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정치의 실종 정당의 부재 (3)>바뀌지 않는 정치, 사람 아닌 제도의 문제
<기획-정치의 실종 정당의 부재 (3)>바뀌지 않는 정치, 사람 아닌 제도의 문제
승자독식 하는 단순다수대표제 민심왜곡 심각
비례대표 확대로 득표율·의석점유율 차이 줄여야
  • 정창영 기자 young@okinews.com
  • 승인 2016.03.18 11:11
  • 호수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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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비판할 때 자주 쓰이는 표현 중 하나는 '그놈이 그놈'인 정치판의 문제다. 누구를 뽑으나 정치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국민적 경험이 집약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국회의원 교체 비율은 실제로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17대 국회의원의 63퍼센트가 초선이었고 18대, 19대 국회의원의 초선 교체 비율도 각각 45퍼센트와 49퍼센트에 달했다. 4년에 한번 선거를 할 때마다 평균 2명 중 1명은 새인물로 바뀐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정치는 달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인물'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 무엇이 문제일까. 사람이 아닌 제도의 문제를 짚어볼 필요성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핵심은 현재의 선거 제도가 민심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지역구를 중심으로 하는 단순다수대표제로 1위를 한 후보가 당선된다. 1위가 실제로 얼마의 민심을 대표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99%의 지지를 받든 25%의 지지를 받든 1등만 하면 된다. 나머지 유권자들의 표는 죽은표, 즉 '사표(死票)'가 된다. 이 과정에서 투표 결과와 실제 민심 사이 괴리는 커진다.

▲ <그림1>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한국식/독일식 의석 배분 비교

■ 유권자 4명 중 1명만 지지 받으면 당선

지난 2014년 10월 헌법재판소가 선거구 간 인구 편차를 2대1로 줄이라는 결정을 한 이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정치관계법 개정의견(2015년 2월)'을 발표한다. 개정의견의 핵심은 비례대표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선관위는 두 가지 의견을 냈는데 하나는 △같은 시·도 안의 지역구에 입후보한 후보자에 한해 두명 이상을 비례대표 후보자 명부의 같은 순위에 배치할 수 있도록 하자는 안이었다. 다른 하나는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눈뒤 권역별 비례대표를 실시하자는 안이었다. 두가지 안 모두 비례대표 확대를 통해 '정당 지지도와 의석 점유율 간, 시·도별 인구수와 의석수간 불비례성을 극복하고 대표성을 강화하자'는 취지가 담겨 있다. 선관위는 특히, 두 번째 안의 경우 지역구와 비례대표 비율을 200석, 100석으로 조정하자는 의견을 밝혔다. 이는 기존 의석이 지역구 246석, 비례대표 54석으로 이뤄진 것과 비교해보면 '정치개혁'에 비견할 만한 큰 변화다.

선관위는 왜 이런 제안을 했을까. 직접적인 원인은 헌재의 결정이었지만 이는 선거구 간 인구 편차에 의한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 선관위는 이를 풀기 위한 논의 과정에서 비례대표제 확대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건드렸다. 비례대표제 확대는 그간 시민사회단체와 정치권에서 줄곧 제기된 정치개혁의 최대 화두이기도 하다. 서두에서 지적했듯 우리나라 국회의원 선거는 1위 득표자가 당선자가 되는 단순다수대표제다. 얼핏 보면 1위를 했으니 당선되는게 당연해 보이지만 그것이 민심을 100% 정확하게 반영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19대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합계 득표율은 79.2%였지만 의석 점유율은 93%에 달했다. 14%의 차이가 발생하는데 국회의원 정수가 300명이니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42명의 국회의원을 덤으로 가져간 셈이 된다. 이처럼 득표율과 의석 점유율 간 불일치는 19대 국회에서만 발생한 특수한 상황이 아니다. 13대~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모두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다.<표 참고> 이같은 문제를 풀기 위한 해법이 비례대표 확대다.

▲ <그림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우리고장 사표 현황

우리고장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그림2>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박덕흠 후보는 옥천에서 1만4천767표를 얻어 당선됐다. 득표율은 52.7%였다. 과반을 넘은 지지다. 하지만 이는 투표에 참가한 사람들만 놓고 계산해서 나온 결과다. 옥천의 총 선거인수는 4만4천270명이다. 박덕흠 후보가 아닌 다른 후보를 지지하거나 투표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합한 사표의 총합은 2만9천503표에 달한다. 박덕흠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지한 후보는 전체 선거인의 33.3%에 불과하다. 남부3군 전체로 확대하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남부3군 전체 선거인수는 11만6천370명이다. 박덕흠 후보는 이중 3만196표를 얻어 당선됐다. 사표의 총합은 당선표의 세배 가까운 8만6천174표에 이른다. 전체 선거인 중 25.9%의 지지다. 투표권을 가진 주민 4명 중 3명은 박덕흠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셈이다. 이처럼 대량의 사표가 발생하는 현행 선거 제도는 민심을 크게 왜곡 시킨다는 지적을 끊임없이 받고 있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이태호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은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지역구 선거에서 최다 득표자 1인만 당선되므로 다른 후보에게 투표한 유권자의 표는 사표가 되어 정당별로 볼 때 전체 득표율과 의석률 간 불일치가 크게 나타난다... 득표와 의석 간 불일치가 크다는 것은 그만큼 국민의 의사가 대표자 선출에 반영되고 있지 못하다는 의미다. 선거제도 개혁은 선거를 통해 표출된 국민의 의사가 대표자 선출에 온전히 반영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위해 국회의원 비례대표를 대폭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15년 4월 '국회의원 선거제도 어떻게 바꿔야 하나?' 토론회 중에서).

■ 독일식 비례대표 적용하면 19대 총선 결과 '확' 달라진다 

비례대표를 확대하면 실제로 의석이 달라질까. 많은 이들이 현존하는 최고의 선거제도라고 일컫는 것이 독일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다. 지역성과 비례성이 동시에 확보되는 방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원리는 이렇다. 일단 의회의 총의석을 각 정당의 전국 득표율에 따라 배정한다. 그 다음 각 정당이 확보한 의석 중 절반을 지역구 후보들에게 다시 배정한다.(우리나라와 같은 1인2표제다). 예를 들어보자. 여기 총 100석의 의회가 있다. A정당이 전국 득표에서 40%를 차지했다 치자. A정당은 100석 중 40석을 우선 배정받는다. 그런 다음 이중 절반인 20석을 지역구 대표들에게 재배정한다. 만약 A정당이 전국 수십개 지역 선거구 중에서 1위를 배출한 곳이 20개라면 이들이 지역구 의석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을 통해 독일은 지역성과 비례성을 동시에 확보한다.

이를 우리나라 19대 총선에 대입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강남훈 한신대학교 교수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그림1>과 같이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의석 수는 각각 15석, 10석이 줄어든다. 반면 자유선진당과 통합진보당은 각각 5석, 20석이 늘어난다. 전체 의석수는 그대로지만 각 정당별 힘의 균형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새누리당 단독으로는 의회 과반을 확보할 수 없다. 집권여당이 지금과 같은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할 수는 없어진다. 강 교수는 이 같은 결과를 한 매체에 기고하며 다음과 같은 분석을 했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합해서 150석이 된다. 과반수가 되려면 무소속 1명이 필요하다. 무소속 몸값이 하늘 높이 올라갔을 것이다. 그런데 마침 정읍의 유성엽 의원이 무소속이었다. 그는 선거 후 민주통합당에 입당했다.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채택했다면 지금 민주통합당 + 통합진보당 + 무소속 이렇게 해서 집권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많은 법률들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2015년 2월 칼라밍 '우리는 아직 평등 선거가 아니다' 중에서).

19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정당은 20개였다. 이중 비례의석을 확보한 정당은 △새누리당(25석) △민주통합당(21석) △자유선진당(2석) △통합진보당(6석) 등 4개에 불과하다. 녹색당, 청년당 등 16개 정당은 득표율이 낮다는 이유로 단 한 석도 가져가지 못했다. 하지만 선거제도가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였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 않았을까. 옥천 주민들은 19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선거에서 통합진보당에 1천486표를 줬다. 다른 16개 군소정당의 합계 득표는 2천223표다. 규칙이 달랐다면 이 '2천223표'가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남아 작지만 진실한 바닥 민심을 국회로 들여보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 비례대표, 사표 방지 넘어 복지사회로 가는 길 

비례대표제는 단순히 사표 발생을 막아 민심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제도 자체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만들어 간다. 이는 실증적인 연구를 통해 확인된 결과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에 따르면 비례대표제를 바탕으로 한 다당제 국가에서는 성장보다는 분배와 복지를 중시하는 성격의 정부가 구성될 확률이 '75%'에 달한다고 밝혔다. 최교수는 아이버슨과 소스키스 등 외국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이와 같은 주장을 펼친다.

'(다당제 국가에서는) 중도정당이 보수정당보다는 진보정당을 파트너로 선택하여 연립정부를 형성하는 일이 훨씬 많다는 얘기다. 중도정당의 선택이 주로 그러한 이유는 진보파와 연대하면 보수정당의 지지 기반인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대한 집중적인 세금 부과가 수월해지고 따라서 자신의 지지 기반인 중산층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보편적 복지를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더구나 선택의 폭도 진보 쪽이 훨씬 넓다. 사회 구성원들의 다수가 사회경제적 약자들인 만큼 비례대표제 국가에는 약자들의 선호와 이익을 대표하여 생태, 환경, 안전, 복지, 소수자 보호, 경제민주화 등을 강조하는 진보 및 중도 진보정당들이 여럿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비례대표를 중심으로 한 다당제 정치 구조를 갖고 있는 나라들은 높은 수준의 사회복지 체계를 갖추고 있다. 주로 유럽 국가들이 그러한데 독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벨기에,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등이 있다. 반대로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등 우리나라처럼 거대 양당제를 기본으로 하는 국가들은 극심한 경쟁과 사회 양극화 등 신자유주의가 판을 친다. 다시 최 교수의 설명을 옮겨 본다.

'양당제에서는 기본적으로 자본과 기업 친화적인 보수파 정당이 집권할 확률이 매우 높다. 이에 대한 가장 유력한 설명은 선거 결과를 좌지우지 하는 중산층 혹은 중도파 시민들은 일반적으로 집권 후 좌경화 하여 자신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할 가능성이 있는 진보파 정당에게 표 던지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양당제에서는 설령 진보파 정당이 정권을 잡을지라도 정부 정책 기조가 대단히 진보적일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저소득층의 표는 어차피 자기 것이라고 여기는 진보파 정당의 입장에선 어떻게든 중산층 표를 더 많이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된다. 양당제 국가의 진보파 정부들이 기껏해야 중도정책들을 양산해내는 까닭이다.' ('한국형 합의제 민주주의를 말하다' 중에서).

비례대표제가 확대 되면 △사표 발생을 막고 △복지사회가 강화되며 △정당간 정책 경쟁이 활발해질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19대 국회는 선거구획정안을 처리하며 비례대표를 '54석'에서 '47석'으로 줄이는 개악을 단행했다. 소수 정당의 원내 진출 꿈은 작아졌고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의 기득권 체제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옥천읍에 사는 한 40대 정의당 지지자는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이에 대응하는 기존 두 정당의 모습에 실망하며 정의당을 지지하기 시작했다"며 "지금 정의당 의원 5명 중 4명이 비례대표인데 비례대표 의석이 줄어들면 정의당 같은 소수 정당의 설 자리가 더욱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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