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서면 사양리] 주민 한 맺힌 "그린벨트 지정"
[군서면 사양리] 주민 한 맺힌 "그린벨트 지정"
<사양리...1992년 11월 21일 취재>
  • 인터넷판 webmaster@okinews.com
  • 승인 1992.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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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서면 사양리

"누구에게나 자기 집이 있고 땅이 있어요. 마당과 논밭도 있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자기 땅에 지역주민들이 피부에 와닿지 않는 이유로 해서 축사 하나 버섯막사 하나 마음대로 못짓고 집 한 번 마음대로 못고치는 그런 상황을 생각인들 할 수 있습니까?"  분에 어린 한주민의 목소리는 계속된다.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자신의 재산을 마음대로 행사할 권리조차 빼앗기고 산단 말입니까? 지금까지 이십수년동안 당해왔어요. 우리 자손까지 그런 피해를 입게 하지 않으려면 목숨을 걸고라도 규제를 완화시키던가 아니면 완전히 철폐를 하도록 해야 해요."

물론 군내에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에 묶여 피해를 받는 주민들은 군서면 사양리 주민들만이 아니다. 하지만 마을 전체가 대전권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과 환경보전을 이유로 그린벨트로 규제된 상황에서 농민들의 피해의식은 특별할 수 밖에 없다.  그 흔적은 마을 어디서건 찾아볼 수 있는데 그 단적인 예를 5~6년전에 시도했다가 실패한 버섯농사에서 볼 수 있다.

당시 12농가가 14동의 버섯막사를 짓고 버섯재배를 시작할 때만 해도 허가조건이 하도 까다로워 농가소득에 관련한 사업일에도 불구하고 버섯막사로만 활용한다는 각서를 써주고 재배를 시작했다. 그후 버섯재배가 쉽지않자 대부분의 농가가 버섯재배를 포기했고 지금은 빈 버섯막사만이 행정의 비능률성과 융통성 없음을 비웃듯 덩그러니 남아있는 실정.

마을주민들은 이왕 지어놓은 버섯막사이기 때문에 축사등으로 용도를 변경해 사용할 수 있기를 희망하지만 현행 규제법이 자유로운 이용을 금하고 있다. 개발제한구역이 아닌 곳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그렇게 해서 방치되고 있는 막사가 서성골에만 9개에 달한다.  어디 피해가 그뿐이랴. 주민들의 숙원이라고 올여름 6백여만원의 보조금을 얻어 건축한 사양리 농산물집하장만 해도 건축절차가 무척 까다로웠을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는 필요하지 않았을 토목설계비 등 150여만원이 더 소요되었다.

결국 그린벨트 규제가 주민의 재산권 행사를 제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각종 사업을 하는데도 주민을 옥죄고 있음을 드러내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제도적으로 어려움에 직면해있는 사양리 주민들은 그렇지만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고 좀더 나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힘쓴다.  가구수가 가장 많은 마랑골(35호)을 비롯하여 서성골(28호), 논골(10호), 뱀골(8호) 등 4개 자연마을이 비교적 넓은 면적에 흩어져 있으면서도 제각각의 특성을 가지며 조화롭게 살고 있다.

이중에서 논골은 대전시 산내동과 맞닿아 있어 옥천군의 가장 서쪽 끝에 위치한 마을로 10집 가운데 4집이 담배농사를 주로 지으며 생활하고 있다.  같은 사양리를 구성하고 있으면서도 각기 재배작물이 다른 이들 4개 자연마을은 사람으로 말하면 그만큼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예를들어 논골.뱀골은 인삼이 많고, 마랑골은 포도와 복숭아 등 과수재배가, 서성골은 담배와 고추재배가 많이 이루어지는 식이다.

산간지대로서 벼농사가 그리 많지 않음은 올해 추곡수매물량이 마을 전체를 합해도 40kg들이로 벼 570가마 밖에는 안된다는 것에서 간접적으로 볼 수 있는데 대부분이 집에서 자가소비하는 양만큼의 벼를 재배할 뿐 주소득원은 담배를 비롯한 밭작물이다.  이곳 주민들의 잎담배재배가 농가당 면적이 많은 것도 하나의 특징으로 말할 수 있겠다.

주민들의 얘기에 따르면 일제시대로부터 대물림 해 경작해온 것이 잎담배 농사로 그나마 노동력 부족 등이 원인이 되어 현재는 25가구로 줄어들었다. 다만 농가당 경작면적이 3천평(1ha)을 넘는 농가가 많다는 얘기에서 군서면 전체 생산량의 50% 이상을 사양리에서 담당한다는 설명이 이해가 간다.  이와 함께 담배의 후작으로 콩.팥이 주로 재배되고 있는데 가구당 열가마의 팥을 수매한다고 했을때 150만원에서 160만원씩의 수익을 올리게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특히 이 마을의 장래는 다른 마을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젊은이들의 존재에서 비교적 희망적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시도가 가능하다는데서 나온 말이겠지만 올해를 기점으로 과수재배 특히 포도재배농가가 늘어날 전망이다.  서성골의 경우 기존의 3농가에 7농가 묘목을 식재했고 마당골의 경우에도 기존의 13농가에다 4농가가 늘어났다.

주민들은 올해 해묵은 숙원 하나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다름아닌 대전시 낭월동과 연결되는 곤룡재 도로가 대전시와의 협의로 개설되게 되었다는 소식.  지난 60년대부터 찔끔찔끔 터널공사에 예산을 퍼부었을 뿐 단골 공약사업으로 오르내리던 이 사업은 올해 이 지역 이태우 군의원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개설의 길을 열게 된 것.

이 고개는 사양리 주민들은 물론 군서면 주민들에게까지 새끼를 꼬아 등짐으로 넘던, 애환이 서린 고개이다. 올해 군과 대전시에 3억원씩 교부세가 지원되어 비로소 숙원이 풀어지게 된 것이다.  옛부터 뚜렷이 집성촌을 형성한 문중이 없었고, 다만 8가구의 김해김씨, 5가구의 곡산연씨, 함창김씨 문중이 비교적 많이 거주한다고는 하나 모두가 각성바지로 형제애보다도 더 두터운 우애를 간직하며 살고 있다.

20여년 되었을까. 외상 담배수매값 때문에 서슬퍼렇던 3공화국 시절 고무신 신고 상경시위를 벌였던 강진원(수원)씨 등 30여명 주민들의 얘기가 전설처럼 내려오는 고장. 시위가 있었던 다음날 외상으로 수매되었던 담배값이 모두 정산되었노라며 한주민이 재미있어 한다. 

현재 이승로(산업과)씨와 연규연(가정복지과)씨 등이 군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으며, 대전에 거주하는 한성교.한영교씨 등이 주민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산세가 험하고 마을이 깊숙하다 하여 피난처로 이용되어 왔다는 이곳. 군서조합장을 지냈던 강동원씨는 마을의 담배농사를 선진적으로 이끈 마을지도자 중의 한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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