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혼수와 과소비
여성 혼수와 과소비
  • 옥천신문 webmaster@okinews.com
  • 승인 1990.02.10 11:03
  • 호수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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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앞둔 딸의 어머니는 두가지 마음으로 딸의 결혼을 생각한다.

평생 애써 모은 돈이 일반적으로 이야기 되는 혼수를 해 보내기에 부족하여 착잡한 마음이 그 하나다.『내 딸이 혼수 적게해 왔다고 구박받지는 않을까, 기를 펴지 못하고 사는 것이 아닌가,고추장보다 매운것이 시집살이라는데 내딸이 잘 살 수 있을까.』하는 생각으로 어떻게 돈을 굴려 하나라도 더 장만해 보낼 것인가 하는 심정인 것이다. 또 하나는 가슴 뿌듯한 기쁨이다.

열달 배불러 산고끝에 낳은 나의 아이가 어느덧 자라서 한 남성과 결혼하게 되었다는 대견함으로 기쁘고,또 한편으로는 참으로 오랫만에 「나의 일」이 주어졌다는 즐거움이다. 대부분이 전업주부인 여성들의 경우 스스로 무언가를 계획하고 준비하고 진행하고 그 성과를 누리는 경우가 거의없다. 그런 가운데 딸의 혼사준비,주로 혼수를 장만하는 것은「어머니」의 일로 자신의 것으로 오랫만에 맡겨지게 되는 것이다.

이두가지 상반된 생각이 엇갈리면서「어머니」는 무척 기쁘게,또는 한숨도 쉬어가며 장롱이랑 이불, 예물, 그리고 시댁식구들의 예단, 그릇, 전자제품 등등을 이 시장 저 시장 다니면서 값을 깎기도 하고 망설이기도 하면서 장만하는데 열심이다.

얼마전「사」자의 대명사인 한 의사남편이 지참금 불만으로 장모와 아내를 때려 8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또한 법률사무소 직원은 아내가 유산될 정도로 폭행을 일삼아 고발당해 구속되었다.

어떤 신부는 결혼한지 한 달도 안되어 남편의 시달림에 목매 자살했고,어떤 신부는 쫓겨나고 또 어떤 신부는『이게 혼수냐』며 시어머니가 예단 옷감을 가위로 잘라버린 수모를 겪기도 한다.

얼마전까지만 해도「과잉 혼수」의 문제는 일부 특권층,부유층의 문제로 제기되곤 했었다. 흔히 이야기되듯이「사」자 돌림 사위를 볼려면 적어도 열쇠를(아파트 사무실 자동차…) 한꾸러미쯤 준비를 해야한다는 이야기가 이제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되었으며 이 문제로 아내구타는 물론, 여성이 괴로움에 자살을 결심하기도 하는 현실이 되어 버렸다.

한 사회의 문화, 풍토는 가진사람의 생활모습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있는 사람은 있어서 허세를 부리며 돈으로 치장해 딸을 시집 보내고 없는 사람은 없는대로 그에 밑바닥이라도 맞추기 위해 빚이라도 감수하며 딸을 시집보낸다. 매매혼의 현대판이다.

이러한 과다한 혼수는 문화로 굳어져 가는 과소비의 병폐이기도 하지만 그 조서에는 여성의 일이 사회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모순이 깊게 깔려있다. 앞에서 어머니의 심정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지만 집안 기둥뿌리가 흔들리는 어려움에도 혼수를 계획하고 장만하는 일이「여성의 즐거운 일」이 되어 혼수에서 과소비를 부추기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어떤이는 사회적 병폐로 번져간 혼수문제를 바라보며 이렇게 이야기 한다.

『여성은 노예보다 못한 존재이다. 노예는 몸하나 팔려 가지만 여성은 몸하나 뿐아니라 그에 더하여 엄청난 혼수가 함께 따라가며 그 양에 따라 여성의 가치가 판단된다.』

진정 혼수는 낳아서 소중하게 기른 정성으로 새롭게 공동의 생활을 시작하는 딸과 아들,부부가 궂은 일,좋은 일 함께 나누며 오손도손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음이다. 이 마음은 결코 물질의 많고 적음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딸이건, 아들이건 어른으로서 스스로의 삶을 노력해서 만들어갈 의지를 심어주는 것. 그 최소한의 준비를 혼수로서 딸에게, 아들에게 배려하는 것이다.

어머니들이여, 훌륭한 혼수는 비단금침과 아파트가 아니라 딸이 인격적 대우를 받고 자기삶을 살 수 있는 의지를 심어주는 것임을 잊지 말자.【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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