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송아지와 양담배
얼룩송아지와 양담배
먼저 스스로 부끄러워야 한다
  • 옥천신문 webmaster@okinews.com
  • 승인 1989.10.21 11:03
  • 호수 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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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얘기 한가지. 부끄러움에도 종류가 있어서, 어린날 사랑을 시작할 때의 수줍음이나 볼이 발갛게 달아오르는 것과 같은 부끄러움도 있지만 이것은 그런 것과는 영 거리가 먼「낯 뜨거움」이고 치부다.

다름아니라 우리가 참으로 오랜동안「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를 불러 왔고 사랑해 왔는데 그 동요의 주연이 왜 누렁이가 아닌 얼룩이일까 하는 의심 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소는 틀림없이 본래가 누렁이이고 지금은 얼룩이가 많이 들어와 자손을 번창하면서 우리들 건강에 일조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이 땅엔 여전히 누렁이가 대부분인데도 말이다.

그것을 어느날 갑자기(적어도 필자의 경우에는) 가수 정태춘씨가 깨닫게 해줬는데 아닌 말로 쥐구멍이라도 찾을 일이었다. 우리가 누렁인 줄은 까맣게 잊고 얼룩이만 열심히 찬양해 댔으니….

식자깨나 들고 생각 좀 한다는 사람들도 잘난척하다가 느닷없이 뒷통수 한 대 얻어맞은 꼴이었을 게다.

부끄러운 얘기 하나 더.

지난해 여름이었는데,우리 군내 모 면단위농협의 한 고급간부께서 버스주차장에 붙은 담배가게-그 당시의 면에서는 양담배를 판매하는 곳이 거기뿐이었다-에서 약간의 눈치를 살피면서, 점잖을 가장하고 원스턴으로 기억되는 양담배를 사는 걸 목격한 적이 있다.

그때는 전국적으로 양담배 불매운동과 외국산 농축산물 수입 반대 운동이 한창이던 때였고, 그분은 바로 며칠 전 그런 일로 시위를 벌였던 영농후계자들과 막걸리잔을 돌리면서 환담을 나누기까지 했었다.

그분이 요즘에도 양담배를 즐기시는지 어떤지는 굳이 알려들 것도 없고 알 수도 없지만,문제는 그분이 농민의 이익을 보호하고 대변한다는 지역 단위농협의 책임있는 자리에 앉아 계신 분이고 무엇보다 그것이 더 이상 개인의 기호문제일 수 만은 없다는 점이다. 이 점을 강조하는데 구태여 지난 해의 쓰라렸던 고추파동과, 격렬했던 몸짓들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을까.

그러므로 욕해도 좋다. 손가락질할 수 있는 이유도 충분하다. 그러나 그러는 우리들 자신은 과연 어떤가. 수입개방을 강요하는 미국을 미워하고, 거기에 늘 쉽게 무릎꿇고 마는 정부를 비판하고,그 틈에 돈 벌이하자고 덤벼대는 수입 업자들에게 똥바가지를 뒤집어씌워야 한다고 핏대를 올리면서 우리들 또한 『이 정도야 뭘』하는 심정으로 자신들의 몰락에 한몫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다가 아니다. 우리들 대부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농촌에서 양담배 소비율이 벌써 3%를 넘어섰다는 사실이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촌무지랭이」다.

우리도 이제는 알만큼 안다, 더 이상 만만하게 보지 말라,라고 말해선 안된다. 정직하게 말해서 우리가 아는 것은 쥐꼬리만큼도 안되며 우리의 행동력은 미미하기 그지없고「함께 살」줄을 모른다. 다만 한가지 아는 것이라면 우리 농촌이 죽어가고 있고 농협도 우리 지역의 국회의원도 결코 우리편이 아니라는 사실뿐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가 형편없이 짓뭉개지는데는 실은 우리의 한 몫도 있다는 사실은 아무리 부끄러워 해도 모자랄 일이다. 남을,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무엇을 탓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 부끄러워 해야할 일이다. 그것이 「함께 사는 것」의 도덕성을 회복하는 첫 일일 터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야 비로소 우리의 절실한 몸짓도 그 댓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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