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가게에서...
구멍가게에서...
오한흥의 옥천엿보기
  • 오한흥 ohhh@okinews.com
  • 승인 2001.10.20 00:00
  • 호수 59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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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퇴근길, 마을 어귀에 있는 구멍가게엘 들렀다. 남향받이에 서른 일곱가구가 옹기 종기 모여사는 작은 마을에서 이 가게의 기능은 아주 크다. 우선 다른 마을에 비해 수가 많다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나 과자에서부터 동네 노인들이 즐겨 드시는 막걸리까지 준비돼 있다.

방치하다시피하던 헛간을 마을 사람 몇이 달려들어, 며칠 뚝딱거려 만들어진 게 이 가게지만 완성되고 나서는 제격(?)이란 말이 넘쳤다. 흙벽을 헐고 문을 낸 양옆으론 지붕까지 나무를 걸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수세미를 올렸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면 도회지의 그 것처럼 번드르르한 멋은 없지만 시골서 자란 사람이면 쉽게 느낄 수 있는 아주 편한 맛이 있는, 그런 가게다.

퇴약볕 아래 밭일 하러 나오면서 지갑까지 챙길리는 만무, 외상도 척척이다. 몇 번 지켜 본 바로는 굳이 외상이라고 말하지 않고 가시는 분도 심심찮케 보인다. 그냥 가도 대충 다음에 준다는 걸로 아는 믿음이 있어서 일까? 여하튼 아주 편한 가게다.

더 편한 건 뭘 반드시 사지 않아도 된다는 점. 도회지 사람들은 이 걸 아이쇼핑이라고 하는지 모르나 어쨌거나 우리마을에도 이런 게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누구에게나 편한 공간이니 마을사람들이 자주 모이는 건 당연한 일. 여기에 나도 한동네 사람임을 확인도 시킬 겸 모처럼 눈도장을 찍기 위해 이 날도 가게문을 열고 들어섰던 것이다.

많다고 그래야 다섯을 넘는 경우가 드물지만 이 날은 좀 달랐다. 새댁들부터 할머니까지 마을 여자분들은 거의 다 모여 열 명 정도는 되는 거 같았다. 좁은 가게 안이 꽉 찼다.

모처럼 들렀다 그냥 나오기도 뭐해 잠깐 머무는 사이, 한 아주머니 뒷편으로 포장이 제법 그럴듯한 큼직한 물건이 보인다.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듣고 유행이 지났어도 한참은 지난 '옥매트'라는 거란다. 이 걸 팔러 온 상인들은 그 옥매트로 '효험을 본 사람이 많다'며 다른 제품까지 겹치기로 내놓고는 아주 신이 났다. 제법 많이 판 모양이다.

한 아주머니의 말씀을 들어보니 상황은 대충 이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25만원짜리 옥매트를 반값도 안되는 10만원에 일곱 명이 샀단다. 그런데 같은 날 먼저 다른 상인이 '12만원씩 주문을 받겠다'며 다녀간 후 이 상인 찾아와 같은 회사, 같은 제품을 '10만원에 판다'고 해서 순식간에 거래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것도 현찰 박치기로...

이상하다. 아니 수상하다. 우선 25만원짜리 물건을 절반도 안되는 가격에 판다는 것도 그렇고, 같은 날 같은 제품을 들고와 앞에 흥정도 절반이 안되는 가격인데 나중에 온 사람이 그보다 더 싼 가격에 팔고 간 것도 그렇다. 같은 제품이라면 틀림없이 만든 회사도 같을 텐데 도대체 원가가 얼마건데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는가? 이전에 25만원을 다주고 산 사람들이 이같은 사실을 알면 또 얼마나 억울하냔 말이다.

역시 수상한 냄새가 풀풀 난다. 바쁜데 미안하지만 수사기관에서도 기회에 한번쯤 관심을 가져 주시기 바란다. 의심이 가는 건 또 있다. 이 날 상인이 한 말이다. 옥매트 위에서 잠을 자면 잠이 잘 온다나? 팔 다리 쑤시고, 결리는데는 아주 그만이라나?

이 말이 사실이라면 쌀값 폭락으로 인해 숱한 밤 잠을 설치는 대부분의 우리고장 농민들에게 이 옥매트를 대대적으로 보급해보자. 잠이 보약이라는 말처럼 힘든 우리 옥천 농민들에게 밤에 잠이라도 달게 주무시게 하자는 말이다.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물론 전제는 상인의 말씀이 사실일 경우다.

그러나 이게 사실일까? 내 생각엔 웃기는 말씀이시다. 갈라진 논바닥에 스며든 가랑비처럼 겨우 모인 돈냄새를 귀신같이 맡아 온 게 외지 상인들 아니시던가. 내 이웃이 또 당했다는 생각에 설친 이 날 밤잠도 10만원짜리 옥매트위에서였더라면 더 나았을까? 글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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