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탐방- '익산 청소년 신문 벼리'>10대의 눈으로 지역을 바라보다
<현장탐방- '익산 청소년 신문 벼리'>10대의 눈으로 지역을 바라보다
벼리의 3원칙 '청소년·지역·시의성'
일 년에 네 번 발행, 5천부 배포
  • 이현경 기자 lhk@okinews.com
  • 승인 2014.09.26 13:20
  • 호수 12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문이 세상을 보는 눈과 비판적 사고를 길러준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하지만 딱딱한 텍스트와 친해지기란 어른들도 쉽지 않습니다. 익산 청소년 신문 벼리 기자들은 직접 신문을 만드는 활동을 하면서 신문, 그리고 세상과 친해지고 있었습니다. 창간 25주년 특집을 맞아 청소년들이 '신문 만들기'를 통해 어떻게 성장해 가는지, 벼리의 사례를 독자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 익산 청소년 신문 벼리는 올해로 창간 15주년을 맞이했다. 사진은 창간 특집호 1면의 모습.

'익산 청소년 신문 벼리'(이하 벼리)의 시작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교 밖에서도 학생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문화가 있어야 한다는 고민이 지금의 벼리를 만들었다. 벼리가 만들어질 당시 비평준화였던 익산은 학교 간 '보이지 않는 장벽'이 소통을 가로막고 있었고, 학생들을 서열화 시키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벼리는 청소년들이 서로 대화하고 어울리고 함께 무엇인가를 성취 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탄생하게 됐다.

종이 신문 벼리는 3월, 6월, 9월, 12월 분기마다 발행되는 계간지다. 올해는 특별히 '창간 특집호'까지 발행돼 다섯 회의 신문을 만들 예정이다. 현재 벼리를 만들어가는 기자들은 15기·16기 39명의 학생들로, 독립된 편집권을 인정받아 기사를 쓰는 데 있어서 어른들의 간섭은 물론 도움도 받지 않는다. 12면에 실리는 기사와 사진, 그림은 모두 청소년 기자들의 손을 거쳐 나오는 것들이다.

벼리 기자단은 총 3팀으로 나눠져 있다. △1팀(정보기사팀) △2팀(비판기사팀) △사·미팀(사진·미술팀). 1팀과 2팀이 쓰는 기사의 성격은 확연히 다르다. 1팀은 '정보'를 알려주는 목적에 초점을 맞춰 기사 아이템을 찾는다. 익산의 축제와 같은 정보에서부터 학교 소식과 같은 정보까지 다양한 정보를 전달하는 데 주력한다.

2팀의 방점은 '비판'에 찍혀있다. 사회적 쟁점에 대한 비판이나 아직 쟁점화 되지 않은 것들을 찾아내 비판한다. 교육부가 나이스(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를 통해 실시하는 학교폭력 실태조사가 형식에 그친다는 비판과 각 학교(고등학교) 학생회장들의 선거공약 점검 같은 기사는 2팀 손에서 탄생한다.

사·미팀은 신문에 실리는 모든 사진과 미술작업을 책임진다. 1·2팀의 기사는 사·미팀의 손을 거쳐 완성된다. 사진으로 더 빛나는 기사, 만평으로 눈에 띄는 기사는 모두 사·미팀의 긴밀한 협조로 만들어진다. 사·미팀이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은 '1면 커버사진'이다. 1면 커버사진이 어떠한가에 따라 신문의 주목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12월호 1면 사진 회의를 주도 했던 사·미팀 팀장 정은지 학생(전북제일고 2학년)은 "그동안 신문에 많이 등장했던 콘셉트나 사진은 지양한다"며 "12월호 1면은 겨울느낌이 나는 사진으로 그리고 아기자기한 멋이 있는 사진으로 꾸밀 생각이다"고 말했다. 양소진 학생은 1면 사진이 독자들의 시선을 끌어야 신문 전체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 낼 수 있다며, 사·미팀이 가장 공을 들이는 사진은 1면이라 강조했다.

▲ 익산 청소년 신문 벼리 임원진들(김성희1팀장, 정은지 사진미술팀장, 이석철 편집장, 서도경 15기장, 양소진 2팀장)
▲ 벼리 기자들의 회의는 시종일관 진지했다. 사진은 12월호에 실릴 기사 아이템을 정비하고 있는 기자들의 모습

■ 가장 어렵지만 소중한 원칙 '지역성'

신문 벼리는 익산에 있는 고등학교와 청소년들이 많이 이용하는 도서관에 배포된다. 즉 벼리의 주된 독자는 '청소년'이다. 따라서 청소년들이 민감해 할 주제, 청소년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이야기들이 벼리에 실리는 것은 당연한 일. 벼리 기자들은 본인들이 청소년인 것을 100% 활용해 청소년들에게 적합한 아이템을 찾으려 노력한다. 예를 들어 교육제도 변경은 벼리가 놓쳐서는 안 될 주제다. '청소년'은 벼리가 신문을 만드는 제1원칙이다.

'지역'은 벼리의 제2원칙이다. 벼리 기자들은 본인들을 지칭할 때 항상 '익산 청소년 신문 벼리 기자'라 말한다. '익산'이라는 지역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지역의 상황을 조사하고 알아보는 작업은 벼리 기자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부분이란다. '대기업의 식민지가 되어가는 골목상권' 기사를 보면 익산 내에서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늘어날수록 나들가게(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지원하는 가게)는 줄어든다는 현황을 분석해 문제를 제기했다. 벼리 기자들의 눈은 학교 밖 지역에도 다다르고 있다.

편집장 이석철 학생(남성고 2학년)은 "3대 원칙 중 가장 지키기 어려운 것이 바로 지역성이다"며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 벼리가 '지역성'을 고민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벼리가 지켜가고 있는 마지막 3원칙은 '시의성'이다. 시의성을 놓친다는 것은 독자들의 주목도를 놓친다는 것과 같다. 벼리 기자들은 보다 많은 독자들이 기사를 보게끔 하려면 무엇보다도 시기가 적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 석 달간 이어지는 회의 '신문의 질' 좌우

벼리 기자단의 회의는 크게 4단계로 이루어진다. △1단계 아이템 회의 △2단계 수정 및 교열 작업 △3단계 면 배치 △4단계 신문 평가. 1~3단계는 신문이 나오기 전에 이루어지고, 4단계는 신문이 배포되고 난 뒤 이루어진다.

아이템 회의는 다시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팀별 회의와 전체회의가 그 것. 팀장을 중심으로 한 팀별 회의를 거쳐 추려진 아이템이 다시 전체회의로 나온다. 20일 2팀 아이템 회의에서 추려진 아이디어는 △급식 모니터링 △포트홀 위험성 △난청으로 이어지는 이어폰 과사용 △교과서 실용성 의문이다. 12개의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이 중 4개만 엄선됐다. 2팀 팀장 양소진 학생(이일여자고 2학년)은 "대개 팀 회의 때 나오는 아이디어는 절반 이상이 폐기된다"며 "다양한 아이디어 중 최선을 선택하는 과정이며, 비판을 담당하고 있는 팀이다 보니 매 회의 때마다 토론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기사 작성이 완성되면 수정과 교열을 한 후 면 배치가 이루어진다. 기사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은 이 작업이 얼마나 성실하게 이루어졌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신문평가는 한마디로 반응조사라 할 수 있다. 독자들로부터 신문의 평가를 받는데 "속이 후련하다"는 긍정적인 반응에서부터 "이번 신문은 지루하다"라는 말까지 반응은 다양하다. 이 회의의 목적은 다음 신문에 어떤 부분을 보완할지 의견을 주고받는 것에 있다.

■ 시민단체 '아이행복' 예산 담당 … 벼리는 청소년과 세상 사이 '가교'

벼리 기자들이 왕성히 활동하고 5천부라는 신문을 인쇄할 수 있는 밑바탕에는 예산을 지원하는 든든한 버팀목 (사)교육문화중심 아이행복(이사장 강유희, 이하 아이행복)이 있다. 아이행복은 시민들의 성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아이행복에서 예산을 받아쓰는 벼리는 곧 시민들의 후원으로 운영된다고 볼 수 있다. 아이행복은 예산을 지원하는 것 이외의 그 어떤 부분에도 관여하지 않는다. 편집권을 지켜주려는 노력에서다.

아이행복에서 벼리 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서민혁 이사는 벼리 청소년 기자 2기 출신이다. 아이행복의 어른들은 벼리의 가치를, 벼리를 통해 성장하는 청소년들에게 찾는다고 한다. 높은 품질의 신문을 만드는 것보다 신문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청소년들이 무언가를 느끼고 성장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 서민혁 이사는 "벼리는 청소년과 신문을 잇는, 나아가 세상과 청소년들 사이에 다리가 되어주는 역할을 한다"며 "학교 밖에서 지역을 고민하고 세상을 고민하며 자란 청소년과 그렇지 않은 청소년은 분명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아이행복은 더 나은 신문 벼리를 위해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다. 우선 연간 발행 횟수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독자들에게 더 많이 다가가고 벼리 기자들에게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함이다. 더불어 제도권 밖 청소년들도 벼리 기자로 활동 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재 벼리는 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들에 한 해 운영되고 있는데 학교를 다니고 있지 않는 청소년도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도록 변화를 줄 예정이다.

벼리에서 배운 '생각하는 법'
비판적 사고·폭 넓은 시각 얻어

벼리 전·현직 기자들은 말한다. 벼리 전과 후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다고.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변화는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는 데 있다고 한다. 무심코 지나쳤던 일들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게 되고, 비판 없이 수용했던 것들에 의구심을 가지게 되는 등 사회를 보는 시각이 늘었다고 한다.

벼리 13기 편집장을 지낸 김진혁(20)씨는 벼리 활동이 자기만의 편협한 생각에 갇히지 않게 해준다고 말했다. 김진혁씨는 "벼리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와 토론, 회의는 다른 기자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자리이자 내 생각을 평가받을 수 있는 자리다"며 "이 속에서 다양한 시각과 관점을 접하게 되기 때문에 폭 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관점은 본인이 혼자 만들어 가는 게 아니라 다른 기자들의 날카로운 비평과 토론 속에서 다듬어 지는 것이라 강조했다. 부모님과 건설적인 대화를 하기 시작한 것도 벼리 활동의 결과라 덧붙였다.

현재 활동 기수인 15기, 16기를 이끌어 가고 있는 편집장 이석철 학생(남성고 2학년)은 영상매체를 접할 때와 신문 활자를 읽을 때 생각하는 방식 또한 다르다고 말했다. 이석철 학생은 "영상은 그 내용을 받아들이기 바빠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반면 신문은 텍스트를 읽는 중간에 생각하고 느낄 시간이 주어진다"며 "벼리 활동을 통해 읽는 재미, 정확하게 말해서 읽으면서 생각하는 재미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비판적 사고를 가지게 해주는 데는 영상보다 신문이 더 적합하다는 이석철 학생. 물론 만들어져 있는 신문을 읽는 것보다 직접 신문을 만들어 보는 활동이 더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 성취감·자신감·사회성은 중요한 자양분

기자들이 벼리에서 배우는 것은 '생각하는 법'에만 그치지 않는다. 성취감과 자신감은 벼리 활동의 시간과 정비례하게 성장한다. 신문이 나오는 날이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는 기자들. 인터넷 신문과 달리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종이신문이다 보니 무언가 만들어 냈다는 성취감이 더 크다고 한다. 1팀 팀장 김성희 학생(이리남성여자고 2학년)은 "내가 만든 신문을 받아 들 때, 내가 만든 신문을 누군가가 읽고 있을 때의 뿌듯함이 힘든 벼리 활동을 계속하게 만든다"며 "이런 성취감이 자심감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사람을 대할 때 두려웠던 것들이 벼리 활동 1년 만에 개선됐다"고 말했다.

15기 기장 서도경 학생(이리남성여자고 2학년)은 벼리 활동이 학업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벼리 활동을 하며 많은 글을 읽다 보니 글을 보는 법이 늘었다고 한다. 서도경 학생은 "국어영역 같은 경우 지문 읽을 때 부담이 많이 줄었다"며 "특히 다른 기자들이 쓴 기사가 비문은 없는 지, 문단이 어색하지 않은 지 꼼꼼히 교열작업을 하다 보니 문단 순서, 글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는 굉장히 빨라졌다"고 말했다.

다른 학교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벼리 활동은 교우관계를 넓히고 사회성을 기르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1팀 팀원 김민섭 학생(남성고 2학년)은 "다른 학교 학생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잘 없다"며 "단순히 안면을 트는 정도가 아니라 생각을 나누고 공동의 목표 아래 작업을 하다 보니 돈독한 관계를 쌓게 된다"고 말했다. 특히 친구뿐만이 아니라 선·후배들을 알아가고 그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게 벼리가 지닌 매력이라 강조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