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성면 구음2리] 감나무로 뒤덮이는 마을, 최상품 곶감단지
[청성면 구음2리] 감나무로 뒤덮이는 마을, 최상품 곶감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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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3.0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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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음2리 전경

고희가 넘은 연륜에도 불구하고 불그스레 여전히 동안인 노인회장 이병선(72)씨는 마을에서도 부지런하고 건강하기로 손꼽히는 존경받는 어른이다.  "늙은이들이 뭘 알어. 요새 세상은 젊은 사람들헌티 자꾸 배워야 해" 하는 말에서 이 노인회장의 젊음의 비결을 읽는 듯하다.

70줄을 넘겼음에도 젊은 사람과 같이 경운기를 끌고 다니며 주작목인 담배를 재배하고 이 회장의 잎담배 재배경력은 이제 50년이 넘었다.  잎담배 경작이 다른 작목과 별다른 점은 없으나 계약면적 만큼은 전량 수매하고 있어 판로걱정은 해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이 회장은 일제시대였던 스무살 시절부터 잎담배를 재배해 그야말로 옥천 잎담배 농가들의 산증인인 셈이다.

얘기가 이병선 회장에게로 쏠리자 자연스레 잎담배 경작 현황 등이 들추어진다. 구음2리 37농가(마을가구 중 비농가는 없다) 중 거의 모든 가구가 잎담배를 경작했으나 이제는 3분의 1이 채 안되는 11가구만이 남아 있다.  농촌 노동력의 감소와 함께 남은 노동력의 노령화로 인해 노동력이 많이 불었다고 볼 수 있는 동시에 구음2리에 특별한 소득작목이 재배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만 현재의 구음리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86년부터 지정된 곶감단지(당지회장 박범성)이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최소한 5백주 이상일 감나무 잎이 무성해 여름이면 마을 전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장관을 이룬다.  구음리 곶감단지는 1.2리를 포함하면 43가구에 이루고 있으며 2리에서만 30가구 정도가 곶감을 제조하고 있으나 현재 25가구가 단지회원에 가입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구음리 곶감단지가 다른 곳에서 감을 사와 제조하는 것이 아니 생산지에서 가공한다는 것. 때문에 산지와 가공지가 다른 곳보다 생산비가 적게 들어 순소득이 높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2리에서 생산되는 곶감은 1년 평균 3천첩에 이른다(갯수로 따진다면 30만대에 달한다). 말이 30만개지 일일이 감을 깎아 최고 품질의 상품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이곳 사람들의 곶감생산기술은 경지에 다다랐다 해도 과언이 아닌 정도. 그럼에도 곶감단지를 활성화시키고 주민소득을 높이기 위해서는 커다란 숙제를 안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된 곶감의 판로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일이 바로 그 일이다.  올해만 해도 안정적인 판로가 확보되지 못한 점과 아울러 중국산 곶감의 대량수입으로 91년도 1만8천원에서 2만원까지 하던 시세가 인근 영동군에서 1만3천원에서 1만4천원까지 폭락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곶감 가격의 하락과 함께 생산자가 직접 대도시의 백화점 등과 직거래를 모색해 생산자와 소비자를 함께 보호하자는 여론이 주민들로부터 제기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가장 염려되는 점은 중간상인들의 농간이라고 한 주민이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는다.  곶감과 함께 고추도 청성농협으로부터 단지(단지회장 전동채)로 지정받은 경우 지난 80년 지정받은 후 청성농협측의 인천원예협동조합과의 직거래 확보는 농민들의 판로걱정을 덜어주었다.

마을의 형성은 지금으로부터 4,5백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도 11가구가 거주, 가장 많은 성씨를 이루고 있는 밀양박씨 문중의 박영운 할아버지가 가장 먼저 정착한 이래 16대째 마을에 대대로 갈고 있다.  밀양박씨 이외에 경주이씨와 경주김씨가 각각 9집, 8집이 살고 있는 구음2리는 마을 주민에 의하면 옛부터 느릅나무가 많아서 느름실이라고 했다고. 마을이 6∼70년대를 거치며 조금이나마 교통오지 및 문맹에서 벗어나게 한데는 몇가지 일화와 함께 숨은 얘기가 있다.

56년부터 제 2,3대 청성면의회 의원이었던 박월봉씨는 도시락까지 싸들고 다니며 당시 군수에게 구읍리까지의 도로를 개설해 달라고 졸랐다는 것. 덕분에 지금과 같은 포장길은 아니지만 작은 오솔길이 큰 길로 변모했고 청성면민들은 그 공을 기리기 위해 화성리에 공덕비를 세워주었다.  박 옹이 당시 하루도 빠짐없이 민원해결을 위해 돌아다니다 보니 청성면을 향유해 운행하던 버스회사측에서는 무임승차권까지 해주었다는 일화가 아직도 전한다.

이밖에 타지에서 들어온 전종환씨는 초창기 글에 어둡던 구음리 주민들을 깨치는데 큰 공헌을 했다. 또한 정부의 지원이 없이도 농로를 확장하고 전기가 들어오기 이전에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보청천에 수력발전기를 설치, 전기의 혜택을 보았던 마을로 이름나 67년도에 전국 최우수 모범마을로 표창을 받은 바도 있다.

마을과 밀접하게 연결되는 출향인으로는 이동주 충남대 교수가 첫째로 꼽히고 있고 박팔선(서울 담배인삼공사), 염석균(수원 세무서 근무)씨 등이 있으며 고향주민과 출향인들을 한데 묶은 구음리 친목계(회장 김용범)에서는 마을숙원인 경로당 신축을 위해 현재까지 1백10만원의 기금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80세 이상 노인만도 10여명에 이른다는 장수마을인 구음2리. 마을 상하간에 격의없으면서도 화합하며 체계있는 마을로 이끌어가는 원동력은 바로 주민들의 마음 그것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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