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면 가수 최창호씨

함께사는 세상 [83]

2002-08-29     이용원 기자

지난 26일 옥천읍 국일식당에서는 작은 잔치가 벌어졌다. 옥천군노인대학 수업을 마치고 식당을 찾은 대학생들이 점심식사를 같이 하는 것이야 늘 있는 일이지만 이날 식사 자리에는 기분 좋은 맥주를 곁들였다.
 
제7회 여성주간을 맞아 지난 7월5일 관성회관에서 열린 `실버가요제'에서 1등을 한 이 대학교 학생인 최창호(72)씨가 낸 술이다.  할아버지에게는 친구들에게 술 한잔 낼 정도로 기쁜 일이지만 그렇다고 예사로운 일은 또 아니다. 이미 할아버지에게는 무대와 상을 받는 일이 낯설지 않다.
 
"내가 취미로다가 노래는 많이 불렀지, 지방 무대는 거의 안 빼먹고 나갔을 걸"  공설운동장에서 지난 95년도에 있었던 전국노래자랑에 나가서는 인기상을 받았고 지난해 노인의 달 행사로 충청북도에서 열린 노래자랑에서는 군 대표로 나가 커피포트도 들고 돌아왔다.
 
"어디 나가면 나 혼자 잘난 척 하지. 젊었을 때부터 노는데는 나 빠지면 재미없다고 그랬으니까. 관광버스나 마을 잔치에서도 내가 마이크를 잡아야지." 태어날 때부터 신명을 타고 난 할아버지. 할아버지와 막 얘기를 시작하고 있을 때 할머니 한 분이 슬그머니 다가와 눈짓을 한다.
 
먼저 나가 있겠다는 눈짓이었다. 그런 할머니를 할아버지가 손짓을 하며 불러 앉힌다. 주위에서도 옷자락을 잡자 마지못해 자리에 앉는 할아버지의 반려자 이정여(67)씨다. "별로 고생 안 하신 것처럼 고우시네요. 할아버지가 평소에 잘 해주시나 봐요?"
 
"아이구 오늘은 (얼굴에)뺑키칠 해서 그렇지 어제도 깨 터느라고 죽을 뻔 봤어.(웃음)" 할아버지는 어디를 가도 꼭 그렇게 할머니와 함께 한다고 한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무대에 오른 모습은 한 번도 빼 놓지 않고 모두 지켜본 할머니다.
 
지금 노인대학도 함께 다닌다. 말하자면 캠퍼스 커플이다. 흔하지 않은 경우라고 한다. 같이 학교에 다니는 모습이 참 좋아 보인다고 말하는 순간 할머니가 비밀을 털어놓는다. "아저씨는 재 입학생이야. 원래 2년이면 졸업인데 4년째 다니고 있다니까."
 
"맞아. 원래 안 되는데. 좋은 걸 어떡해 대학에 나오면 역사, 교양, 세상사는 이치, 건강, 두루두루 배우니까 좋지. 안 된다는 걸 사무장 막 졸랐지. 동성교회노인대학에도 다녀. 거긴 1학년이야." 할아버지의 직업을 `대학생'이라고 해도 별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한 달에 두 번씩 대한노인회 옥천군지회에서 운영하는 노인대학에 나오고 매 주 목요일에는 동성교회로 등교한다. 청산농협에서 한 차례 운영했던 노인대학도 당연히 수료했다. 특히 지금 1학년인 동성교회노인대학에는 절대로 안 빠진다. 어쩌다 대한노인회 옥천군지회에서 운영하는 노인대학과 동성경로대학의 수업이 겹쳐도 동성노인대학을 선택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거긴 개근상을 주거든 그 거 받아야지. 또 올해 1학년이기 때문에 빠지면 안 돼" 지금도 논 2천평, 밭 2천평에 농사를 짓고 있지만 조금만 부지런하면 대학에 다니는 것은 아무 문제도 안 된다.  "참 멋지게 사는 양반이여, 열심히도 살고. 아마 봉사활동도 할 걸."
 
할아버지가 노인대학에 나오면서 사귄 형님 이문수(75·노인대학 학생장)씨가 곁에서 가만히 듣다가 한마디 거든다. 한참 대화가 끝나갈 때쯤 국일식당 조현순 사장도 음료수를 내오며 `노래를 그렇게 잘 하세요. 한 번 해보세요'라며 부추긴다. "아 밴드마스타 불러와, 그러면 내가 한 곡 하지 뭐."  정중하게(?) 청을 거절한 할아버지는 내처 한 마디 더 보탠다.


"앞으로는 자발적으로 노래자랑에 못 나갈 거 같아. 누가 나가서 해 보라고 그러면 모를까. 이젠 내가 먼저 못하겠어." 분명 무대에 서지 않겠다는 선언은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청산면 백운리가 고향이고 지금도 그 곳에 살고 있다.   2년8개월 동안 부산에서 군대생활 한 것 빼고는 한 번도 고향을 떠난 적이 없다. 부모가 있었고 농토가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살면 얼마나 살아. 노인대학 있으면 다녀야지. 즐겁게 살자, 명랑하게 살자, 건강하게 살자가 신조라니까."  또 한 번 할머니를 설득하느라 진을 뺀 후 부부의 모습을 간신히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사진을 찍은 후 뜨거운 햇살 아래 나란히 걸어가는 노부부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었다.  아이의 웃음만큼이나 환한 웃음을 갖고 있는 최창호씨가 가장 즐겨 부르는 노래는 `일편단심 민들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