.  옥천읍에서 37번 국도를 타고 군서면 소재지를 향하다 보면 월전리, 오동리, 하동리를 지나 오른쪽으로 길게 뻗은 진입로가 나타난다.

이 진입로를 지나면 동산, 평곡리에 형성되어 있는 면소재지에 이르게 되니 상중리는 군서면 소재지에 바로 못미치는 곳에 비교적 깊숙히 위치해있다.  식장산의 정기를 받았다는 이곳은 옛부터 동오리(東五里)라고 불렸다. 5개 마을로 이루어졌다 해서 동오리라고 불린 상중리는 본래 새터말, 아랫능골, 윗능골, 분터골, 안동오리 등 5개 마을로 형성되었다.

새터말은 새로 생겨난 마을이라해서 붙여진 지명이며 능골은 통상 고분 등 '능'이 있었다는 역사적 유래로 인해 지명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상중리에서는 능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마을이 꼭 큰 무덤과 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졌다.  식장산에서 뻗어내린 혈이 마을뒤로 전해져 건포혈(마른 명태를 걸어 말리는 혈)을 이루었다는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특히 차하훈(68) 노인회장이 마을 내력에 대해 상세히 꿴다.

그래서인지 건포혈의 위치에 해당되는 지점에는 옛날부터 주막이 위치해 있었으며 지금도 막걸리집이 있어 그 얘기를 뒷받침하고 있단다. 또한 그 곳에 위치한 막걸리집은 실패하지 않았다는 얘기이고 보면 풍수지리에서 하는 얘기가 나름대로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동오리라 했던 마을이 상중리란 지명으로 바뀐 것은 꽤 거슬러 올라가는 내력을 지닌다.

1914년 행정구역 전면 조정시 일소, 이소면을 합쳐 군서면이라고 고치고 동오리를 하동리와 상중리로 나누었는데 상중리라고 부르게 된 것은 일소면과 이소면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전한다.  상중리는 1백17가구가 거주해 군서면 내에서는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주민들이 식장산의 정기를 받았다며 자랑스럽게 여기는 부분은 식장산의 한 봉우리인 안동오리 뒷산인 구절산 정상 가까운 곳에 위치한 구절사가 있기 때문이다.

구절사는 전하는 바에 따르면 조선 태조 때 무학대사가 이곳에 와서 둘러보고는 훌륭한 인물이 배출된 곳이라고 보고 이 절은 창건했다 한다.  창건 당시에는 영구암이라 불렀는데 자식을 못낳는 사람이나 오래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 이곳에 와서 기도를 하면 효험이 있었다고 전하며 조선말엽에 없어졌다가 신도들에 의해 재건되어 구절사로 불렸다.

이 절 뒤 바위 굴에서는 먹을 만큼의 쌀이 나와 스님은 항상 이 쌀로 밥을 지어먹었는데 임진왜란 때 왜병이 조총을 들이대고 스님을 위협해 굴에서 쌀을 많이 나오게 해 발은 지으라고 하자 그 후부터는 쌀이 안나왔다는 전설이 있는가 하면 일설에는 스님이 너무 욕심을 부리다 나오지 않게 되었다는 전설도 전해온다.  마을 쪽에서 구절사를 오르는 등산로가 너무 험해 항상 어려움을 겪는데 바위로 가파른 벼랑이 이어져 천혜의 요새로 여겨질만 하다.

마을은 불과 수십년 전까지만 해도 근근이 나무를 해다 대전장에 내다파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마을에 딸기가 도입되면서 그 어려움에서 벗어났다.  딸기단지를 형성했던 이곳은 40가구까지 딸기재배가 성행했다가 연작 피해 등으로 인해 현재는 재배가구가 3∼4집에 불과하다. 딸기 대신 93년부터 포도재배가 대대적으로 행해져 현재는 재배농가가 64호에 이른다.

마을에 형성된 과수작목반(회장 장수복)은 이 마을 특산물이 딸기에서 포도로 변천되었음을 알려준다.  포도재배가 일반화된 지금은 하우스 시설재배가 크게 늘었다. 12가구가 하우스 재배에 뛰어들어 마을을 들어오자면 하우스가 먼저 눈에 띈다.

마을에는 옛부터 연안차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왔는데 현재에도 30가구 정도가 남아 있다.  출향인과의 모임은 특별히 구성된 바는 없으나 마을의 애경사시 출향인들의 발길이 잦아 단합된 모습을 보여준다.  장수복씨는 마을 내에서 이름난 농사꾼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군서면에 옛 이장을 역임한 차주현씨가 고향이기도 하다.  대전 지역의 차세훈(유성농민요육원)씨, 차의수(농도원)씨 등이 출향인으로 꼽힌다.

마을 진입로 곳곳이 깨진 채 내려앉아 보수가 요구되고 있으며 마을 위에 있는 소류지의 물이 새고 있어 주민들의 숙원으로 꼽히고 있다.  최근 계속 되었던 가뭄으로 인해 주민들이 물 때문에 크게 걱정했으나 관정을 굴착해 주민들의 숙원 하나가 해결된 점이 큰 위안이다.  98세인 권분매 할머니를 비롯해 60세 이상 인구가 약 1백명에 달하는 장수마을인 상중리. 딸기 마을에서 바야흐로 포도마을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형성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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