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읍 죽향1리] 과거 소재지, 구읍지역에서 가장 큰 마을
[옥천읍 죽향1리] 과거 소재지, 구읍지역에서 가장 큰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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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2.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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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향1리 전경 사진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없는 사자석탑의 돌사자들이 마을의 전면에 위치해 안녕을 지켜부는 역할을 하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 국가의 미래를 담당할 인재가 양성될 기관이 들어서는 곳.

옥천읍 죽향리의 과거와 현재가 조화롭게 공존하며 마을주민들의 기대를 높여주는 장면이다. 옛날로 말하면 큰 길가에 돌사자 세마리와 석탑의 잔재가 논가에 콘크리트를 의지한 채로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앞에는 현재 가산빌라가 들어섰고 옛부터 죽향리 절터라고 불리던 장소이다. 이 돌사자의 조각모양으로 보면 신라말이나 고려초기의 수법을 보이고 있어 이 석탑이 있었던 자리의 절이그 당시에 흥성했던 절이었음을 알려주고 있으며 기록상 보이는 점이 없어 죽향리 절터라고만 부르고 있다.

주위의 논 등에서 출토되는 기와파편 등을 볼 때 시대를 짐작하게 하고 있는데 전국적으로도 흔하지 않는 사자석탑의 잔해로 사자석탑의 분포도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자연마을의 명칭이 본동과 탑산이골로 불리고 있고 인근에 지금도 탑산사라는 절이 있는 것을 보고 주민들은 탑산사라는 지명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하고 말하고 있다.

본래 네마리의 돌사자가 사자석탑을 받들고 있는 형태이나 한마리가 없어진 세마리만이 남아 주민들이 아쉬워하고 있는 가운데 이 돌사자의 바라보는 방향이 서대산쪽을 향하고 있는 데에 대해 조그만 얘깃거리가 전해온다. 옛날 죽향리에서는 불이 자주 일어났단다. 그 재앙을 막기 위해 세운 것이 사자석탑이며 해태(사자)가 불을 먹는다는 통념에서 인근에서 가장 높은 서대산에서 마을을 지키고 있다가 불을 잡아먹으라는 기원이 담겨 있다.

사실인지는 모르나 그후 죽향리에선 불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민들이 전한다. 이 세마리의 돌사자는 해마다 정월대보름이면 한번씩 제사를 지내는 장소로 아직껏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곳은 특히 1917년 옥천면으로 이름이 바뀐 뒤 죽향리 83번지에 면청사가 위치해 있었으며 1919년 군청사 및 각종 기관이 현재의 읍중심가인 삼양리와 금구리로 옮겨옴에 따라 면청사도 금구리 23번지로 이전했다.

따라서 죽향리는 현재의 신읍이 형성되기 이전까지 옥천군의 행정 및 교육, 금융의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다했으며 통상 불리워지는 명칭인 구읍지역(상.하계, 교동, 동안, 문정리)에서는 가장 큰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170가구 700여명의 주민이 보금자리를 틀고 있는 죽향리는 철도개설과 관련 유명한 일화도 안고 있다. 철도가 개설될 당시인 1900년대 초 열차의 소리를 우려한 당시 양반들의 반대에 막혀 지금의 옥천역사를 철로가 개설된 것.

그만큼 유림의 힘이 강했던 지역으로 옥천향교와 옥주사마소가 인근지역에 위치하고 있음을 볼때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신읍의 발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다는 주민들의 의식이 팽배한 가운데에서도 발전의 싹이 움트고 있음을 93년에 완공될 옥천공동직업훈련원의 건설에서 볼 수 있다.

죽향리 134일대 신축부지 양지바른 위치에 공사중인 직업훈련원은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 산하기관으로 89억5천여만원의 사업비를 투입, 연건평 4천3백10평의 면적에 조성하고 있으며, 앞으로 전자기기.정보처리.데이타 통신 설비 등 5개 분야의 원생을 모집, 전문인력을 길러낼 계획을 갖고 있어 옥천군 전체적으로도 기대를 모으로 있다.

뿐만 아니라 농촌지역의 도시화 현상으로 주거개념이 바뀌어감에 따라 쾌적하고 아름다운 환경에서 살고자 하는 의식전환으로 이곳이 전원주택지로 개발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이미 가산빌라와 청산특별농공지구내 재룡산업의 사원주택이 위치, 원거주 주민들과 호흡을 함께 하며 살고 있는 한편 앞으로도 공동주택의 건설 가능성이 큰 곳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들 주민들은 대부분이 벼농사 위주의 산업형태를 보이고 있으며 큰 규모로 경작되는 작물은 없으나 마늘.콩 등 밭작물과 포도 등 과수재배가 적은 규모로 경작되고 있다.

한편 선무역을 비롯한 서너군데의 소규모 공장이 입주, 제품을 생산하고 있어 마을의 젊은 인력이 주로 취업하고 있다. 주민들이 스스로 조직, 움직이고 있는 단체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도 죽향지역의 앞날을 밝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청년회를 비롯하여 경로회의 활동도 활발하거니와 지난 8월 전체 구읍지역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조직된 죽향지역 체육회의 전운천 회장도 활발히 움직이는 젊은층 중의 한명이다.

그중 최근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쓰레기 줄이기 및 자원재활용과 관련하여 몇몇 단체 및 부녀회의 노력이 전 주민에게 긍정적으로 비쳐지고 있는 점도 특이할 만한 점이다. 동성교회(목사 송종홍)에서 몇달전부터 교인들을 중심으로 쓰레기 분리수거운동이 시작된 이후 제룡산업 사원들이 살고 있는 사원주택에서도 솔선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우명순 부녀회장을 비롯한 부녀회원들도 최근 분리수거를 통해 2만원 가량의 판매대금을 손에 쥐고는 앞으로 좀더 열심히 재활용 및 분리수거에 참여하기로 결의했다.

마을에서는 청산부면장을 지냈던 이시묵씨와 한인석씨 등이 공무원 경력을 가지며 지도적 위치에 있는데 매년 주변 노인들을 위해 경로대학을 열고 주민들을 위한 사업을 벌이고 있는 동성교회 송종홍 목사의 활동이 단연 돋보이는 사례이다. 한편으로 이곳 주민들은 과거 면소재지였다는 자긍심에도 불구하고 버스를 한번만 타도 대전 등지의 볼일을 볼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다.

현재 옥천-대전간을 운행하는 640번 시내버스가 금구리에서 회전하여 운행되고 있기 때문에 대전을 나가려면 버스를 두번 타야하는 불편을 겪고 있는 것. 이와 함께 과거 새마을사업으로 시행되었던 마을안쪽 300M 가량의 하수도 복개공사가 주민들의 숙원사업이다.

몇년전 10여가구에서 사과단지를 꿈꾸며 재배를 시작했던 사과가 토질 등이 맞지 않는 바람에 대부분 실패로 돌아가 소득작물 재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죽향리는 현재 각종 사업 현장이나 공장 등지에 몸을 담고 있는 주민들로 인해 집집마다 방 하나 쉽게 구할 곳이 없는, 그래서 제2의 발전을 꿈꾸는 지역으로 변모되길 기대하고 있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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