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쌤의 놀이이야기>탈춤, 강해지고 싶은 인간의 욕망
<아자쌤의 놀이이야기>탈춤, 강해지고 싶은 인간의 욕망
  • 옥천신문 webmaster@okinews.com
  • 승인 2014.11.07 11:43
  • 호수 126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가면을 쓴다.

역사적으로 가면을 쓰지 않았던 이를 꼽는다면 예수와 싯다르타 정도 아니었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천하를 제패한 알렉산더 대왕의 부러움을 샀던 거리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여기에 보탠다.

칼 융에 따르면 가면은 '개인의 진정한 자아가 아니라 남에게 보이기 위해 자신을 은폐시키는 행위' 혹은 '사회상황과 사회관습의 요구에 대한 반응으로 표현되는 행위'를 일컫는다.

현재 탈춤의 유래는 부여의 영고나, 고구려의 동맹과 같은 국중대회로 추정된다. 이는 백성들의 집단적인 그림자(Collective Shadow) 드러내기와 함께 신에 대한 공연적 제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록에 의한 것이고 문자 이전 사람들의 사냥과 부족 간의 분쟁, 축제와 토템과 애니미즘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탈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약함 혹은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욕망 혹은 그림자를 표출 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식의 놀이였을 것이며 집단무의식 발현의 도구였을 것이다. 가면은 인간의 그림자(Shadow)를 가리기 위해 존재한다. 그 대표적인 일화가 탈춤의 유래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신라 황창랑(黃倡郞)의 고사(古史) 일 것이다.

황창랑은 16세 때 백제 거리에서 칼춤을 추었는데 그 훌륭한 재주가 궁중으로 들어가 백제왕 앞에 나아가 춤을 추었다고 한다. 황랑창은 이 기회를 통해 왕도 죽이고 자신도 죽임을 당했는데 신라 사람들은 그 얼굴을 본뜬 탈을 만들어 쓰고 칼춤을 추었다. 전쟁에 나갈 때에도 이 탈은 아군에게는 용기를 주고 적군에게는 두려움을 주었을 것이다.

신라 초기 유적에는 거북과 닭의 탈을 쓴 탈꾼들이 발견된다. 또한 6세기 신라 장수 이사부(異斯夫)는 우산국에 사자 형상을 한 허수아비를 싣고 가 섬사람들을 복속하였으며, 우륵의 12곡 중에는 사자놀이(獅子伎)가 있었다고 한다. 4세기 중엽 황해도 안악군에 축조된 안악3호기에서 발견된 고구려 무용도에서도 탈춤은 발견된다.

일본 탈춤은 우리민족에게서 전수받은 것이다. 612년 백제사람 미마지(味摩之)가 일본으로 건너가 탈춤을 전해 주었으며 이는 후에 기악(伎樂)으로 발전하였으며 현재 그때 섰던 탈이 법륭사(法隆寺)에 보관되어 있다.

신라시대 크게 유행하였던 원효스님의 무애가(無碍歌)와 무애무(無碍舞), 처용무(處容舞)는 귀족들과 승려들이 흡수하기 시작하였으며 고려의 산대잡극(山臺雜劇)으로 발전해 귀족들의 팔관회(八關會)와 연등회(燃燈會)에서 주로 공연되었다. 조선시대 들어 와서 처용무는 궁중의 정악(正樂)이 되었으며 산대극은 외교사절이 왔을 때 공연되었다.

탈춤은 크게 3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농어촌공동체의 토속적 탈놀이, 둘째 유랑연희집단의 유희와 풍자적 탈놀이, 마지막으로 궁중연희나 국가적 제의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탈놀이는 몇 가지 공통적인 흐름을 가진다. 우선 액막이를 위한 의식무로서 특징이 두드러진다. 두 번째로는 파계승에 대한 모욕과 양반사회에 대한 풍자, 셋째 처첩갈등이나 불륜 같은 가정사에 대한 내용, 넷째 간사함을 내쫓고 상서로움을 끌어들이는 축사연상(逐邪延祥)의 축원이나 사자무, 백성들의 궁핍함 등에 대한 내용이다.

탈춤은 춤과 재담, 탈이 어우러진 가무극이다. 탈춤의 춤은 이를 보는 사람들의 생체리듬을 흩트려 놓는 율동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재담 또한 감정의 격랑을 이끌어내는 운율이 있는 연기가 펼쳐진다. 탈은 그 시대를 특징짓는 전형적 계층에 대한 과장된 묘사가 특징적이다.

탈춤은 옴니버스 형식의 마당들로 구성되어 있으나 관객들의 동요를 이끌어 내기 위한 즉흥적 행위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관객과 놀이꾼이 함께 무대를 만들어 가는 것이 특징이며 조선 영조 때 형태가 현재까지 존속해 오고 있다. 또한 현재는 다양한 마당놀이의 형식으로 발전했다.

가면을 쓰고 이뤄지는 탈춤의 연희는 역으로 우리에게 가면을 벗으라고 이야기 한다. 보이지 않는 가면을 쓰고 허례와 허식으로 사는 우리에게 맨얼굴 뒤에 숨겨진 본얼굴이 탈춤의 탈임을 깨우치고 있는 것이다. 바로 나(我)가 중심으로 살고자 하는 몸부림이겠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