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병과 함께 걷는 금강여울길>'태고의 신비' 그대로, 광주리굴 힐링탐방
<정수병과 함께 걷는 금강여울길>'태고의 신비' 그대로, 광주리굴 힐링탐방
  • 이안재 기자 ajlee@okinews.com
  • 승인 2015.07.24 15:53
  • 호수 129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청성면 무회리 무리여울
청성면 조천리 도천(고속도로 폐도 끝지점)-조분리-청성면 삼남리 배고개-광주리굴-청성면 무회리-보청천 무리(무회리)여울 구간 7.5km

6월 메르스사태 때문에 연기됐던 '무리여울길' 구간을 7월에야 가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금강여울길은 많은 이들의 얘기와 새로움이 교차되는 설레는 자리입니다. 걷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으나 그것도 한여름에 걷는다는 것이 더욱 그렇기도 하지요-여울길에 참여하는 어느 누구에게는 생전 처음 걷는 길이겠기에 더욱 애착이 가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두 달 만에 가게 된 금강여울길을 시샘하는 것일까요? 18일 새벽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립니다. 몇몇 분이 전화연락을 해옵니다. 비가 와도 가느냐고? 폭우가 아니면 비옷을 입고, 우산을 쓰고라도 간다고 대답했지요. 한여름에 비옷 입고 오는 비 온몸으로 받아내는 기분도 때로는 괜찮다고 느낄 때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날궂이를 대놓고 할 수 있는 날이 이런 날이 아니면 언제겠습니까?

그런데 여울길을 출발할 즈음에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습니다. 비는 오지 않고, 햇살은 나지 않는 잔뜩 흐린 그런 날이 오히려 걷기에는 좋은 날입니다. 새벽에 온 비 때문인지 평소보다는 훨씬 적은 인원이 여울길 탐방에 나섰습니다.

■ 해발 275m 높이에 형성된 순흥안씨 세거지 조분리

원래 무리여울에서 걷기를 시작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여름의 한가운데 있는 지금 차라리 오훗녘에 여울에 도착해서 물이라도 첨벙거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버스를 도천리 느티나무 앞으로 돌렸다.

수령이 600년 가까이 된 도천리 느티나무는 참 생명력 강한 나무다. 지난 2009년 고속도로 확장공사로 인해 베어질 위기에 있다가 위 가지들을 뭉텅 잘라내고 안전한 위치로 이전한 이후에도 푸르름을 자랑하며 위용을 되찾고 있다.

▲ 도천을 시작으로 여울길걷기에 나섰던 일행들이 마침내 무리여울을 건너보기도 하고, 여울을 즐기고 있다.

▲ 보청천 무리여울 출발길인 도천리 느티나무 앞. 지난 2009년 고속도로 확장공사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가 가지를 뭉텅 잘라내고도 새생명을 살듯 그 자리에 서있다. 생명력이 대단하다.

▲ 보청천 무리여울 출발길인 도천리 느티나무 앞. 지난 2007년 고속도로 확장공사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가 가지를 뭉텅 잘라내고도 새생명을 살듯 그 자리에 서있다. 생명력이 대단하다.

▲ 조천리로 마을이 합쳐진 후에도 도천과 조분은 조천리의 자연마을. 일행들이 도천리에서 조분리로 오르는 비포장 길을 오르고 있다.
일행들은 도천리 마을에서 조분리 마을로 오르는 길을 오른다. 사실 조천리 자연마을을 잇는 길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포장이 안 되고 움푹 파이고 차량이 다니기가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우리들 이기적인 생각으로야 흙을 밟을 수 있는 비포장길이 더 낫긴 하다. 그러나 실제 조분이, 도천에 살고 있는 주민들로서는 또 하나의 불편함일 터이다.

각각 조분리, 도천리로 구분되었던 행정구역은 지금 조천리로 통합돼 있다. 가구 수가 줄어서다. '새주둥이' 모양처럼 생겼다고 해서 '새분이'로, 새분이가 '조분이'로 되었다는 조분 마을로 들어서자 큰 느티나무가 반긴다. 한 옆에는 순흥안씨 세거비가 서 있다. 조분리 큰 느티나무 그늘은 사람들을 모두 품어 안는다. 그런 넓은 그늘이 참 좋다.

조분리는 참 아기자기하다.

예부터 단호박 농사를 많이 짓기로 유명하던 곳이다. 지금은 마을에 다섯 농가가 남아 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조분리가 사실은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다. 올라가는 경사가 완만해 마을이 그다지 높을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으나 확인해본 결과 해발 275m 높이에도 집들이 있다. 금강변에 있어 대단히 높은 마을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청성면 고당리 높은벼루가 기실 해발 250m가 채 안 되는 지대에 있음을 감안하면 조분리는 훨씬 높은 곳에 형성된 마을이다.

일행들의 눈길을 끄는 것이 또 있었으니. 마을 길가에 있는 옛 우물이다. 물이 많았다는 조분리에 아래 위로 두 개의 우물이 있다. 우물에 '세탁금지'라는 글이 써있는 것으로 보아 마을 사람들이 먹는 물로 사용했음을 알겠다. 아직도 물이 많이 들어차 있는 우물이 정겹다.

▲ 조분리는 단호박 재배지로 유명하다. 지금은 몇 농가 남지 않았으나 계약재배를 통해 출하되고 있다. 단호박을 수확하는 풍경이 사진에 잡혔다.

▲ 마을 가운데 길가 우물에는 세탁금지라는 글자가 남아 추억을 되새기게 하고 있다.

▲ 도천에서 조분으로 올라선 일행들이 조분리 큰 느티나무 아래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왼쪽 비석이 순흥안씨 세거비.

■ 광주리굴 그 신비의 현장으로

이번 여울길에서 광주리굴(일명 강정굴이라고도 했다)은 한 마디로 깜짝카드다.

언젠가는 가보리라 생각했던 광주리굴을 여울길 여정에 넣은 것은 정말이지 기가 막힌 선택이었다. 그러고는 실제 광주리굴을 찾아 미리 답사에 나섰다.

무작정 나섰던 답사길. 마을에서 전경식씨를 만나 산기슭까지 올랐으나 골짜기를 잘못 들어서는 바람에 위치를 찾지 못했다. 두 번째는 무회리 임상철 이장과 함께 나섰다. 하지만 몇 해 전 가본 임 이장도 골짜기를 잘못 찾는 바람에 역시 굴을 확인하지 못했다. 결국엔 임 이장이 다시나서고 최영임(71)씨의 도움을 받아 겨우 광주리굴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 광주리굴. 우리 고장에 이런 동굴이 있을까 하는 신비감과 함께 좁은 입구를 기어 들어가면 넓다란 공간도 나오고 마치 탑을 쌓은 듯은 모양도 나온다.
광주리굴은 1970년대 언론에 알려져 6억년인 된 석회동굴이라 고 판명됐으며, 지금 웬만한 국립지리원 지도에도 '광주리산굴'이라는 이름으로 표기돼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1970년대 중반 각급 대학에서 탐사도 했고, 전국에 이름이 알려졌으나 '너무 오래 돼서 동굴 안쪽이 무너질 우려가 있다'는 답사 결과 때문에 결국 개발이 되지 못하고 방치된 곳이다. 지금은 군에서 철문을 해달았다.

그럼에도 이 동굴은 어린 시절 호기심에, 용기를 과시하느라 들어갔던다. 임상철 이장은 아직도 이 굴을 개발해주길 바라고 있다. 그래서 군 공무원과 함께 동굴을 찾기도 했다.

동굴에 들어서자 대번 입김이 나고, 일정 때문에 깊숙이 들어가지는 못했으나 굴에 들어간 일행들은 동굴 안 풍경에 탄성을 지른다. 석회가 흘러내려 탑 모양을 한 것이며, 동굴 안 넓은 풍경이 일행들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고도 남았다.

광주리굴을 나온 일행은 드디어 무회리 마을을 거쳐 무리여울에 다다른다.

여울길 중간에 무회리 골짜기에 혼자 농장을 일구며 아름다운 자신의 영토를 개척해놓은 김선덕씨 농장에 들어갔다 온 것까지 치면 8.5km 정도의 길을 걸은 일행은 무리여울에서 다 풀어놓고 여울에 다리를 적신다. 씨알이 굵은 다슬기가 일행들의 눈길을 잡는다.

무리여울은 무회리 사람들이 나무다리를 놓고 농사를 지으러, 나무를 하러 다녔던 곳이었다. 무회리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안고 있는 한아름 추억을 안고 무리여울은 또 그렇게 쉼없이 금강으로 흐르고 있다.

▲ 무리여울길 중간에 들른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광주리굴 입구. 일행들이 호기심에 찬 얼굴로 굴 입구에 섰다.
▲ 광주리굴. 우리 고장에 이런 동굴이 있을까 하는 신비감과 함께 좁은 입구를 기어 들어가면 넓다란 공간도 나오고 마치 탑을 쌓은 듯은 모양도 나온다. 출향인 이상근씨가 촛불을 들고 동굴 탐방에 앞장섰다.

▲ 광주리굴. 우리 고장에 이런 동굴이 있을까 하는 신비감과 함께 좁은 입구를 기어 들어가면 넓다란 공간도 나오고 마치 탑을 쌓은 듯은 모양도 나온다.

'우리는 개구쟁이 동창생'

▲ 친구들끼리 이런 우정도 없다. 출향인 김대현(왼쪽)씨와 곽세철(오른쪽 두번째), 이상근(맨 오른쪽)씨와 무회리에 살고 있는 안재호(왼쪽 두번째)씨가 무리여울을 배경으로 섰다.

광주리굴을 여울길 일정에 넣은 후 무회리 이웃인 만명리 출신 출향인 김대현씨에게 광주리굴에 함께 가자고 했다. 이에 김대현씨는 친구들을 이번 여울길 탐방에 초대했다. 대전에 사는 곽세철씨와 이상근씨가 여울길에 함께 나섰다. 무회리에 귀향해 살고 있는 안재호씨는 광주리굴 입구에서 만났다. 다들 예순여덟 초등학교 동창들이다.

"1960년대 중반 이후였을 거예요. 우리가 토끼를 몰다가 광주리굴을 처음 발견했어요. 그때 이후에 대학이나 방송 등에서 나와서 굴을 탐사하기도 하고 그랬는데 아직도 개발이 안되고 있으니. 이게 아마도 도시 주변에 있었으면 충분히 개발이 되었을 걸요?"

곽세철씨가 광주리굴에 대해 말을 꺼낸다. 이상근씨는 1995년 광주리굴에 촛불을 들고 들어갔던 사진을 보여주며 기억을 꺼낸다. 20년이나 됐지만 아직도 생생한 모양이다.

"들어가 보면 신기하죠. 오늘은 조금 들어갔으니까 그렇지, 동굴 탐사 장비를 갖고 들어가면 중간에 절벽도 있고요. 호수도 있습니다."

이상근씨는 동굴에 대해 궁금해하는 일행들을 안내해 손수 동굴 속으로 들어가 여기저기 안내를 했다.

"동굴 속으로 많이 들어가면 양저리 쪽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고 하기도 했어요. 참 신기한 거죠. 어쨌든 오늘 동굴도 보고, 무리여울에서 기념으로 사진 한 장 찍으니 우리 친구들 진짜로 기분이 좋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