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고구마
  • 옥천신문 webmaster@okinews.com
  • 승인 1999.03.13 00:00
  • 호수 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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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여 모처럼 큰동서와 술자리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사는 집이 가까워 가끔 만나 한 잔술을 나누곤 했는데, 어려운 시절에 서로 살기 바쁘다보니 오랜만에 만난 자리였다.

약속장소로 가는 길옆에 장작불로 고구마를 먹음직스럽게 굽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자연스럽게 어렵게 살던 어린시절의 고구마 얘기가 오고 갔다. 10살 가까이 나이 많은 동서인지라 가슴에 묻어둔 얘기가 많았다. 그 시절 고구마는 주식이었고, 굶주린 배를 달래는 수단이었으며, 군것질 대용이었단다.

온종일 수업하고 점심도 거른 채 몇 십리 떨어진 집까지 걸어가노라면 주위에 먹을 것 하나 없는 황량한 겨울들판 추위는 입성(옷) 변변치 않은 뼛속까지 파고들고, 굶주린 창자는 사정없이 등에 달라붙는데, 등교할 때 길옆에 띄엄띄엄 숨겨놓은 고구마를 하나, 둘 찾아 먹는 그 맛은 그야말로 꿀맛이라던가.

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잊고 지냈던 학창시절의 일이 생각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중학교 때의 일이니까 지금 내 나이 40대 중반이니 불과 30여년전 일인가보다. 그런데도 까맣게 잊고 살아왔으니 바쁜 세상이라는 얘기는 한갓 핑계일 뿐 어쩌면 한심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여느 날 같으면 방에 틀어박혀 공부나 한답시고 뒹굴거리고 있을 일요일이었다. 그날 따라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읍내 5일장에 고구마를 팔아 돈을 마련하시겠다는 어머니를 따라나섰다.

어머니는 윗방 윗목 통가리로 그득한 고구마를 큰 자루에 가득 채워 아버지 부축을 받아서야 간신히 머리에 이고 30리 길 읍내를 향해 종종걸음을 하셨다.

말이 종종걸음이지 고구마 무게에 눌려 목은 어깨에 파묻히고, 힘겹게 버틴 다리는 팔을 앞뒤로 힘껏 흔들어야 발짝을 떼어놓을 수 있었으니 갈지자 걸음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도중에 한번쯤 쉬려해도 마땅히 짐을 부축할 사람이 없어 내려놓을 수도 없었고, 나이 어린 내 힘으로서는 한번쯤 교대를 한다든지 쉬게 할 재간이 없었다. 어머니는 내리누르는 무게를 버텨내느라 족히 20리 길을 가면서 내내 말씀 한마디 못하셨다.

나로서는 매일같이 걸어다니는 등하교 길이라서 새로울 것은 없었지만 처음 따라나선 장구경의 자그마한 설레임도 잊은 채 걱정스러운 눈으로 가끔 어머니를 흘끔거리며 묵묵히 뒤따를 뿐이었다.
가파른 고갯길 정상에 오르자 좋은 물건을 먼저 사려고 아침 일찍부터 기다리고 있던 몇몇 장사꾼이 짐이 무어냐고 앞다투어 물어왔다.

고구마라는 대답에 사겠다고 하는 장사꾼이 없었다. 내처 조금을 더 가니 한사람이 산다고 했다. 얼마에 사겠느냐는 어머니의 물음에 1관에 130원씩 내고 가라고 했다.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완강히 버티는 어머니의 저항을 장사꾼은 이내 노련한 솜씨로 기(氣)를 꺾어놓았다.

읍내로 가봐야 산다는 사람도 없을 뿐더러 무겁게 10여리를 더 갔다가 되이고(다시 이고) 오느니 여기서 팔라는 얘기였다. 그러잖아도 더 이고 갈 기력도 없는 어머니는 관당 10원씩만 얹어주고 근대(무게)나 달아보라고 하셨다.

고구마 무게는 14관이 나갔다. 1관이 3.75kg이니 52.5kg나 되는 무게였다. 사정도 해보았지만 값은 더 받지 못하고 1,820원이 어머니 손에 쥐어졌다. 받은 돈을 한손에 꽉 움켜쥐고 읍내를 향해 한동안을 더 가시던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그 당시 우동 한그릇 값이 500원 정도로 아무리 싼 점심을 사먹는다해도 고구마 판 값의 절반 이상을 써야 할 판이니 밥을 굶더라도 얼마 안되는 돈이지만 더 요긴한데 쓰려고 생각했음이리라.

정오를 알리는 오종(午鐘)부는 소리가 읍내서 들린지도 한참 지나고, 두 모자의 늦가을 짧은 해 그림자는 점점 동쪽으로 늘어지는데. 언감생심(焉敢生心) 애초부터 옷 한가지 얻어 입을 것은 기대도 안했지만, 점심도 못 먹은 채 집까지 걸어가는 자갈 뒤덮인 신작로는 왜 그리 멀기만 한지.

혹시 아는 사람이 바라보지나 않을까 하는 어린 마음에 내 고개는 자꾸만 숙여졌었다.

따끈따끈한 군고구마 한 봉지를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사다주었다. 맛이 있느니, 너무 태웠느니 하면서 입주위가 시커멓게 된 줄도 모르고 먹고 있는 모습이 오늘따라 왠지 부럽게만 느껴지며, 불현듯 어머니 생각이 간절해졌다.

어머니께서 나를 장에 데려갔을 때는 무언가 생각이 있어서 일텐데 눈에 넣어도 시원찮을 아들에게 점심은 커녕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그 심정은 어떠했을까. 어머니가 살아 계시다면 군고구마 권해드리며 그날 그 얘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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