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 옥천의 큰 어른 이종학 옹 100세 일기로 별세
[부고] 옥천의 큰 어른 이종학 옹 100세 일기로 별세
옥천농협장례식장 201호 안치, 24일 발인 예정
  • 권오성 kos@okinews.com
  • 승인 2021.04.2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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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종학 옹
故 이종학 옹

우리고장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지역사회의 미래를 고민하던 큰 어른 이종학옹이 100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우리고장 보도연맹 사건을 규명하고 위령탑을 세우자 했으며, 2001년부터 풍력발전과 태양광발전 등 대안 에너지를 실현하는 등 실천하는 지식인이었다. 더불어 조선일보반대운동 시민모임에 가입하는 등 언론개혁운동에도 참여했다.

이종학 옹은 1929년 동이면 평산리에서 태어났다. 서당을 다니던 그는 12세에 죽향초 2학년에 입학했고, 대전공업고(현 한밭대학교)를 졸업한 뒤 철도청 토목기사로 일했다.

19506.25 전쟁이 발발한 뒤 고향으로 피난 온 그는 보도연맹 학살사건을 직접 목격했다. 죄 없는 사람들이 무참히 살해된 사건이지만 전후 독재시대가 열리면서 한동안 진실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1974년 더 이상 군부의 간섭을 견딜 수 없었던 그는 52세 나이로 퇴직해 고향으로 돌아와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24년 전 보도연맹 학살사건이 있었던 동이 평산리에 밤나무를 조성하고 억울하게 죽어간 넋을 위로했다. 그리고 20년이 더 지난 1997년 장대비 속에서 발견된 다량의 인골을 발견하면서 보도연맹 사건을 세상에 알렸고, 잘못된 역사를 되짚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더불어 억울하게 죽어간 주민들을 위해 인골은 수습해 공원묘지에 안장하도록 했다.

이종학 옹은 시대모순에 맞선 지식인이자 공부하는 농부였다. 농사 신기술 보급에 적극적이었으며, 풍력과 태양광 등 대안에너지 도입에도 적극적이었다. 2001년에는 소형 풍력발전기를 제작해 가동하고, 2002년에는 태양광 발전사업을 시작했다. 특히 태양광 발전시설은 해를 따라 태양광패널이 이동하도록 개량해 발전효율을 최대 80% 높였다. 2003년에는 민간인으로는 전국 최초로 태양광발전소 설립허가를 받았으며, 군민이 참여하는 시민태양광발전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나서기도 했다.

이종학 옹의 업적은 옥천뿐 아니라 전국에서 인정받았다. 그는 2003년 정부 신지식인으로 선정됐으며, 2006년에는 옥천군민대상을 수상했다. 2005년 한국관광공사는 옥천을 대표하는 인물로 이종학 옹을 꼽았으며, 옥천군 관광종합개발 기본계획을 통해 그를 인적자원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당시 옥천인물로는 이종학 옹 외에 송시열 조헌 정지용 유승규 송건호 류시화 김덕수가 선정됐다.

이종학 옹의 빈소는 옥천농협장례식장 201호에 마련됐고, 발인은 24일이다. 자녀는 32녀로 막내아들이 이철순 옥천군체육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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