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신문

기사 분야 : 정　치
등록 일자 : 2000/06/01(목) 19:30

[이슈추적]지방의원 '놀자 외유' 민초들 분노

최근 지방의회 의원들의 관광성 해외여행에 분개하는 주민들의 점거농성과 해당의회 의장의 사퇴 등이 잇따르고 있다. 경북 고령군 농민들은 지방의원들에게 해외여행 비용 중 절반을 반납하라고 요구해 주목을 끌고 있다.

어려운 농촌 현실을 외면한 채 ‘주민 혈세(血稅)’로 호화판 외유를 즐긴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사태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지방의원들의 해외여행이 올들어 봇물 터지 듯 급증하자 주민들과 시민단체 등이 ‘감시의 눈’을 부릅뜨고 있다.

▼주민 반발▼

경북 고령군 농민회원 30여명은 지난달 30일 오전부터 고령군의회 의장실을 점거한 채 △군의원들의 해외연수 비용 50% 반납 △의장단 사퇴 △공개사과 등을 요구하며 1일 현재 사흘째 농성을 계속했다.

농민들은 성명서를 통해 “군의원 8명이 4000여만원의 예산을 들여 올 2월 28일부터 12박 13일 동안 미국과 캐나다로 관광성 여행을 다녀온 사실에 분노를 금치 못한다”고 말했다.

농민들은 “과일값이 폭락하고 구제역 파동으로 농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외유를 한 것은 지방자치 취지를 무색케 하는 것”이라며 “요구사항이 관철될 때까지 무기한 농성을 벌이겠다”고 강경자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

이에 앞서 경북 경산시농민회 등 5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경산민주단체협의회’ 회원 50여명도 지난달 24일 시의원들의 관광성 외유를 문제삼아 의장실을 점거, 농성을 벌인 끝에 변태영(卞太永)의장으로부터 “조만간 사퇴하겠다”는 답변을 받아냈다.

또 경남 합천군의회는 올 4월 6000여만원을 들여 해외연수를 다녀왔으나 농민회측의 항의가 심해지자 조병채(趙秉采)의장이 도의적 책임을 진다며 지난달 8일 의장직을 사퇴했다.

이밖에 충북지역 농민단체인 한국농업경영인 옥천군연합회도 지난달 중순부터 군의원들의 해외연수 관련규정 폐지를 위한 서명 등 범군민운동을 벌이고 있다.

▼해외연수 실태▼

울산시의회와 기초의회 의원들은 4·13총선이 끝난 후 일제히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여행경비는 1인당 400만∼460만원으로 총 3억여원이 소요된 것으로 집계됐다.

경남 고성군의회는 4월 17일부터 27일까지 15명이 1인당 370만원씩 모두 5600만원을 들여 ‘선진지 견학’이란 명목으로 유럽 5개국을 다녀왔다.

또 전남 함안군의회도 가뭄 등으로 농민들이 고통받고 있던 4월 하순 공무원 2명을 포함해 의원 10명 전원이 3600만원을 들여 북유럽 7개국을 다녀왔다.

강원 홍천군의회는 의원 8명과 수행공무원 2명 등 10명이 1인당 경비 480만원씩 3900만원을 들여 3월14일부터 14박15일간 유럽을 여행했다.

▼시민단체 대응▼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는 지난달 9일 ‘전북 지방의회 의원 99년 해외공무여행 평가서’를 발표하고 지방의원들의 해외연수가 대부분 구체적 목적이 없는 관광성이며 여행경비도 과다하게 책정됐다고 지적했다.

이 평가서에 따르면 전북도의회와 시군의회 의원들은 지난 한해 동안 1인당 평균 390여만원을 들여 10일간 해외여행을 다녀왔으며 이들이 사용한 경비만 모두 10억800만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또 30일 이상 해외출장이나 연수를 간 의원도 4명이나 됐다.

한편 대구참여연대는 대구시의회와 8개 기초의회, 경북도의회 등을 대상으로 98년 7월부터 올 3월까지의 해외연수 및 출장내용에 관한 정보공개를 청구, 최근 자료를 받아 분석하고 있다.

행정자치부의 예산편성지침에는 ‘지방의원들은 임기 4년 중 1회에 한해 해외연수를 갈 수 있다’고 돼 있을 뿐 별다른 규제조항은 없다.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박재율(朴在律)사무처장은 “목적이 뚜렷하지 않은 의원들의 외유는 문제가 많다”며 “시민단체들이 나서 연수보고서 등을 철저히 평가해 관광성 여행을 뿌리뽑고 주민들의 세금 낭비를 막겠다”고 말했다.

<대구·전주·청주〓이혜만·김광오·지명훈기자>hamlee@donga.com

2000-11-13 21: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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