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면 하서리] 감 깎는 기술 전파한 곶감마을, 청산곶감 자부심 대단
[청산면 하서리] 감 깎는 기술 전파한 곶감마을, 청산곶감 자부심 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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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4.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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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서리와 장위리를 잇는 장위보 전경

"비록 자본이 없어서 영동의 상인들에게 밀리고 있지만 곶감은 역시 청산곶감입니다. 그중에서도 곶감 깎는 기술은 하서리에서 개발돼서 전파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환규(73) 노인회장의 뒤늦은 회고. 하서리에서 곶감은 깎기 시작한 때는 멀리 일제 침략기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박내덕씨가 처음으로 곶감을 깎아냈다. 곶감은 대체로 두 가지로 분류된다. 감 가운데를 꿰어 만든 조선곶감과 납작하게 말려 만든 개량곶감. 감깎는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조선곶감을 주로 했던 상주지방의 곶감꿰는 방식과는 달리 개량곶감은 하서리에서 만들기 시작했다.

영동의 대표적인 특산품이 곶감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알고 보면 청산에서 감깎는 기술을 배워간 것. 비록 자본에 뒤져 곶감시장의 선두자리를 인근 영동에 내주고 말았지만 곶감마을로서 하서리 주민들의 자부심을 대단하다.

전체 97가구 중 85가구 가량이 농사를 짓고 있으며 40가구 정도가 농가부업으로 곶감을 만들어 출하하고 있다. 한때 청산곶감이란 상표로 출하를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곶감철만 되면 외지 상인들이 장사진을 이룬다. 아직도 청산곶감의 품질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다만 한가지 어려운 점은 하서리에 대규모 감나무 재배단지가 없다는 것, 때문에 모자란 감은 외지에서 사오는 도리밖에 없다.

수입면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대안이 없어 주민들은 고민한다. 가격이 좋았던 지난해에는 농한기를 이용한 곶감 부업으로 가구당 평균 5∼6백만원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본래 청산현의 서쪽에 위치해 있다하여 하서리라 불렸다는 이 마을은 '자하'와 '서원동'이라는 두 개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서원동은 비록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지만 조선시대 숙종(1701년)대에 창건되어 중봉 조헌 선생과 우암 송시열 선생을 함께 봉안했던 '덕봉서원'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유래된 명칭이니 만큼 마을의 유래가 깊은 뿌리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 하나 큰 마을인 '자하' 입구에 세워진 선돌은 선사시대 보청천변이었던 이곳에서 사람이 살고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증명해주고 있다.

요즘 들어 주민들은 단합된 힘을 과시하는 한편 인심을 되찾아 활기에 찬 마을을 가꿔가도 있다. 지난해 8월22일 준공식을 가진 마을회관 건립이 그 좋은 예이다. 먼저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두 1억1백만원의 공사비가 투입된 가운데 5천만원은 국비지원으로 나머지 절반을 넘는 금액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하서리 출신 출향인들이 한데 힘을 모은 결과였다는 사실이다.

유만조 이장이 자신이 1년동안 마을을 위해 애쓴 결과로 받은 1백50만원 상당의 이장수곡을 건립기금으로 내놓은 것을 계기로 많은 주민들과 출향인들이 자발적으로 건립기금 마련에 나섰다. 이장의 수곡 기탁에 이어 현재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홍봉의(옥천고 교사)씨가 1백만원을 선뜻 기탁했고 마을주민들도 앞다투어 성금을 모아주었다.

이와 함께 출향인들의 모임에서는 서울에 거주하는 김성희씨, 김성찬씨, 홍승복씨, 박종하씨, 박완하씨, 박관하씨, 김원갑씨 등이 1백만원씩의 기금을 기탁하는 등 1천3백만원을 모아주었다. 이렇게 해서 마을회관을 지난해 8월22일 완공되었고 주민들과 출향인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오히려 건축한 뒤 기금이 남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아무튼 지난 겨울 주민들은 경로당에 모이는 노인들을 위해 집집마다 돌아가며 점심을 해서 날랐고 옛 인심을 되찾아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형성시키고 있다. 누가 시켜서 그런 것도 아니건만 마을회관을 건축한 뒤 뚜렷이 주민들 사이에 형성된 바람직한 분위기는 다른 마을에서조차 부러움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때 1백20여호에 이르는 큰 마을이었던 하서리는 현재 97가구에 5백여 주민들이 살고 있으며 30여 성씨로 이루어진 각성바지 마을이지만 마을회관 건립에서 보듯 단합을 잘 이끌어내는 마을이다.

역시 벼농사가 주작목으로 곶감 이외에 인삼과 포도, 담배 등이 마을의 소득원으로 등장했으며 하서리 앞에 넓게 펼쳐진 청산 들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후련하게 해준다. 이제는 하서리 뿐만 아니라 청산면내에 고루 퍼져나간 곶감 생산이지만 주민들은 청산곶감의 명성을 되살리기 위해 농산물 가공공장을 짓기를 희망하고 있다. 마을 앞을 가로지르는 19번 국도에서 자주 사고가 발생하는 것도 주민들이 불안해하는 요인일 뿐더러 주민들은 국도를 인가가 없는 들판 쪽으로 우회시켜줄 것을 바라고 있다.

군청 재무과의 김성원 세외수입계장과 건설과의 정태길씨가 이 마을 출신이며, 서울에 거주하는 박성현씨와 송용석씨도 고향 발전에 관심을 기울이는 출향인들이다. 청산 농민진흥회의 유원호 대표이사도 하서리 출신이며 박태하씨는 마을회관 건립추진위원장을 맡아 수완을 발휘했다. 농촌 노동력 자체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역시 노령화와 인력 부족으로 애를 먹고 있는 하서리지만 근래에 들어 되살아난 인심 때문인지 주민들의 얼굴이 해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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