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농업 활성화 길 터
관광농업 활성화 길 터
동이면을 찾아서
  • 옥천신문 webmaster@okinews.com
  • 승인 1989.10.21 11:03
  • 호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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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속에서 길게 드리워진 길따라,다소곳이 모두어진 동이면. 알알이 맺힌 포도송이 만큼이나 탐스럽게 살아온 1천3백89가구 5천6백96명 주민들은 문명의 이기속에 휩쓸리지 않고 농공단지의 기계소리 만큼이나 오늘도 끊임없이 추진력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편집자 註】



동이면은 1739년 영조 35년 군동면과 이남면의 일부로써 군동면은 수북리를 비롯하여 9개리 375호에서 남여정(15세이상 된 사람) 1천5백27명이 살았고 이남면에는 평산리, 하리,상리 등 3개리 2백63호에서 남여정 1천2백30명이 살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10년 한일합방과 더불어 군동면을 동면이라 칭하고 이남면을 일소면과 이소면으로 나눌 때 이소면의 일부에 속해 있었다.

1914년 4월1일 금암,조령,청마,지양,남곡리지역 일대의 동면과 평산, 세산, 적하리 일대의 원이면 또는 이소면을 합병하여 동면의 「동」자와 이소면의 「이」자를 따서 동이면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동이면은 옥천군 동남편 약 6km에 위치하여 60.3방km 면적(군의 11.3%)을 차지하고 있으며 행정구역 21개리 74개반,법정리·동 10리에 42개 자연부락 단위로 되어 있다.

현재 도로 포장율 70% 주택보급율 99%에 이르고 있는데 동이면 둘레로 동은 청성면, 남은 이원면, 서는 옥천읍, 북은 안남면에 접해 있으며 중산간지역으로서 경지가 협소하며 금강상류가 이원면에서 본면 남동북을 우회 안남면으로 흐르며 남부 세산리엔 국도가 이원면으로 관통하고 있고 경부고속도로가 본면 중심부를 관통하고 있다.

이 지역의 관광명소로 이름이 나있는 금강유원지는 1970년 준공,개통된 경부고속도로의 옥천과 영동 인터체인지 사이에 있는 유일한 휴계소로서 이곳은 험준한 산과 청류의 계곡으로 여름 행락철에는 1일평균 4백67명 금강유원지 경유인파 1일 평균 3만여명이 찾고 있는 곳으로 금강 유원지 종합 관광 위락지로 관광개발이 기대되는 면으로 되어 있다.

또한 금강상류에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4,5cm크기의 분홍색, 검은색, 흰색 줄무늬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어름치는 천연기념물 제 238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한강에만 서식하는 것으로 알았던 이 어름치가 금강에서도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은 두강이 과거에 연결되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입증해 주는 것으로 큰 뜻이 담겨 있다.

동이면은 타면에 비해 유적 유물들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는데 특히 골마다 세워져 있는 효자문은 오직 계산과 갑각만이, 남아서 자기만의 안일한 즐거움을 추구하려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옷깃을 여미게 하는 교훈을 안겨주고 있다.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에 걸쳐 이루어진 거석 기념물로 탱석이라 불리워지고 있는 고인돌은 그 형태로써 북방식(탁상식)과 남방식(바둑판식)이 있는데 충북 유형 문화재 제 10호로 1975년 8월 10일 지정된 석탄리 1호 고인돌, 석탄리 2호 고인돌은 북방식 계통이며, 묘포 형태를 갖추고 있는 적하리 고인돌 등이 있다.

동이면에는 석탄리 안터부락에 화강암으로 된 여성형 선돌이 있는데 방위220° 남서 방향으로 서있고 석탄리 고인돌과는 북226°33방향으로 2백10m 떨어져 있어 사실상 고인돌의 방향과 일직선상에 놓여져 있어 연관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밖에 금암리 신촌마을에 충북기념물 제29호로 78년 12월11일 지정된 '양신정이라는 서당이 있는데 1545년 인종 원년 전엽의 부송정 전램령이 밀양부사를 그만두고 고향에와 있을 때 본인이 독서도 하고 글을 가르칠 수 있도록 금강가에 있는 목담 호숫가에 세운 것으로 1597년 선조 30년 병화로 소실되었다가 1828년 순조 28년에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민속자료로는 충북 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되어 있는 청마리 탑신제당이 있는데 탑신제라 하여 부락을 지키고 평안을 빌며 질병과 악귀를 쫓아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고유한 민속신앙인 마을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동이면의 특산물로는 포도를 들 수 있으며 세산리 포도는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1980년에는 전농가 93%인 1백26농가가 39.2ha를 재배하여 연간수익이 1억5천여만원에 달하였고,81년에 28농가가 7.2ha의 면적에 피복재배를 하여 노지재배보다 1개월 앞당겨 출하케 되어 약3배 이상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또한 1980년대 행정당국이 농촌지역의 유휴 노동력 고용 및 농외 소득증대를 도모한다는 취지하에 추진하고 있는 농공단지 조성사업에 힘입어 군내에서는 처음으로 공장부지 4만1천4백23평에 21개업체가 '88년도 입주신청을 하여 현재 17개업체가 가동중이고 11월초에 2개업체가 더 가동되고, 내년에 2개업체가 입주하면 완전가동에 들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외국 농산물 수입개방 등 열악한 농촌생활 환경으로 인한 이농현상으로 인력난에 어려움이 따르고 있지만 강영식면장 이하 20여명의 공무원들과 1천3백89가구, 5천6백96명 전주민이 오늘도 끊일 줄 모르는 농공단지 기계소리와 함께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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