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세월 오직 자식 뒷바라지
30년세월 오직 자식 뒷바라지
  • 옥천신문 webmaster@okinews.com
  • 승인 1990.02.10 11:03
  • 호수 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중되고 있는 부채문제, 농축산물 수입개방문제, 격심한 이농현상 등 날로 황폐화되어 가는 우리나라 농촌의 현실.

그러나 이 모든 어려운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30여년을 떡장사와 과수나무를 벗삼으며 오직 8남매의 뒷바라지에만 전념하며 살아온 할머니가 있다.

이원면 미동리 김순년(64)씨.

24년전 남편을 잃고 8백여평 남짓되는 과수원에서 연간 2백여만을 쥐기위해 3백65일을 분투하며 살았지만 세상은 그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아울러 시작하게 된 떡장사는 그의 삶을 더욱 힘들게 엮어 놓고 만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닥쳐온 삶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옥천 영동 이원 심천 등지를 찾아 떡그릇을 인채 20리길을 전전긍긍해야 했던 김씨는『새벽에 길을 나서면 밤이 되어서야 집에 오지만 그 다음날 떡을 준비하기 위해 쏟아지는 잠을 억누르며 떡을 빚어야 했던 그때 당시의 고통은 이루 형용할 수 없다』고 지난날을 회고한다.

길이 제대로 뚫려 있지 않아 주로 산길을 타고 걸어야 했던 김씨의 왜소하게 보이는 체구는 모든 역경을 이겨낸 강인함보다는 시골 아낙네의 투박함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제는 자식들 모두 객지로 떠나보내고 홀로 남아 과수원을 거두면서 여생을 걸어오고 있는 김씨는 장한 어머니상(옥천고 이원중)을 여러번 수상하기도 했다.

엊그제 내린 눈으로 소복하게 덮여있어 아담하게만 느껴지는 집 한채. 이것이 타인들에게는 낭만적으로 보일지도 모를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 지난날 김씨의 고통을 말끔하게 씻어줄 순 없으리라.

산업화의 진전에 따라 살기가 분명 나아진 것임엔 틀림이 없지만 말로만 외쳐대는 복지 사회건설의 여파가 농촌구석까지 미치기에는 아직도 지금까지 버터온 세월이 짧기만 한 것일까.

갈수록 심화되어 가고있는 도·농간의 소득격차는 이것을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모든것이 돈있고 힘있는 자들의 손에의해 합리화되고 정당화되어 가는 이 모순된 사회구조속에서도 모든것에 순응하며 남들이 모두 외면하고 마는 흙을 지키고자 한단다.

자식들이 손자들이나 돌보면서 편하게 쉬시라는 권유도 마다한 채 농촌이 좋다는 이유하나만으로 끝까지 뿌리쳐 온 김씨는『아직 나혼자로도 얼미든지 살아 나갈 수 있는데 무엇때문에 자식들에게까지 폐를 끼치냐』며 도시공해로 찌들은 도시보다 농촌의 맑은 공기 들이키면서 혼자사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고 말한다.

입춘이 지난탓인지 봄기운이 보이는 듯 하다. 온세상이 푸르름으로 변할 즈음이면 움터오는 과수나무의 순과 함께 김순년 할머니의 하루는 더욱 바쁘게 움직일 것이다.

따스한 봄기운에 힘입어 지금까지 구겨졌던 농촌의 아픔이 하루빨리 치유되기를 기원하면서 돌아서는 발길에는 여전히 하얀눈이 채이고 있었다.

김순년(64·이원면 미동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