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리 안터1호 선돌을 찾아
석탄리 안터1호 선돌을 찾아
  • 옥천신문 webmaster@okinews.com
  • 승인 1990.02.03 11:03
  • 호수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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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돌은 거석기념물의 하나인 신석기시대 유물로서 큰 돌을 수직으로 세워 숭배대상, 묘의 수호 및 비석, 부락을 수호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돌」「선바위」「입석」등으로 불리워지고 있는 이 돌은 서부유럽에 많이 분포 되어 있으나 우리나라를 포함, 동양에서는 몽고에서부터 대만, 인도네시아, 말레이지아 등지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는데 이들 중 몽고를 제외하고는 거의 고인돌의 분포와 일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았다.

수북리에서 lkm 쯤 걷다 대청호를 건너면 얼어붙은 대청호 만큼이나 이농현상에 찌들은 탓인지 불과 몇 가구 되지않는 마을앞에 조촐하게 남아있는 주민들의 액을 물리치고 풍년을 기원 하고자 마을 입구에 우뚝 세워져 있는 선돌을 발견할 수가 있다.

동이면 석탄리 안터 1호 선돌이 바로 그것이다.

안터 1호 고인돌과 함께 석탄리 마을을 대표하고 있는 안터 1호 선돌은 현재는 비록 언땅위에 쓸쓸하게 서 있을지라도 예로부터 이마 을을 위해 신앙의 대상으로 존재해 와서인지 주민들과 무척 친숙해져 있다.

1977년 12월 고인돌 발 굴조사와 함께 조사된 이 선돌은 방위 220°남서 방향 으로 서 있고, 석탄리 고인돌과는 북 226°33 방향으로 210m 떨어져 있어 사실 이 선돌의 방향과 일직선상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규모는 높이 220cm 폭 90cm 두께 45cm 로 여성형 선돌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선돌은 가운데 둥글 게 원이 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인데 원의 중앙에 약간의 홈이 파여 있어 이곳을 중심으로 하여 원을 만들었 을 것으로 추정되어자며 또 한 선돌의 폭과 일치하는지름 90cm를 갖고있어 이 원을 선돌에다 의식적으로 맞춘 것임을 알 수 있어 선사시대에도 수에 대한 개념을 알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유물로 지적되고 있다.

또한 이 원이 그려져 는 배부분의 90cm는 윗부분 인 얼굴 45cm의 두배로 여성이 임신한 것을 나타내고 있다고 하며 얼굴의 길이는 전체 길이의 8분의 1이 되 어 팔등신으로서의 값과 인 체 구조의 특징을 확실하게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석탄의 안터 1호 선돌은 대청댐 수물로 인하여 1980년 2월 마을 앞으로 이전한 것인데 처음 축조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고인돌과 같은 시기에 축조된 족, 신석기 후기인 기원전 3천년전으로 추정되어진다.

이렇게 오랜 세월을 거듭 하는 동안 숭배의 대상이었 던 이선돌의 일부는 몰지 각한 주민들에 의해 많이 파괴되어 그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지만 지금까지 의연하게 버티면서 비록 몇가구 남지 않은 석탄리 마을의 재앙을 물리치기 위한 몸짓 로 말없이 서 있는 선돌 위에는 노랗게 펼쳐지는 햇살이 드리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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