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우리에겐 무지개 정치가 필요하다(4)>정의당, 사민주의로 한국식 복지국가 꿈꾼다
<기획-우리에겐 무지개 정치가 필요하다(4)>정의당, 사민주의로 한국식 복지국가 꿈꾼다
두번의 선거 패배 뒤 찾은 새로운 진보정당의 길
정권교체 위한 야권연대 뛰어넘는 전략·힘 필요
  • 정창영 기자 young@okinews.com
  • 승인 2016.03.25 15:32
  • 호수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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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은 원내 유일한 진보 정당이다.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원내 제4정당이 됐다. 진보를 내세우지만 진짜 진보인지 헷갈리는 더불어민주당에 비해 진짜 진보 정당이라 평가받는 정당이다. 하지만 노선이 분명하다고 해서 그만큼 현실 정치에서 지분을 갖는 것은 아니다. 원내 제4정당이라고는 하지만 정의당이 가지고 있는 의석수는 다섯 자리(김제남·심상정·박원석·정진후·서기호)에 불과하다. 혼자서는 원내 교섭단체도 꾸리지 못하고 선거 때마다 야권연대를 외칠 수밖에 없는 정당이다. 노동당과 녹색당이 당선을 위한 야권연대 대신 자신들의 색깔을 지키며 독자노선을 걷는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이번 4·13 국회의원 선거는 그런 정의당의 미래를 점칠 수 있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야권연대를 외쳤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이를 거부했다. 이제는 홀로 일어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미 앞선 두 번의 선거에서 정의당은 독자 정당으로서 유의미한 정치적 결실을 맺지 못했다.

 

▲ 심상정 대표가 지난 9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에 새누리당의 독주를 막고 여소야대 국회를 만들기 위한 야권연대를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사진 : 정의당 홈페이지>

■ 지난날 진보정치의 좌절과 실패 넘어

정의당은 '구 진보정당들'과 다른 길을 가겠다며 탄생한 또하나의 진보 정당이다. 통합진보당 부정 경선 사건 이후 통진당 탈당파와 진보신당 탈당파, 국민참여당 등이 중심이 돼 2012년 10월 '진보정의당'으로 출발했다. 2013년 7월에는 당명을 '정의당'으로 바꾸며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창당준비 선언문은 이런 정의당의 열망을 담고 있다. 일부를 옮겨 보자.

'진보정치를 대표하는 대중적 진보정당이 되겠습니다. 진보정의당은 시대가 요구하는 진보정당, 책임을 지는 정치세력이 되겠습니다. 지난날 진보정치의 좌절과 실패를 넘어, 혁신하고 성찰하는 대중적 진보정당이 될 것입니다. 진보정의당은 노동의 꿈, 노동의 희망이 실현되는 노동 기반 대중정당, 모든 시민이 주권자로 참여하는 시민참여 진보정당, 다양한 진보 가치가 존중받으며 국민의 삶과 밀착된 현대적 생활정당, 우리 정치의 당당한 한 축이 되는 진보 대표정당을 지향하겠습니다.' (2012년 10월7일)

선언문의 정신은 이후 신강령으로 이어지며 정의당이 갈 길을 사회민주주의에 기반한 한국식 복지국가로 자리매김 한다.

선언문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지난날 진보정치의 좌절과 실패를 넘어'라는 대목이다. 정의당 자체가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으로 이어지는 진보정당 내 노선 다툼과 계파 대립에 기인한 측면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구 진보정당들'은 7~80년대식 운동권 사고방식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그로인해 대중정당으로서 가능성에 일정한 한계를 갖고 있었다. 정의당은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진보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천호선 대표의 취임연설에서 이런 인식은 다시한번 드러난다.

'이념의 완고함을 버리고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는 구체적인 설계도를 내놓도록 하겠습니다. 모두를 위한 복지국가, 평화로운 한반도가 그 기본방향입니다. 보편적 복지, 공정한 시장, 노동권의 보장, 협동경제의 확대를 그 핵심 과제로 할 것입니다. 자유, 평등, 연대의 가치를 추구하며 국가를 계획하고 운영해온 다른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의 다양한 경험과 성과를 배우고 우리의 실정에 맞는 창의적인 비전을 세워나갈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 한국 복지 국가의 청사진을 제출하겠습니다.' (2013년 7월21일)

'지난날 진보정치의 좌절과 실패' 위에 새롭게 만들어갈 진보정치는 '이념의 완고함을 버린... 우리실정에 맞는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라고 선언했다. 정의당이 만들어갈 복지국가는 어떤 모습일까.

■ 창당 이후 두 번의 선거 소수정당 한계 부딪혀 

정의당은 2015년 3월22일 신강령을 발표한다. '승자독식의 한국사회를 극복하기 위해 나라 발전의 기준을 성장에서 행복으로 바꾸고 보편주의 복지에 머무르지 않고 분배정의를 실현하는 정의로운 복지국가'를 목표로 제시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비정규직의 정당이다. 비정규직, 영세 자영업자, 청년 구직자와 같이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약자를 대표하는데 우선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GDP 중심의 양적 성장은 더 이상 발전의 척도가 될 수 없다. 일에 대한 존중과 안정, 공평한 소득분배, 일과 여가의 균형, 안전하고 깨끗한 환경, 공동체 참여, 문화의 향유 등 삶의 질을 결정하는 모든 분야를 개선해 국민 행복을 증진시키는 것이 국가 운영의 목표가 될 것이다.

△우리는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와 대통령 결선투표제 등 비례성과 대표성이 높은 선거제도 도입을 시작으로 과감한 정치개혁을 추진해 나갈 것이다.

△지방 정부의 자치권을 대폭 강화해 중앙 정부와 수평적인 분업-협력 관계를 구현하고 주민 참여를 확대해 풀뿌리 민주주의를 활성화할 것이다. 수도권과 지방, 지방과 지방, 도시와 농촌 사이의 격차와 차별을 극복하고 균형 있고 특색있는 발전을 도모할 것이다.

△농어업, 농어촌, 농어민은 생명의 원천이자 국가의 기반이다. 우리는 식량주권을 지키고 농어민의 기본생활을 보장할 것이다. 농어업, 농어촌에 대한 장기 계획과 전략적인 투자를 통해 새롭고 젊은 농어민을 육성하며 농어업을 국가 기간산업으로 농어촌을 생태협동 사회로 만들어갈 것이다.

△시장과 국가가 맡기 어렵거나 적절치 않은 경제영역은 협동조합을 비롯한 사회적경제가 담당하고 더 나아가 사회적경제의 영역을 시장경제가 담당하는 영역으로까지 점차 확산할 것이다.

정의당은 2년 가까운 숙의를 거쳐 새로운 강령을 내놨다. 과거 이념 중심의 진보정당들과는 달리 생활중심의 진보가치들을 다수 녹여내며 호평 받았다. 이런 부분에서 정의당 당원들의 자부심도 높다. 한 정의당 당원은 "지금 국회에서 정의당 말고는 진보를 쓸 수 있는 정당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문제는 이런 새로운 진보의 좌표를 현실 정치와 정책으로 실현할 수 있는 가에 있다.

정의당은 창당 이후 두 번의 선거를 치렀다. 첫 번째는 2012년 치러진 18대 대선. 심상정 의원이 대통령 후보로 나왔지만 막판 '정권교체와 야권단일화'를 이유로 대통령 후보 등록을 스스로 포기했다. '정권교체와 야권연대'는 이후에도 계속 정의당을 자기모순적 상황에 놓이게 만든다. 정의당의 이름으로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는게 아니라 정권교체를 위한 반새누리당의 일원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2014년 치러진 제6회 지방선거. 이 선거에서 정의당은 시도지사는 물론 시장·군수·구청장, 광역의원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시·군의원 11명을 당선시키는데 그쳤다. 당시 기초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1천206명, 새정치민주연합이 789명, 통합진보당이 31명, 노동당이 6명, 무소속이 277명 당선된 것과 비교해봐도 초라한 수치다.

두 번의 선거에서 정의당은 독자정당으로서 비전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반새누리당'을 앞세운 대선은 결과적으로 실패했고 지방선거에서 성적은 공당으로서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하지만 2년이 채 안되는 짧은 기간 동안 두 번의 선거를 치르면서 정의당은 당원 수를 세 배 가까이 늘렸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정의당 당원은 2012년 6천750명에서 2014년 1만8천184명으로 크게 늘었다. 선거에서는 실패했지만 정치에서는 승리했다고 할까? 지방선거 약 1년 뒤 나온 신강령은 이처럼 늘어난 '신규 당원'들과의 조우 속에 탄생했다.

■ 진보정당 정체성 지킨 의정활동 

정의당의 의정활동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의석수가 적다보니 이를 계량할 수 있는 활동도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2014년도 정당의 활동개황 및 회계보고를 보면 정의당은 △기획재정위원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등 4개 분야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활동 내용 자체가 8건 밖에 되지 않는다. 다섯 명의 의원이 9개 상임위원회에 배정된 것을 감안하면 원내 활동이 활발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운 대목이다.

반면 주요 법안 표결에서는 진보 정당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맞는 결정을 했다. 참여연대가 19대 국회 전·후반기 주요 표결 중 우리사회에 도움이 되는 표결(디딤돌 법안)과 그렇지 않은 표결(걸림돌 법안)에 대한 각 의원들의 표결 결과를 분석한 결과 정의당은 디딤돌 법안 16개 중 14개에서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걸림돌 법안은 19개 중 1개를 제외하고 모두 반대했다. 디딤돌 법안에 대한 찬성률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사회에 도움이 되는 법안을 만드는데 정의당이 힘을 쏟았다는 얘기다.

■ 끝끝내 무산된 야권연대... 정의당의 선택은? 

다시 이번 20대 국회의원 선거로 돌아와보자. 정의당은 이미 두 번의 선거에서 쓴 잔을 마신 경험이 있다. 창당 이후 세 번째 맞이하는 선거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번에도 정의당은 정권교체를 위한 야권연대를 제안했다. 여전히 독자노선으로 정면돌파하는데는 한계가 있는걸까?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9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에 호소드립니다. 이제 시간이 없습니다. 소모적 이전투구로 시간을 허비할 때가 아닙니다. 이번주 안에 야3당이 담대하고 책임 있는 야권연대 논의에 들어가야 합니다. 야당을 지배하고 있는 패배주의와 낭만적 모험주의 모두 떨쳐내야 합니다. 두 야당이 보유한 의석에 걸맞은 책임감과 냉철한 정세인식을 되찾기를 바랍니다. 민생을 살리는 국민을 위한 연대, 야당이 공동의 승리를 거두는 야권연대를 만드는데 머리를 맞댈 것을 촉구합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의당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정의당이 제안한 야권연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의당은 막판까지도 야권연대에 매달렸지만 끝내 결실을 보지 못했다. 야권연대 성사에 매달리는 사이 정책·공약 발표는 미뤄졌다. 정의당이 20대 국회의원 선거에 대비해 본격적으로 공약을 발표하기 시작한 것은 2월 중순이 넘어서다.

선거를 불과 3주 앞둔 23일 천호선 공동선대위원장은 '정의당은 일방적이고 모욕적인 야권연대의 파기에 분노하며 이제 총력전의 각오와 결의를 다지겠다'고 말했다. 독자노선으로는 새누리당의 독주를 막을 방법이 없고 그렇다고 야권연대를 주도할 힘이 있는 것도 아닌 현실을 그대로 보여줬다.

옥천읍에 사는 한 40대 남성은 "정의당이 진짜 진보정당으로서 뭘 보여주려면 '새누리당은 안돼' 이것 다음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새누리당 독주 막으려면 무조건 힘을 합쳐야 된다. 이외 다른게 보이지 않는다. "고 지적했다. 옥천읍에 사는 또다른 40대 남성은 "냉정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 총선에서 지고 다음 대선까지 지면 없는 사람들은 더 이상 답 없다. 영원히 힘들어진다. 지금처럼 가면 '집권당'만 웃는다"며 야권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의당은 두 남성의 대화 사이 어디쯤에서 답을 찾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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