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정치의 실종 정당의 부재(4)>'정치 할 자유를 허하라'
<기획-정치의 실종 정당의 부재(4)>'정치 할 자유를 허하라'
규제·관리·금지 중심 공직선거법 개정 필요
후보자는 정책 알릴 길 없고 유권자는 후보 알 길 없어
  • 정창영 기자 young@okinews.com
  • 승인 2016.03.25 15:32
  • 호수 13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나라 공직선거법은 '제1조(목적)'을 시작으로 '제279조(정당·후보자의 선전물의 공익목적 활용 등)'으로 구성돼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광범위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심지어 명함의 크기(길이 9센티미터 너비 5센티미터 이내)까지 일일이 규정하고 있다. 명함의 크기가 어느 만큼 선거 당락에 영향을 주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이 말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공직선거법은 선거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법이 아니라 갖가지 규제와 금지를 위한 족쇄라는 것. 그렇다고 대부분의 사안에 대해 법이 명확한 입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300개 가까운 법조문 중 상당수가 '유권해석'에 기대도록 되어 있다. 이 때문에 본격적인 선거철이 되면 하루에도 수십건의 문의가 선거관리위원회로 들어온다. 하지만 명쾌하게 즉답을 듣는 경우는 드물다. 촘촘한 듯 하지만, 알고보면 엉성한 공직선거법. 후보자와 유권자의 '정치적 자유'를 가로막는 독소조항들이 곳곳에 스며 있다. 공직선거법의 눈으로 보면 '선거는 결코 민주주의 꽃'이 아니다. 끊임없이 감시하고 규제하고 금지해야 하는 민주주의의 적에 가깝다.
 

 

▲ 지난 2월25일 충북 녹색당과 우리고장 녹색당원들이 옥천읍에서 정당 연설회를 개최했다. 정당이 자신의 비전과 정책을 알리는 정당 연설회는 가장 기본적인 정치활동이지만 일상적으로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이 정치 문화와 선거제도는 삶과 밀착된 생활정치와 거리가 멀다는 것. 규제와 관리 중심의 공직 선거법도 여기에 큰 몫을 차지한다. <옥천신문 자료사진>

■ 공정선거 위해 모든 후보에게 똑같이 박수 '짝짝짝'

지난 2014년 4월25일.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 일이다. 서울시의원 양천구 제4선거구에서 주민들이 직접 후보자를 초청해 '뉴타운' 문제에 대한 정책 토론회를 개최했다. 더 많은 주민들이 참석하도록 알리기 위해 동네에 포스터를 붙이고 싶었지만 선관위는 안된다고 했다. 하는 수없이 일일이 개별적으로 연락해 토론회는 어렵게 성사됐다. 현장에는 선관위 직원들도 나왔다. 이런 저런 당부 및 금지 사항 안내가 이어졌다. 소속 정당이나 후보의 이름, 기호가 들어간 잠바와 어깨띠도 금지됐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했다. 후보 중 한 명이 탈부착용 어깨띠가 아닌 상의 자체에 이름과 기호를 새긴 옷을 입고 왔기 때문이다. 법대로라면 후보는 웃옷을 벗고 속옷 차림으로 토론회를 해야 할 판이었다. 현장에 나와있던 선관위 직원들은 즉석에서 긴급회의를 해 이날 토론회만 '예외적'으로 모든 후보들에게 잠바와 어깨띠를 허용키로 했다.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선관위는 사회자에게 특정 후보에게 유불리하지 않도록 공정하게 사회를 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건 법으로 규제할 게 아니라 상식에 속하는 문제 아닐까?). 관객들에게도 같은 공정함을 요구했다. 특정후보에게 편중된 박수를 치지 말라는 것이었다. 지지를 하든 하지 않든, 같은 강도와 시간으로 똑같이 박수를 치라고 요구했다. 선관위는 공직선거법을 앞세운 기계적 중립·영혼없는 공정함만 강조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이 사건은 정치발전소와 참여연대 등이 주최한 '이상한 나라의 선거법' 토론회에 소개된 실제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보듯 우리나라 공직선거법은 규제를 위한 법이다. '할 수 있는 것' 보다는 '할 수 없는 게' 더 많다. 공직선거법에 '할 수 있다'고 명확하게 나와있는 것 외에는 원칙적으로 하면 안된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특정 후보자에 대한 비판이나 지지 표시를 하면서 투표를 독려하면 안된다. △선거 시기 연설회, 집회, 행렬, 서명 등 정책캠페인도 함부로 하면 안된다. △언론과 단체가 후보자를 검증하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후보들 사이에 비교·평가를 해서는 안된다. △옆집에 찾아가서 민주시민의 권리를 위해 투표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안된다. △미성년자는 선거 운동을 하면 안된다. (부모의 선거운동을 도와서도 안된다). △예비후보자가 자신을 알리기 위해 명함을 나눠주더라도 지하철역 등 많은 사람이 왕래하거라 모이는 공개된 장소에서는 안된다. △후보자를 비방해서도 안된다. (이게 왜 문제인지 생각할 수도 있지만 '비방'의 기준 자체가 매우 모호하다). △선거운동과 정책개발을 위해 현직이 아니면 연구소를 만들어서도 안된다. △향우회·종친회·동창회·산악회 등 동호인회, 계모임 등 개인간의 사적모임은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 이런 조항들을 하나씩 짚어 나가다보면 후보자가 자신을 알리기 위한 합법적인 방법이 거의 없음을 알 수 있다. 정책 실력을 키우기 위해 사전에 준비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자칫 잘못하면 사전선거운동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책 선거를 소리 높여 외치면서도 정작 법은 이를 보장하지 않는다. 선거운동이 악수나 명함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셈이다.

공직선거법 '제108조의2(정책·공약에 관한 비교평가결과의 공표제한 등)'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정책을 검증하고 후보간 비교를 하기 위해서는 평가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법은 정당 및 후보자별로 점수를 부여하거나 순위, 등급을 매기는 것을 금지한다. 가령 △수우미양가 △ABCDF △매우좋음·좋음·보통·나쁨·매우나쁨 등으로 표시하면 안되고 석차, 백분율, 그래프 등으로 서열화 해서도 안된다. 비교·평가 한다는 말은 서열화가 전제되는 것임에도 법은 공정성을 이유로 이를 금지하고 있다. 후보 간 비교, 정책 평가가 불가능 하다. 누구를 뽑든 '그놈이 그놈'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런데 있지 않을까. 어차피 순위나 등급을 매길 수 없으니 후보자들도 정책에 공을 들일 필요가 없지 않을까.

황정연(안내면)씨는 "우리나라 선거는 유권자가 후보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후보가 한 말을 검증도 못하고 그저 투표장에 가서 찍기만 해야 하는 방식"이라며 "그러다보니 유권자들이 후보에 대해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자유롭고 활발한) 선거운동 자체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고 지적했다.

■ 일제에 뿌리둔 규제 중심 선거제도

주민의 정치적 자유를 옥죄는 것은 광범위한 선거운동 금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공직선거법을 거의 통째로 뜯어 고쳐야 할 만큼 독소조항들은 곳곳에 널려 있다. 대표적인 것이 투표시간 연장과 선거권 연령 하향 조정이다.

현행 오후 6시(보궐선거는 8시)까지로 되어 있는 투표시간을 연장할 필요가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직후 발표한 유권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투표에 참여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개인적인 일 또는 출근(39.4%)' 때문이었다. 선거일이 법정공휴일임에도 불구하고 백화점, 대형할인점, 골프장, 건설현장 등은 업무 특성상 휴일 근무를 해야한다. 투표 시간을 9시로 연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정치학회가 2011년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 조사에 따르면 투표하지 못한 사람의 64.1%가 현행법에 따른 투표시간에는 투표에 참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답했다. 기본적으로 선거일이 법정 공휴일이라는 건 공무원들에 한해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직장 내 눈치가 보이거나 일이 많다는 이유로 투표에 참여하지 못한다. 네덜란드, 이탈리아, 노르웨이, 영국 등은 투표시간이 밤 9시~10시까지다.

현행 19세로 되어 있는 선거권 연령 기준을 하향 조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정치 개혁의 단골 소재다. 경제협력개발기구에 속해있는 34개 나라 중 선거권이 19세인 곳은 우리나라 밖에 없다. 일본을 포함해 나머지 나라들은 모두 18세 이하다. 오스트리아의 경우에는 16세로 더 낮다. 선거권 연령을 19세로 제한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어느 정도 나이가 돼야 합리적인 정치적 판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현행 제도가 기득권을 가진 정당들에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선거권을 낮추고 투표시간을 연장하면 그만큼 젊은 사람들이 선거에 참여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투표율도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이런 변화가 달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올해 열여덟살이 된 양성민(옥천읍)군은 "청소년들이 투표를 하게 되면 정치인들도 청소년 눈치를 보면서 정책을 내놓을 수 밖에 없을 텐데 그런 게 싫은 것 아니겠느냐"며 "18살 정도면 충분히 자기 생각을 할 수 있는 나이인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애들이 정치는 무슨,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이나 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3년 1월 '선거권 부여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민주주의 원리에 부합하며 각국의 입법례를 볼 때 세계적으로 선거권 연령을 하향하는 추세이고 병역법, 국가공무원법 등 타 법률의 연령규정과의 관계 등을 고려할 때 선거권 연령을 현행보다 낮추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사실 지금과 같은 규제 중심의 공직선거법과 이를 관리하는 선거관리위원회는 제헌의회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던 것들이다. 공직선거법은 1956년 정·부통령 선거에서 진보당 조봉암 선생이 200만표 넘게 표를 얻자 위기를 느낀 기득권(자유당과 민주당)이 일본 중의원 선거법을 모태로 도입한 것이다. 선거관리위원회 역시 제헌헌법 하에서는 내무부 산하에 선거위원회로 있던 것이 1963년 독립기구인 선거관리위원회로 떨어져 나온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선거관리위원회는 △준사법권 △준입법권 △인사권 △예산 편성권 △특별사법경찰권을 지닌 막강한 조직으로 재탄생했다.

이런 공직선거법과 공룡 선관위는 다른 나라들에 견줘보면 매우 특이한 경우다. 이탈리아는 내무부 산하에 있는 중앙선거관리국의 일반 공무원들이 선거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영국은 선거 관리를 위한 별도의 상설 독립기관이 없다. 프랑스는 부정선거단속권과 조사권 등을 일반 형사사법기관이 담당한다. 독일과 미국은 선거 총괄 감독기관 정도만 있을뿐 개별 선거의 관리 업무는 지방자치단체가 위임한다. 특히, 독일은 선관위와 함께 선거법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선거벽보, 현수막 등은 도로법에 따라 일반 광고와 동일하게 관리하고 선거운동은 일반적인 집회법의 적용을 받는다. 한국이 규제와 관리 중심으로 선거운동을 제한한다면 독일은 선거운동을 기본적인 자유권으로 인식, 최대한 존중하는 방식이다.

결국 이런 규제와 관리 일변도의 선거 제도는 일상적인 생활정치를 막는 결과를 초래한다.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14일'에 불과한 상황에서 후보자의 활발한 선거운동이나 유권자의 자유로운 참여는 기대하기 힘들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치는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내가 사는 지역을 기반으로 한 지역정당, 지역정치는 사라지고 악수와 명함만 뿌려지는 깜깜이 선거가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민주당과 공화당만 있는 것으로 알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지역정당들이 존재한다. 뉴욕주의 경우만 하더라도 2011년~2014년 사이에만 23개 정당이 활동했다. 독일이나 영국은 선거 참여와 관련해서만 약간의 등록 절차를 규정할 뿐 특별한 정당 설립 요건 자체가 없다. 이런 차이가 일상적이고 자유로운 정치 참여와 토론을 가져오는 뿌리가 된다. 우리사회와는 출발부터 다른 셈이다. 공직선거법과 선거관리위원회의 바람직한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해볼 시점이다.

황정연씨는 "얼마 전에 제가 활동하는 녹색당이 옥천에서 '정당 연설회'라는 것을 했다. 양당 체제가 굳어진 상태에서 녹색당 같은 소수정당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지만 이렇게 작은 활동이라도 계속 해나가면 변화는 가능하리라고 본다. 이런 활동을 통해서 녹색당이 이런 정책을 갖고 있구나, 주민들도 알게 되고. 평소에 꾸준히 생활정치를 하는 것이 정치를 바꾸는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