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백
 전 변
 2000-11-13 22:21:34  |   조회: 4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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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40대 중반의 남자입니다. 옥천에서 태어나 젊을 때 몇 년을 빼고는 지금까지 계속 옥천에서만 살아왔습니다. 물론 학교도 삼양초등학교와 옥천중학교, 그리고 지금은 없어졌지만 옥천실업고등학교(옥천공고의 전신입니다.)를 졸업했구요. 아마도 이 글을 쓴 학생의 부모님도 거의 나와 같은 연배 일 걸로 생각합니다.

내가 처음 담배를 피우기 시작 한 것은 고 2때 였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호기심으로 피우게 되었지요. 그러다 보니까 영웅심으로 계속 피우게 되고,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학생은 친구로 쳐주지도 않았지요. 술도 아마 그 시절부터 마시기 시작했던 것 같네요. 고 3때 소풍을 갔는데 우리 반 전체 학생들이 슬그머니 빠져 나와 술을 마시는 바람에 학교 전체가 발칵 뒤집힌 일도 있었답니다. 내 기억으로는 그때도 고 2나 고 3정도만 되면 거의 50%이상이 술을 마셨던 것 같네요(물론 몰래 숨어서). 담배는 물론 그 보다 조금 적었겠죠. 지방의 별로 좋지 않은 학교라 그랬을 거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반드시 그랬던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 것에 호기심을 강하게 느끼는 학생들이 있었을테고(사실 그 나이에 그런 것들에 대한 호기심이 조금이라도 없다면 젊은이라고 할 수나 있나요 어디?)... 그것은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 또는 좋은 학교를 다니고 나쁜 학교를 다니고의 차이가 아니었답니다. 그 나이의 청소년들이라면 누구라도 한번씩은 거치는『통과의례』였을 뿐이지요.

그뿐인가요 어디? 성인들이 보는 주간지 같은 것에 나오는 여배우의 수영복차림 사진을(지금 생각해 보면 하품이 나올 사진이지만..) 오려서 고이 간직했다가 몰래 숨어서 보기도 했지요.(지금 같이 브로마이드 같은 것이 없었거든요) 지금 학생들이 HOT 나 핑클을 보고 열광하는 거나 똑 같았지요. 학생들의 어머니들도 남진이나 나훈아 같은 사람들을 보며 마음 졸이던 시절이 있었을거예요. 거짓말인가 물어보세요.

복장은 또 어땠구요. 그때는 나팔바지(판타롱)가 유행이었지요. 선생님에게 들키면 바지통을 찢기는 데도 입고 다녔던 기억, 혼이 나면서도 운동화 뒤축을 꺽어 신고 다니던 기억, 멋있어 보이려고 교복 상의 윗 단추를 풀어놓고 다니던 기억들이 나네요. 여학생들은 어땠을 것 같나요? 상의를 조금 짧게 하고 허리 부분을 조금 들여 잘록해 보이게 하는 것이 고작이었지요. 그런데도 생활지도 선생님에게 들키면 혼이 났다고 하네요. 사실 학생들 만한 나이 때가 가장 호기심이 많고 모험심도 가장 강할 때랍니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구요.

그러나 내가 이렇게 과거의 무용담(?)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다고 해서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안돼요. 어른들이 말리는 일은, 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하지 않는게 좋답니다. 위에서 이야기 한 대로 어른들도(어쩌면 부모님도) 그런 시기를 거쳐왔거든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것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거예요. 어쩌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와 지난 이야길 하다가 "그때는 왜 그랬나 몰라."하며 어이없어 할 때도 있다니까요. 조금 자라면, 옛날에 그렇게 조바심 내고 안타까워하고 안달하던 내 모습을 신기한 마음으로 뒤돌아보게 된 답니다.

그리고 조금 더 의연해 졌으면 좋겠군요. 무슨 그깟 걸 가지고 그렇게 풀이 죽어서 그러나요? 학생의 글처럼 옥천고와 상고는 분명히 다른 학교지요. 어디 그뿐인가요? 같은 상고라 해도 학생마다 다 다르지요. 그런데도 그 다른 것을 인정해 주지 않는 어른들이 원망스러울 거예요. 그러나 솔직히 우리 어른들은 그 「다른 것」에 익숙치 않답니다. 여러분들 같이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교육을 받지 못했거든요. 비슷비슷해야 마음이 놓이는 '구닥다리'들 이거든요. 그러니까....까짓 것 못난 어른들이 비교하려면 하라고 하세요. "나는 나"잖아요. 다른 학교 학생들과, 아니 다른 아이들과 다른 "나"를 만들어 가면 되는거랍니다.

이번 일로 느낀 점이 참 많았을 거예요.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을 얘기해 볼께요. 이번 일을 통해서 배운 것이 있어야 해요. 그것은 무엇을 잘 해라 어쩌구 하는 상투적인 게 아니라 어른들이 한 행동을 통해서 세상사는 이치를 배워야 하는거예요. 처음에 '꽃뱀'운운하는 글을 쓴 분도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거예요. 별 뜻 없이 한 말인데 상황이 이렇게 되어 그 사람도 당혹해 하고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학교에 전화를 한 사람도 그렇구요. 자신들의 '별 뜻 없는'(딴에는 생각해 준답시고 한)행동이 학생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었다는 것을 알면 그 사람들도 많이 자책을 할거라고 생각해요. 이제 이번 일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무엇인지 알겠죠? 그래요. 우리의 별 의미 없는 말 한 마디, 사소한 행동 하나가 상대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이것 하나 배운 것만으로도 이번에 받은 상처쯤은 상쇄하고도 남을걸요? 정말이랍니다. 굉장히 중요한 걸 배운거예요. 사회생활 하면서 내 말이 거짓이라고 생각되면 찾아와서 따져도 좋아요.
2000-11-13 22: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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