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농민시위
반복되는 농민시위
오한흥의 옥천엿보기
  • 오한흥 ohhh@okinews.com
  • 승인 2001.10.13 00:00
  • 호수 59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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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금까지 해 온 농정에 대한 부실은 백번, 천번 혼나도 싸다. 성난 농민들의 고속도로 점거 시위가 바로 엊그젠데 이번엔 또 쌀 수매 정책으로 인한 농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참으로 슬프고,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피땀으로 영근 벼포기를 갈아엎는 농심은 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언어임을 알아야 한다.

이처럼 절박한 언어를 들으라는 대상엔 여야가 따로 없고, 공인된 사람들의 지위고하는 별의미가 없다. 그러나 이들은 꾸준히 정신을 못차리고 제각각 처해진 입장에 따라 편리한대로 해석하는 간교함과 심지어 강건너 불쯤으로 여기는 배포(?)까지 보여주고 있다. `이대론 못살겠다, 갈아엎자'는 농민들의 신음소리가 태평가 장단으로 잘못 전달되지 않고서는 이럴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 언로의 첫단계라고 할 수 있는 지역 언로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해 보려고 한다. 농정을 포함한 주요 정책결정이 대부분 중앙정부에서, 거의 일방적으로 이뤄지는 현실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렇다고 이런 현실적인 한계가 지역의 목소리마저 없음을 의미하는 건 아니겠기에 하는 말이다.

먼저 지역의 목소리가 있나 없나를 살펴보자. 이 건 분명하다. 지역의 목소리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지난 번 고속도로 점거시위때도 그랬고, 이번에 추곡수매 현장에서도 그랬듯이 우리지역 농민들의 분노의 함성이 그 것이다. 다만 못듣고, 못보는 사람들이 있다. 뽑아만 주면 지역주민들의 눈과 귀와 입이 되겠다던 사람들의 눈은 이미 당선 확정과 함께 침침해지기 시작했으며, 들리는 얘기도(?) 만만찮던데 가는 귀들을 잡수셨나 듣질 못하시니 입이야 더 말해 무엇하나.

무슨 쟁점이 있을 때마다 군의회같은 데서 채택하는 결의문이나 중앙부처 방문 따위가 입에 해당된다면 주민들이 진짜 아파하는 현장에서 함께 호흡하며 보고 듣는 일들이 눈과 귀에 해당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따라서 민의의 현장에 그들이 없어, 아예 듣도 보도 않는다면 얘기는 다 된 셈이다.

지난 해 11월 21일, 경부고속도로 점거 농민시위 때를 다시 돌이켜 보자. 가중되는 농가부채와 농산물 가격 폭락, 이 와중에 농협의 신용정보회사를 동원한 빚독촉에 몰린 농민들의 자살 등 곪을대로 곪은 최악의 농촌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사건이었다. 결국 이 사건은 송인범 한농연 회장이 구속되고 나중에 농민회 주교종씨와 함께 실형을 선고받는 선에서 마무리 됐다.

당시 우리의 눈과 귀와 입이라는 공복들의 처신은 어떠했는가? 시위 다음 날인 22일 새벽, 군의원이라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경남 통영에서 열린 의원 연수 참석을 위해 떠났다. 안되겠던지 나중에 민종규 부의장만 되돌아 온 걸로 기억한다. 물론 전날 시위장에서 몇 몇 의원들이 눈에 띄긴 했다. 그러나 이 날도 예의 악수 몇 번과 박카스 몇 병과 함께 눈도장이 전부였다.

이번 쌀 수매정책에 반대하는 농민시위땐 또 어떠한가? 민의의 대변자라는 사람들 대부분이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는 후문이다. 이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동네 초상집엔 뻔질나게 다니면서도 멀쩡히 키운 자식 생매장하는 심정으로 벼포기를 갈아엎는 농민 모두의 초상집은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농심이 시들어 가는 현장을 외면하고, 눈과 귀를 감고 막은 이런 입에서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는 궁금하지도 않다.

열불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언로의 현주소가 이렇다는 것이다. 기초 단계인 지역의 민의가 꺽이거나 왜곡되고는 광역, 또는 중앙정부의 제대로 된 정책을 기대한다는 건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이제 `갈아엎자'는 함성을 더 이상 구호로 그치게 하지 말자. 정말 갈아엎어 보겠다는 의지가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하나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일에 집중해보자.

그 일은 바로 우리가 신음하는 현장을 외면하거나 눈과 귀가 멀어 계속 헛소리나 해대는 그런 공복을 가려내 다가오는 내년 선거에서 반드시 낙선시킴으로써 그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없다면 자치 또한 없으며 제3, 제4의 농민시위가 이어질게 너무나 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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