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역 태봉성 역장
옥천역 태봉성 역장
함께사는 세상 [37]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1.06.02 00:00
  • 호수 57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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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장으로 고향 찾은 태봉성 옥천역장.

***긴 방학을 보내고 학교에 돌아가면 아이들은 모여 앉아 방학동안 경험한 신나는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중 빠지지 않는 자랑이 `기차를 타보았다'는 것이었다.

위험하긴 했지만 철로 주변에서 자갈과 레일을 장난감 삼아 놀다가 멀리서 기차소리가 들려오면 얼른 자리를 피해 어딘지 모를 곳으로 한없이 달려가는 기차를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보곤 했던 기억도 있다. 유년의 추억을 더듬어보면 누구나 가슴 설레이던 `기차'에 대한 환상과 흥미로운 놀이터로서의 `기차역'에 대한 기억의 끈을 붙잡을 수 있을 것이다.***

'옥천역'이 지금의 자리에 위치한 것은 지난 1905년이다. 조금 있으면 100주년이다. 결코 짧지 않은 역사로 옥천을 교통의 요충지로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불에 타 소실된 후 1956년 복구 준공된 역사(驛舍)가 지난 99년 12월23일 지금의 현대식 건물로 신축됐다.

옥천역은 서울기점 경부선 184.3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하루 옥천역을 통과하는 열차의 횟수는 화물열차 72회를 포함해 여객열차 130회 등 모두 202회다. 이중 옥천에 정차하는 여객 열차는 무궁화호 18회, 통일호 4회 등 모두 22회. 또 주말이면 늘어나는 철도 여행객들을 위해 임시 열차가 16회 증가 운행된다.

이용객 수도 평일 평균 1천여명에 달하고 명절이나 휴일이면 1천200여명 정도 된다는 것이 역 관계자의 설명이다. 특히 아침과 저녁 하루에 4차례씩 대전과 김천, 동대구와 천안 등을 운행하는 짧은 `동차'는 옥천 주민에게 더욱 친숙하다.

`동차'는 이원역과 지탄역 등 모든 역에 정차해 역 주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쉽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출·퇴근이나 통학을 하는 직장인과 학생들과 대전으로 장을 보러가거나 힘들게 지은 농산물을 내다 팔러 가는 주민들에게는 더없이 편한 교통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아담하고 깔끔한 공간 이용객 칭찬 자자
이렇게 100여 년의 역사를 옥천과 함께 하고 있는 옥천역. 새롭게 단장된 옥천역은 이용객들에게 뿐만 아니라 철도청에서도 소문난 `예쁘고 편안한 역'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런 평판 때문에 지금도 심심찮게 역을 둘러보기 위해 철도청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옥천역을 방문한다. 옥천역 광장을 들어서면 80년은 족히 넘은 것으로 추정되는 큰 플라타너스 나무 한 그루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사람들의 쉼터로 가꾸어져 있다. 또 대합실로 들어서는 길에는 화분에 심겨져 잘 관리되고 있는 예쁜 꽃들을 볼 수 있다.

깨끗한 화장실에는 정지용 생가와 시비 등의 사진을 담은 작고 예쁜 액자가 걸려 있고 대합실에도 정지용 시인의 시를 옮긴 김성장(옥천상고 교사)씨의 걸개 글씨가 늘어져 있어 향수의 고장 옥천을 표현하고 있다. 개표구를 나서면 안내토기에서 기증한 전통 항아리들과 화초가 철길과 잘 어우러지며 지나는 승객들의 눈길을 붙잡는다. 화장실과 승강장, 역광장까지 근무자들의 세심한 손길이 느껴지는 옥천역의 변화 한 가운데는 옥천이 고향인 태동성 역장이 있었다.

『어린 중학생 시절에 무임승차(속칭 빠방)를 하려면 역무원 아저씨들이 그렇게 무섭게만 보여 몰래 나무 밑과 화물하치장의 무연탄 더미 뒤에 숨어 있다가 열차가 들어오면 걸음아 나 살려라 쏜살같이 철길을 넘어 기차에 타고 또 열차 안에서는 차장아저씨들 만날까봐 가슴 조이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정든 고향역이다.』 -한국철도 2000. 4월호-

승객들의 편안하고 쾌적한 쉼터 대합실.
승객들의 편안하고 쾌적한 쉼터 대합실.

 


▶개구장이 어린시절 무임승차 기억
태동성(53)역장의 고향은 군북면 이백리다. 위 글은 태 역장이 고향으로 발령 받은 후 철도청 기관지인 `한국철도'에 기고한 글의 서두다. 어릴 적 역무원들의 눈길을 피해가며 몰래 기차에 올라타곤 했던 자신이 이제는 역장이 되어 다시 고향역으로 돌아온 것이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는 태 역장.

태 역장이 철도와 인연을 맺은 것은 철도학교에 입학을 하면서다. 당시 27살이었던 태 역장은 군대를 제대한 후 철도청에서 근무하는 동네 아저씨의 권유로 74년, 철도학교에 입학을 하게된다. 학교를 졸업하고 김천, 대전, 충주 등 외지에서 근무를 한 후 지방청 사령실에서 근무를 하다가 지난 99년 10월1일자로 고향인 옥천에 부임을 하게 됐다.

"벌써 30년이 다 되어가고 있지만 철도와 인연을 맺은 것이 후회는 없어요. 오히려 즐거운 일들이 더 많았죠."

▶정지용 알리기 정성 모아...
지난 5월8일 어버이날을 맞아 대합실 테이블 위에는 조촐한 다과상 준비되었다. 낮 시간에 주로 옥천역을 찾는 지역 어른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태 역장과 옥천역 근무자들이 준비한 작은 정성이었다. 이런 옥천역 식구들의 배려에 자녀들이 모두 객지에 나가 변변한 카네이션 한 송이도 받지 못한 노인들의 기뻐하는 모습은 큰 보람으로 다가왔다.

"전근이 많아 고향에서 역장으로 근무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운이 좋은 것 같아요. 그만큼 근무하는 동안은 고향 주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열심히 해야죠."

한참 신축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옥천역에 부임한 태 역장은 어수선한 역을 정비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여기 저기 놓여 있는 화초들도 태 역장이 집에서 직접 가져다 놓은 것들이다.

"집에서 제가 취미로 키우던 화초를 주민들하고 함께 보려고 가져다 놓았어요. 시간이 지나면 다른 것들로 바꿔 놓기도 하구요. 이제는 아내(박애순·52)가 알아서 좋은 것들을 챙겨주고 그래요(웃음)"

이런 외형적인 부분들뿐만 아니라 주민들에 대한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도 태 역장은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역무원들 중에 옥천이 고향인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 부분의 공감대가 쉽게 형성될 수 있었다고 태 역장은 얘기한다. 옥천역에서 장애인을 업고 승강장까지 데려다 주는 역무원의 모습도 이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도 이런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작년에 보니까 여름에 주변 아주머니들이 약속 장소를 옥천역 대합실로 정하더라구요. 분위기가 커피숍처럼 좋기도 하고 시원하다면서요... 그럴 때 제가 하고 있는 일들에 보람을 많이 느끼죠."

태 역장이 고향역에서 신경을 쓰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정지용' 알리기다. 화장실의 작은 액자와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정지용의 명시와 안내 게시판까지. 옥천을 소개할 수 있는 대표적인 인물이 정지용 시인이라는 생각에 여기저기 부탁해 자료를 모으고 옥천의 관문인 옥천역에서부터 그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요즘에는 군과 문화원의 제안으로 옥천역 광장에 정지용 시비를 건립하기 위한 고민을 진행하고 있다. 100년이 다 되어 가는 오랜 세월 동안 옥천의 역사와 함께 해 온 옥천역은 지금 기분좋은 변화를 겪고 있다.

1956년 복구 준공된 옛 옥천역의 모습
1956년 복구 준공된 옛 옥천역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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