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가 드러낸 주거 빈곤 … “겨울이 죽도록 싫다”
한파가 드러낸 주거 빈곤 … “겨울이 죽도록 싫다”
수도 얼어붙은 월세 25만원 방 화장실도 주방도 무용지물
주거빈곤이 의식주 위협으로 확대 한파 속 겨울나기 위한 긴급 주거 정책 절실
  • 안형기 기자 ahk@okinews.com
  • 승인 2021.01.15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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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꽁꽁 언 화장실은 겨우 내 무용지물이다.  2. 한파 대비로비닐 칸막이를 덧대었다.   3. 수도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집에서는 빨래를 할 수 없다. 4. 재래식 화장실이 유일한 대·소변 해결 방안이다.  5. 기름 보일러를 틀지 않고 전기장판에만 의존해 겨울을 나고 있다.  6. 슬레이트 지붕 한쪽이 내려 앉아 세탁기가 마당으로 나왔다.
1. 꽁꽁 언 화장실은 겨우 내 무용지물이다. 2. 한파 대비로비닐 칸막이를 덧대었다. 3. 수도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집에서는 빨래를 할 수 없다. 4. 재래식 화장실이 유일한 대·소변 해결 방안이다. 5. 기름 보일러를 틀지 않고 전기장판에만 의존해 겨울을 나고 있다. 6. 슬레이트 지붕 한쪽이 내려 앉아 세탁기가 마당으로 나왔다.

시장과 식당, 옷가게 등 각종 상점들이 밀집한 금구리 중앙로 일대는 읍내에서도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다.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를 밑돌며 한파경보까지 발효된 지난 주말에도 중앙로 일대는 일보러 나온 주민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온기를 내뿜었다.

같은 중앙로 일대지만 그 온기가 미처 닿지 않는 곳도 있었다. 상가들과 사람들을 뒤로한 채 한쪽 골목 위태롭게 자리하고 있는 A(61)씨의 낡은 거처였다. 다 헤진 플라스틱 슬레이트와 폐비닐로 덧대어 놓은 방풍막이 집 외부를 감싸고 있지만, 햇빛 한 줌 허락되지 않는 그 골목에서 매서운 눈바람과 한파를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제대로 닫히지도 않는 플라스틱 문을 열고 A씨의 집 문턱을 넘는 순간 마치 냉동고에 들어온 것 마냥 한기가 몸을 감쌌다. 한기 가득한 집 내부를 증명이라도 하듯 방문을 열고 나온 A씨의 눈썹에는 서리가 맺혀있었고, 코에 흐르는 콧물은 멈출 새를 몰랐다. 몸을 덜덜 떨며 희뿌연 입김을 내뿜는 A씨를 따라 안쪽으로 발을 옮기자 온기라곤 전혀 느낄 수 없는 냉골 바닥에 발가락이 저절로 움츠려졌다. 

A씨는 “겨울이 죽도록 싫다”고 했다. 언제 무너져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낡은 지붕 탓에 여름 이면 비가 새 온 집안이 곰팡이로 물들지만 그래도 참을 만 했다고 한다. 그러나 겨울의 추위가 주는 것은 오로지 고통뿐이다. A씨가 겨울을 나기 위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행동은 단 하나. 집을 벗어나 밖으로 나가는 일이었다. 오히려 집 내부보다 바깥이 더 따뜻하기 때문이다. A씨가 매일 아침 눈뜨기가 무섭게 마실 나가는 이유는 생존을 위한 ‘탈출’이었다. 

A씨를 따라 들어간 안방의 한쪽 벽면에는 보일러 온도 조절기가 있었지만, 먼지가 수북이 쌓여있었고 때가 찌들어 언제 사용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집 외부에 창고처럼 버려진 보일러실에는 제 기능을 잃은 지 오래인 기름보일러가 거미줄과 먼지에 뒤덮인 채 방치되어 있었다. A씨는 “사용안한지 10년도 더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난방이 전혀 되지 않다보니 전기장판과 이불 한 벌이 한파로부터 A씨의 몸을 지켜줄 유일한 보온수단이다. 

역대급 한파가 몰아치며 한파경보가 발효된 지난 주말은 A씨에겐 지옥과도 같았다. 수도는 얼어붙어 기본적인 생활조차 할 수 없었고, 주방 벽면은 금이 가면서 갈라져 심한 외풍이 집 안에 몰아쳤다. 마시려고 밥솥 옆에 떠다놓은 물이 실온에서 그대로 얼어붙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A씨가 전기장판 외에 다른 난방 기구를 찾지 이유는 자칫 잘못하다가 전기요금 폭탄을 맞을까 두려워서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A씨가 30년 넘게 살아온 이 공간을 벗어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A씨와 함께 살던 남편은 교통사고로 요양병원에 입원한 상태고, 하나 있는 아들과도 연락이 끊긴지 오래였다. 그러다보니 생활비는 장애가 있는 남편 앞으로 나오는 수당 몇 푼이 전부였다. 그 마저도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월세 25만원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시피 한 상황이었다.

한파에 얼어붙은 것은 A씨의 몸만이 아니다. 주변 이웃들의 달갑지 않는 시선에 A씨는 마음마저 얼어붙은 지 오래였다. A씨의 딱한 사정을 알고 교회 등 주변에서 집수리를 시도했지만 이웃들의 원성으로 진행하지 못했다. 세를 받는 집 주인은 집에 대한 관리는커녕 싫으면 나가라는 식으로 나와 취약계층인 A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날 A씨의 안부를 살피러 찾아온 교회 권사님 한 분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 “이게 사람 사는 것이냐”며 “한파보다 매정한 사람들이 시선이 더 차갑고 무섭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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