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있는 고향은 긴박한 상황에 편안함을 줍니다"
"여유있는 고향은 긴박한 상황에 편안함을 줍니다"
[내고향 옥천] 조석구 충청남도 소방본부 종합상황실 119실장
  • 황민호 기자 minho@okinews.com
  • 승인 2002.06.26 00:00
  • 호수 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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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에서 가장 바쁜 직업이 아니라면 서러워 할 그 자리. 모드 사람들이 어려울때 신속히 눌러대 찾는 그곳 한가운데 그가 위치해 있었다.

그의 눈엔 벌써 고향(군북면 항곡리)이 담겨져 있었다. 일주일이 멀다하고 고향에 계신 부모님 찾아뵙건만 고향에 대한 향수는 그의 눈망울을 따뜻하게 했다.

초를 다투는 긴급한 상황들에 익숙해졌던 탓일까? 여유있는 고향의 정담은 그에게 편안함을 던져줬던 것 같다. 이 세상에서 가장 바쁜 직업이 아니라면 서러워할 그 자리. 모든 사람들이 어려울 때 신속히 눌러대 찾는 그 곳 한가운데 그가 위치해 있었다.
 
충청남도 소방본부 119종합상황실 실장 조석구(50)씨. 그는 충남전역에서 걸려오는 119전화를 신속하게 상황판단하여 처리하는 그 자리에 서있었다. 하루에 오는 전화만 해도 평균 150여통. 눈코 뜰 새 없이 긴장하며 지내는 하루하루가 그의 얼굴에 잔주름을 만들었지만 선량하게 웃는 표정까지는 바꾸지 못한 것 같다. 그의 곁엔 50여년 세월을 함께 한 고향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내 순간의 판단에 생명이 오고가기 때문에 항상 긴장하며 삽니다. 신속하게 일처리를 해서 생명을 구하는 경우 밀려오는 보람은 하루의 피로를 싹 씻게 만듭니다”  군북면 항곡리. 그는 지금은 증약초 대정분교로 남아있는 대정국민학교를 졸업했다. 항곡리는 오지중의 오지라 동면, 증약, 방아실 어디를 가든 10리에서 20리는 족히 나왔어야 됐다고 말한다. 학교에 갈 때도 족히 5리 넘게 걸어야 했단다.
 
“그 당시 24명이 졸업을 했어요. 지금은 고향에서 운명한 친구도 있고, 각각 외지에 떨어져서 연락이 잘 안돼요. 지금 하는 모임 ‘황골애향회’는 항곡리 친구들이 모여 고향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만든 단체에요” ‘황골’이라는 말은 항곡리의 옛이름이란다.

1년에 설과 추석 명절때 2번 모여 마을회관 연료비 지원, 어버이날 행사지원, 마을 유선TV설치비 지원 등 자신들을 있게 해준 고향에 대해 조그만 보답을 한다.  90년에 40여명으로 발족한 ‘황골애향회’는 앞으로도 독거노인 및 극빈자 지원과 장학금 지원 등 고향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향은 외로운 타지에서 내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 정신의 응원군입니다. 고향으로 맺어진 인연들은 내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죠”  자신의 자라온 모습을 계속 지켜봐준 동네 노인분들과 그들의 늙어가는 모습을 본 자신사이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끈끈한 유대감은 그가 고향을 자주 찾고 봉사하게 만드는 힘이라고 말한다.
 
“외형상 도로가 깔리고 초가집들이 사라지고, 많이 변했지만, 사람들은 늘 그대로에요. 고향에 가면 그 시간 그대로 멈춰 있는 듯해요. 동네 어른들에게는 난 여전히 어린 석구고,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나 할까요?” 그의 이런 말에는 마을에 젊은 사람이 없다는 아쉬움도 곁들어 있다.
 
“옛날 생각이 납니다. 따지고 보면 제가 소방서와 인연을 맺게 된 것도 양철에 사기를 입혀 할아버지 명패옆에 고이 걸어놓은 ‘불조심’이라는 문구 때문이었어요. 그게 은연중 내 무의식속에 자리 잡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소방관에 자원했죠, 그 때부터 26년간 소방서 일을 했으니..참 오래 했습니다”
  
“고향 녀석들 생각이 나요. 유정현이는 읍내에서 어디 부동산 한다고 하던데, 기배녀석은 또 선거에 나왔나 보네요. 집이 그리 풍성하지도 않을텐데 왜 자꾸 나서는지. 그래도 그놈 기백 하나는 알아주죠. 이번에 군북 군의원은 면 공무원 하던 박찬웅씨가 됐나보네. 동네 외사촌 형인 덕환(김덕환·57)이 형은 지금 우리 동네 이장이에요”
 
끊임없이 이어지는 고향에 대한 이야기는 그칠 줄 모른다. 그가 내뱉는 사람이름 하나하나에 애정이 묻어난다. 요즘은 안면도 꽃박람회니, 월드컵 축구니 지방선거로 인해 119상황실은 정신없이 바빴단다. 그러면서 못내 쑥스러워하면서 꺼내는 말 “저번 안면도 꽃박람회때 동네 노인분들 구경시켜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47명 버스 대절해서 한나절 다녀왔는데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바다를 처음 보시는 분도 있던지 조개껍질 계속 부여잡고 즐거워하시는 모습이 내 마음이 다 흐뭇해지더라구요”
 
그는 향수를 넘어서 고향의 발전을 이야기 하고 싶어했다.  “많은 소모임들 조직적으로 연대해서 고향발전에 큰 도움을 줬으면 좋겠어요. 옥천이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은 다 똑같은 것 아니겠어요” 그는 덧붙여 지역 언론이 해줘야 할 몫이 많다며 신문에 대한 당부의 말까지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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