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대한 사랑이 저의 전부이죠"
"고향에 대한 사랑이 저의 전부이죠"
[내고향 옥천] 김주현 변호사
  • 황민호 기자 minho@okinews.com
  • 승인 2002.05.11 00:00
  • 호수 6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옥천신문

불쑥 전화를 걸어 약속시간을 1시간 앞당기더니 이번엔 무려 25분을 기다리게 만든다. 번잡한 검찰청 앞 변호사 사무실에서 기다림이 점점 짜증으로 변하기 시작할 무렵 선한 눈매의 김주현(42) 변호사는 `미안하다'며 사람 좋게 웃어버렸다.
 
그러고는 소탈한 표정으로 두런두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대화를 나눌수록 딱딱한 법조문이 연상되는 `변호사'라는 그의 직업 안에 있는 인간으로서의 그가 보이기 시작했다.
 
새날 합동법률사무소 앞에 걸려있는 그의 명패에는 `대전 충남민언련 운영위원장', `CMB 생방송민원해결 25시 출연', `사회복지법인 성애원 감사 및 모두사랑 이사'라는 감투가 새겨져 있다. 그 뿐이 아니다. 현재 김 변호사는 `대전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대전민변 사무처장' 등도 그의 이름 뒤에 붙은 또 다른 직책이다.
 
수 많은 직책과 다양한 경력이지만 정치지망생들의 명함 뒤를 빼곡히 채운 그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묻기도 전에 "제가 원래 감투욕심 있는 사람은 아니고요. 누군가 해야 할 일이 거기 있고, 그 곳에 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변명(?)한다. "왜 돈 안되는 시민단체 일을 하냐"는 불순한(?) 질문에 "부조리한 삶에 대한 저항이고, 사회에 대한 관심때문이다"라고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한다.
 
"80년대 광주학살이 시발점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사회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지속되었죠. 학생운동도 해보고 노동현장에 뛰어 들기도 하고, 결국은 고시공부를 해 변호사가 되었지만 초심을 잃지 말자는 연유로 지금 시민단체 일을 더불어 하고 있는 겁니다" 다양한 경력과 직책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되었다. 분위기를 바꿔 마음속에 담아둔 옥천의 모습은 어떤 것이냐고 물어보았다.
 
"경찰 공무원이신 아버지때문에 학창시절 내내 이리저리 옮겨 다녔습니다. 옥천은 중학교때 2년반의 기억이 전부지만 내 마음의 고향입니다"라며 그는 추억을 더듬는다. "동일 한의원 뒷마당의 낡은 한옥집이 제가 잠시 살던 집이었는데... 지금 치과를 하고 있는 근식이네 집에서 라면 끓여먹으며 공부도 했었지요"
 
"원래 내성적이었던 성격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소탈해졌고, 특히 중학교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많이 배려해주고 도와줘 3학년때는 학생회장을 하기도 했죠"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기억의 편린을 되짚는 김주현씨의 눈가에 잔주름이 인다.
 
"자주는 못가지만 아직도 만나는 친구들이 많고, 동문회에는 가급적 꼭 참석한다"며 마음속 고향을 그리워한다. 옥천은 지용시인의 향수처럼 자신에게도 편히 기댈수 있는 보금자리라는 그는 고향과 사람에 대한 애정, 사회변화에 대한 갈망을 바쁜 일상의 틈에서 끄집어 내고 있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