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예산이 부족한 진짜 이유
<편집국에서>예산이 부족한 진짜 이유
지난해 예산 결산 결과
순세계 잉여금 포함 991억원 남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이 문제
  • 정창영 기자 young@okinews.com
  • 승인 2014.10.10 12:45
  • 호수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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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되면 '복지부동(伏地不動)'이란 말로도 부족할 듯 싶다. '직무유기(職務遺棄)'란 말이 좀더 본질에 가까울 것 같은데 뭔가 아쉽다. 좀 과장되게 말하자면 '업무상 과실(業務上過失)' 또는 '업무상 배임(業務上背任)'으로 보이기도 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지난 한해 옥천군의 가계부를 들여다본 소감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옥천군의 세입과 세출을 정리한 2013 회계연도 세입세출 결산서를 보면 기가 차다. 집행률이 '0%'이거나 '절반'에 못 미치는 사업들이 100건이 넘는다. 다 쓰지도 못할 예산을 부풀렸거나 매년 올리던 예산을 제대로 검토 한번 안해보고 그대로 답습한 꼴이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다.

만약, 예산 편성은 적재적소에 잘 됐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있다. 편성만 해놓고 제때 쓰질 않았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엎어치나 메치나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이요 직무유기요 업무상 과실이요 배임이다. 복지부동이나 직무유기는 그렇다쳐도 업무상 과실이나 배임은 너무 한 것 아니냐고 항변할 수 있겠다.

하지만 한해 991억원의 돈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다음해로 넘기거나 국도비로 반환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옥천군은 정부의 주문대로 '조기집행'이다 '균형재정'이다 하면서 요 몇 년새 돈을 빨리 쓰지 못해 안달이었다. 부서마다 예산 조기집행율을 가지고 경쟁을 붙이면서 돈을 빨리 쓰라고 재촉했다. 그로인한 부작용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 결과가 991억원의 뭉칫돈으로 남았다면 생쇼를 한 것이거나 정말 돈을 제대로 쓸줄 모르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주민들의 많은 요구와 민원들 앞에서 공무원들은 뻑하면 예산 부족 타령을 하는데, 옥천군 가계부를 보니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는 꼴이다. 주머니에 991억원이나 되는 돈이 남았는데 대체 무슨 예산이 부족하다는 건가. 어제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매년 똑같은 예산을 주먹구구식으로 반복 편성하는 것이 '복지부동'이요, 있는 돈도 쓰지 않으면서 예산 부족을 이유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직무유기'다. 저 많은 돈이 제때 쓰였다면, 다른 사업과 정책과 미래를 위해 투자됐다면 우리고장의 살림살이가 조금은 더 나아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기대가 '업무상 배임이요 횡령'의 이유다.

옥천군 공무원을 상대해본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옥천군 공무원들은 정말 일을 안 한다.' 특히, 민원이 있어 찾아가는 지역 주민이나 기업 관계자들이 이런 말을 많이 한다. 다른 지역에서 살다 들어온 사람들도 이런 얘기를 자주한다. '옥천군 공무원들은 정말 일을 안 한다.'

최근에만 해도 이원면 장화리의 우라늄 검출 파동이나 군수 공약사업으로 제시됐던 소규모 농가 가공시설 지원 같은 것들을 꼽을 수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이미 하고 있는 사업을 유독 옥천군만 예산이 부족하고 관련 근거가 없어 추진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들이다. 공무원들이 흔히 써먹는 수법인 예산이 없고 선례가 없고 근거가 없어서 못한다는 사업들이지만 경기도 안성시나 평택시 등에서는 이미 하고 있는 사업들이다. (옥천신문 8월8일자 '우라늄 검출된 안성, 행정대처 적극적' / 9월19일자 '남들은 잘만 하는 소규모 농가 가공지원' 기사 참조).

이런 예는 무수히 찾아볼 수 있다. 가장 안타까운 것 하나만 꼽자면 10여년 전부터 지역 농가들 사이에서 얘기돼온 로컬푸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로컬푸드 선진지는 전라북도 완주군이다. 얼마 전에는 옥천군의회도 견학을 다녀온 곳인데, 워낙 유명하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다 보니 이제 견학을 하고 싶으면 돈을 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로컬푸드를 그 누구보다 먼저 지역 농정의 핵심으로 제시한 것은 완주가 아니라 바로 이곳 옥천이었다. 옥천군이 지지부진하던 사이 경쟁자였던 완주군은 로컬푸드의 대명사가 되었다.

반면, 욕을 먹더라도 공무원들이 하고 싶은 일은 곧죽어도 한다. 그렇게 욕을 먹고도 고쳐지지 않는 해외연수가 대표적이다. 공무원들만 가면 욕을 많이 먹으니 언제부터인가 각종 사회단체들도 슬며시 끼워주면서 물타기를 하고 있다. 최근 삭감된 2014년도 제2차 추경에서는 민주평통이 해외연수를 추진하다 된서리를 맞았다. 그에 앞서서는 이장협의회가 해외 워크숍을 추진하다 내외부 여론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 하지만 내년 예산에는 또다른 사회단체까지 끼어서 해외연수 특전(?)의 문호를 개방한다는 소문이 들린다. 물론, 이런 일들은 공무원들의 부추김 내지 동의 없이는 불가능 하다. 하지 말라는 일은 잘도 하면서 꼭 해야 할 일은 하지 않는 옥천군이다. 그렇게 허투루 쓰고도 남은 돈이 991억원이다. 예산이 부족한 진짜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정창영 young@o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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