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의 뿌리 "옥천향교"
유림의 뿌리 "옥천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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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89.10.21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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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읍에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구읍에서 내려 약 5분만 걸으면 옥천향교가 나온다. 현재 위치는 옥천읍 교동리 320번지, 조선초기인 1398년(태조7년)에 창간 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재건되었고 지난 81년에 지방 유형문화재 제 97호로 지정되었다.

향교는 옛날로 말하면 지방학교로서 주로 양반의 자제들이 이곳에서 공부하였다. 처음 시작한 때는 고려 시대로서 공자를 제사하는 문선왕묘를 중심으로 하여 강당의 역할을 했던 명륜당이 설치되어 있으며 교사를 가리켜 조교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각 부·목·군·현에 각각 1개교씩을 설립하게 되었고 유생의 수는 부·목에 90명, 현에 30명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옥천향교는 목조 기와건물로 명륜당과 뒤에 대성전이 있으며 이를 중심으로 동·서문이 갖추어져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당대의 문장가였던 남수문(1408~1443)의 기분이 실려 있는데 그 기문에는「-백성의 장관된 이의 도는 오직 정치와 교육이니 교육이 정치의 근본이라면 학교는 참으로 교육을 베푸는 수단이다. 그것이 백성을 다스리는 도에 관계됨이 크다고 하겠다(중략)」라고 적혀 있어 교육의 중요성을 논했으며 계속되는 기문을 통해 누각을 지은 사실을 기록함으로서 이 시대에 한차례 향교를 중수한 사실이 나타나고 있다.

한편 이곳에 봉안하고 있는 성현은 공자,안자,증자,자사,맹자 등의 5성과 안회를 비롯한 공자의 열제자인 10철 주돈이,정이,주희 등 송나라대의 6현, 그리고 신라시대의 설총,최치원을 비롯, 고려조의 안향, 조선조의 이언적, 조광조,이이, 이황, 조헌,송시열 등 우리나라의 18현에 이르며 매년 2월과 8월 상점일(그달 맨 먼저 일진에「丁」자가 들어가는 날)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현재 소유는 향교재단으로 되어 있으며 향교 옆에 관리사택을 두어 김대용씨(60)가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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